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꾸의 세계
아이의 입학과 신학기는 나의 일상에도 작은 파동을 가져왔다. 나의 일상이 모두 아이의 입학에 집중되어 나도 같이 신입학하는 학생이 된 듯한 폭풍 같은 한 주를 보냈다. (무너진 나의 일상이여....)
한 달에 두 번 도착하는 아이가 보는 잡지에는 매번 시의적절한 주제를 너무 잘 뽑아낸다. 어쩜 아이가 요즘 관심 갖는 주제들만 딱딱 맞춰서 기사를 쓰시는지 매번 감탄이 나온다. 하하하;; 그리하여 아이는 이번 호에 등장한 '볼펜 꾸미기(볼꾸)'를 하고 싶다며 나에게 장소를 알아보라고 숙제를 주었다. 장소야 뻔하지 뭐. 그렇게 우리는 동대문 부자재시장을 몇 개월 만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
처음 부자재시장을 찾았을 때는 아이가 키링과 팔찌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찾아보고 갔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정말 키링과 팔찌에 관심이 있어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 위주였다랄까. 이번에 다시 방문한 부자재시장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시큐리티마저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수시로 체크를 하고 있었다. 요즘 정말 유행이라더니 이 정도일 줄이야.
많은 사람들 속에 아이의 눈은 매우 바쁘게 돌아갔다. 비슷비슷한 가게들 사이에서 한 곳을 정하더니 다양한 파츠들을 고르며 볼펜에 끼우기 시작했다. 옆에서 짐을 들고 지켜보던 나도 하나 만들어 볼까 싶어 기웃거리다가 만들기 시작했다. 어라.... 이거 꽤 재미있는걸. 볼펜 길이에 맞게 파츠를 신중하게 선택해서 끼워야 하고, 중간에 맞지 않는 부분은 작은 링을 끼워줘야 하고, 색은 어떤 톤으로 할지 어떤 부분을 포인트를 줘야 할지... 그 짧은 시간에 머리를 꽤 빨리 회전시켜야 했다. 그런데 재미있다. 완성품을 보고 나니 왠지 더 뿌듯하고 이 세상에 단 하나의 나의 볼펜이라는 점이 아마도 볼꾸의 세계의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싶다.
몇 자루를 만들었는지 반려인이 계산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지만, 나는 긴장했던 한 주의 스트레스를 조금 해소한 기분이었다. 만년필 처음 사서 필기하던 설렘처럼 볼꾸하면서 오랜만에 느껴본 설렘이다. 역시 문구류 소비가 제일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