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격
추석 연휴부터 시작된 집정리가 이제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듯 보이지만, 급한 대로 구역별로 정해가며 시나브로 정리하고 있다. 이번 주는 서재를 끝내봐야지!
버스를 타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나오면 2차선의 도로가 있다. 꽤 한적한 길이기에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있지만 자동차도 사람도 주위를 살펴보고 지나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새벽시간에는 더더욱 그렇다. 나도 몇 번의 유혹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횡단보도와 신호등이라는 엄연한 규칙이 있으니 차가 지나가지 않아도 누가 보지 않아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늘 빨간불에 거침없이 건너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그랬다. 어떤 중년 신사가 빨간불에도 너무 당당히 걸어가는 거다. 하지만 곧 초록불로 신호등이 바뀌었고, 그와 나의 거리는 겨우 두세 걸음 차이였다. 큰길 횡단보도 같은 장소에 도착해 같이 서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인생을 보는 거 같았다. 지금 나보다 두세 걸음 앞서 나간다고 빠른 게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느려 보일지라도 결코 늦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아침이었다.
어제 아이와 2차선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무단횡단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아이가 하는 말. "그런데 저 아줌마는 왜 규칙을 안 지켜?" (아이에게 부끄러운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참 괜찮은 태도, 박지현}
페터 비에리 교수는 <삶의 격>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찾은 사람을 "외부의 판단을 반드시 자신의 판단과 동일시해야만 할 불가피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어째서 나 자신을 타인의 눈을 통해 바라봐야만 하는지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들은 타인의 관점이 더 이상 위험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숨어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 결함이라 생각되던 것들이 더 이상 결함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