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 목요일

할 몫

by anna

모처럼 파아란 하늘이 출근길을 반겨준다. 비 온 뒤 하늘은 역시나 깨끗하다. 1년 중에 이런 날씨가 과연 며칠이나 될까 싶다. 요즘은 하루하루 이런 소소한 것들에 감사함을 많이 느끼며 사는 중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당연한 것들도 새롭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 오늘 박지현 작가 책의 '아이들에게 배운 죽음의 의미'라는 챕터에서 아이들이 정의하는 죽음에 대한 대답이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어쩌면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저 내 몫의 일을 다하고 쓰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하루를 더 알차게 가꾸어 나가야겠다는 다짐도 든다.


'죽음'과 관련해서 올해 여름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 달팽이가 문득 생각난다. 어린이집에서 분양해 온 달팽이를 2년 정도 키웠다. 아이는 달팽이 이름을 '쌀'과 '보리'로 지어주고, 관리는 어느 집에서나 마찬가지로 엄마의 몫. 그런데 달팽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어느 날 움직임이 시원찮더니 그다음 날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떠났다. 마지막 날 우리 집 작은 사람과 잠시 교감을 하기도 했는데, 그게 어쩌면 자기 소임을 다하기 전에 보여준 마지막 인사 같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죽음'을 오로지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어렸다는 것. 며칠을 뜨거운 집 안에 그대로 두고 보기에, 벌레라도 생길까 속 타는 내 마음과 달리 아이는 달팽이 죽음을 부정도 했다가 같이 영원히 살고 싶다고도 했다가 나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평소에 달팽이 관리하면서 짜증 내는 날이 많았다.) 며칠 동안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기다림 끝에 마음의 준비가 된 아이는 장마가 시작되기 전 집 앞 화단에 잘 묻어주며 달팽이와의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참 괜찮은 태도, 박지현}

아이들에게 배운 죽음의 의미 中
"죽음이 어떤 의미로 느껴져요?" "이 세상 일을 다한 거요. 자기가 할 일을 다한 거요." "할아버지는 그 '할 몫'을 다하고 떠나셨을까요?" "네, 충분히 다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