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9 월요일

기록

by anna

늘 똑같은 일상에서도 기록으로 무언가를 남긴다는 건 꽤 위대한 일이다.


출근 일지를 쓰게 된 것도 매일 반복되는 출근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시간으로 남는 거 같아서였다. (우리 회사의 사계절 풍경을 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음) 그러니 나도 하루하루 위대한 일 하나쯤은 하고 있는 거겠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아이의 일상을 노트에 적어 내려 가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순간 반복되는 삶이 무뎌져서 아이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많이 놓친 거 같기도 하다. 예전보다 마음만 먹으면 영상으로도 음성으로도 쉽게 남길 수 있는데,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반짝하는 순간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린다.


예능 프로를 보다가 <제시의 일기(양우조, 최선화)>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그냥 평범한 육아기록(?)쯤으로 생각했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였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8년간 쓴 일기 모음인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의 공습을 피하며 중국 이곳저곳(광주, 유주, 기강, 중경)으로 이동한 과정과 실정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기존의 딱딱한 역사서라기보다는 육아일기라는 형식을 빌어 임시정부 가족들의 생활상과 독립 운동가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담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그중에서 기억 남는 몇 가지 장면들이 있는데, 자녀의 이름을 지은 이유를 기록한 부분이 그중 하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제시(濟始)"는 집안 돌림자인 '제'자와 '시'자를 합쳐 만들었는데 '도움을 시작한다'라는 뜻 이외에도 영어식 이름인 '제시'와 동음으로 지어 훗날 조국이 독립되었을 때에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한국인으로 활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라의 독립이 이루어질지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고 앞을 내다보는 독립운동가의 마음이자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작명이었다.


아마 이 두 분의 기록이 없었더라면, 광복을 맞이하기 전 독립 운동가들의 세세한 실상은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기록은 위대하다. (독립운동가 부부에게도 육아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도 시대를 떠나 참 동질감을 느끼는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