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화폐를 사용한다. 매장에서 식사를 하거나,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그 가격에 맞는 금액을 지불한다. 하지만 화폐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선 떠오르는 것은 동전과 지폐다. 하지만 지폐를 지불하지 않고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체크카드도 화폐인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신문에 연일 오르내렸던 가상화폐도 화폐로 볼 수 있을까? 화폐란 도대체 뭘까?
경제학에서 화폐란, 교환의 매개물 혹은 거래의 지불수단을 뜻한다. 다시 말해, 어떤 상품을 구입하고 그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화폐는 교환 매개의 기능, 가치 척도의 기능 그리고 가치 저장의 기능을 가진다. 먼저 교환 매개의 기능은 앞서 말한 것처럼 거래과정에서 지불수단으로써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화폐가 없다면 쌀 한 포대를 사기 위해 고등어 한 손을 들고 가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가치 척도의 기능은 재화에 책정된 화폐의 액수로 그 재화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1,000원의 아이스크림보다는 50,000원 상당의 잭 다니엘스 위스키가 더 가치 있다는 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치 저장의 기능은 구매력을 원하는 시점까지 보관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달 동안 현금을 서랍에 보관해도 그것을 꺼내 물건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제 화폐의 기초적인 개념에 대해 이해했으니, 색다른 질문을 고민해 보자. 동전과 지폐는 거래 수단으로 사용되고, 액수를 측정해 물건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으며 창고에 쌓아놓는다 해도 여전히 꺼내서 원하는 물건을 구매할 수 있으므로 화폐이다. 그런데 이것이 유일한 화폐인 걸까? 동전 주조 기술도 없던 원시 시대에는 화폐가 없었던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화폐의 정의를 다시금 상기해 보자.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활발히 거래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지폐 대신 쌀이나 소금과 같은 상품 화폐를 지불했다. 금속 화폐인 주화가 등장한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다. 주로 금, 은 혹은 구리를 이용해 주조했는데, 이러한 귀금속은 공급량이 한정되어 있어 경제 규모가 확장됨에 따라 이를 공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지폐이다. 지폐는 만드는 비용이 매우 저렴하여 공급량을 쉽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금속 화폐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폐 자체는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믿고 거래를 할 수 있었을까? 이는 국가가 지폐를 원할 시에 즉각 보관된 금이나 은으로 바꿀 수 있도록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태환성이라 하고, 이러한 성격을 가진 지폐를 태환 지폐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약속이 공고해짐에 따라 태환 요구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는데, 이에 정부가 법적으로 보증하여 유통하는 법화가 마침내 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500원 동전, 1만 원권을 포함한 동전과 지폐는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한 법화이다.
이제 서론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는 화폐일까?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모두 지불수단으로써 사용될 수 있으나, 가치 척도나 가치 저장의 기능을 할 수 없다. 따라서 화폐로 볼 수 없다. 가상화폐의 경우, 거래의 지불수단으로 잘 사용되지 않고 가치가 쉽게 변동하여 가치 척도의 기능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정부에서 보증한 통화가 아니기에 화폐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 자체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화폐를 사용하고 이에 가치를 부여한다. 화폐는 단연코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회적 약속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놀랍도록 편리한 거래수단을 발명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