성경독후감 18.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선 영광스런 자리가 필요할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오랫동안 '영광을 돌린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장면이 떠올랐다. 큰 상을 받았을 때, 명문대에 수석 합격했을 때, 시상식 무대에서나 기자회견장에서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고 말하는 모습. 나는 그런 사람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나도 대단한 일을 해내고, 그 성취를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먼저 '영광스러운 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을 미래의 과제로 미뤄두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아직 부족하고, 언젠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고 나면, 그때 가서 하나님 앞에 내놓겠다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신앙의 완성 단계쯤 되는 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젠가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싶어하는 그 영광이라는 것이, 과연 하나님에게도 영광일까?
만약 내 아들이 박사학위를 받거나 어떤 어려운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 뒤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이 영광을 제 아버지께 돌립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마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내 아들이 해낸 일이 대단하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해내도록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이리저리 분주했던 내 지난 날들이 조금이나마 인정받는 것이 고마워서, 그리고 다름 아닌 내 아들이 그것을 알아주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어서 감격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성공과 업적이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한들, 그것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시는 분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혹시 운이 좋아서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재산을 모은들, 올림픽 금메달이나 노벨상을 수상한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코흘리개가 골목에서 딱지나 구슬을 싹쓸이한 정도가 아닐까? 귀엽기는 하겠지만, 그게 하나님의 기쁨의 본질이 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아이의 성과에 감동받는 것은 그 성과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자신을 기억하고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도 내가 가져오는 업적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그분을 향해 얼굴을 돌리는 그 방향 자체가 아닐까. 나는 오랫동안 선물의 내용물에만 골몰했는데, 어쩌면 하나님은 선물보다 그것을 가져오는 손을 보고 계신 것인지도 모른다.
영광이라는 말은 본래 밝은 빛을 뜻한다. 영광(榮光)이라는 한자어 자체가 밝은 빛이고 영어 ‘글로리(glory)’도 밝은 빛이라는 뜻이지만, 신약성경 원문을 적은 헬라어로도 '독사(δόξα)', 빛나는 찬란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구약 성경의 원문 히브리어 중에서는 ‘영광’으로 번역되는 말이 카보드(כָּבוֹד)다. 이 말의 어원은 ‘무게’, 곧 존재의 실질과 본질을 뜻한다. 빛은 빛이되, 어떤 존재의 본질이 그 껍질을 깨고 나오면서 만드는 빛이 영광이라고 상상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결국 빛을 돌리는 일이되 그 본질과 근원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서 드러나는 빛의 근원이 어디인지, 스스로 알고 고백하는 인정이 핵심일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뒤에는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언하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마 하나님이 권능을 드러내고, 로마의 압제와 그에 기대 선 권력자들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광’의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로 드러난 것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한 사람. 힘으로 누르는 대신 스스로를 내어주는 사랑.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영광이고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영광이다.
예수는 그 장면을 통해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방식이라고. 인간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은 눈부신 승리가 아니라, 사랑이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에 드러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빛은, 최소한 내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상상해온 '영광스러운 일들'과는 거리가 먼 곳에 있다.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 손해를 봐도 정직하려는 태도, 미워하지 않으려는 작은 선택. 이것들은 내 능력이나 결심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들어온 빛이 나를 조금씩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부당하게 굴었을 때 보복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날이 있었다면, 그것이 단지 내 인내심 덕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이득이 될 상황에서 굳이 사실을 말했다면, 그것도 내 도덕적 우월함의 산물이 아닐 수 있다. 그 순간 나를 그렇게 움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 그리고 "이것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곧 영광을 돌리는 행위다.
그러므로 영광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큰 일을 이룬 뒤에야 가능한 고급 신앙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내며 끊임없이 반복하는 작은 인식의 행위다. 내가 언젠가 충분히 대단해지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받고 있는 빛을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 가져야 할 믿음도 조금 달라진다. 내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 막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따라 사는 것이 사라지지 않는 길이라는 믿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바라봐야 할 영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