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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03. 2023

문자 메시지 건너편

 사무실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젊은 직원 둘이 핸드폰에 푹 빠져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냐 했더니 오전에 하던 일 때문이란다. 누구와 그렇게 메시지를 열심히 주고받느냐니까 바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서로 가리킨다. 


  대화 대신 문자 메시지로 소통하는 것이 이제는 생소할 것도 없다. 이천 년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직장에 들어오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얼굴을 쳐다보며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좋다는 데 할 말이 없다. 처음에는 그런 젊은이들이 낯선 외계인 같이 느껴졌다. 머지않아 이들은 추억의 영화 ‘ET’에서 처럼 서로 길쭉한 손가락을 맞대고 의사소통할지 모른다. 


  문자 메시지를 생각하면 나 역시 외계인 취급받은 사건이 떠오른다. 벌써 아주 오래전 일이다. 삐삐라는 무선호출기 대신 핸드폰이 생기고 사무실에서도 전화대신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할 때였다. 급하게 회의 소집 메시지를 보냈다. 


  다들 문자 메시지가 온 것이 신기했다며 회의실에 입장했는데 딱 한 사람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화가 잔뜩 난 게 분명했다. “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직접 와서 얘기해도 모자랄 판에 문자를 찍 보내서 누굴 오라 말라하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더러 “당신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어디 외계에서 온 사람이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분하고 어이없는 추억이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도 읽기만 하고 캄캄 무소식이던 오랜 친구한테 모처럼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추억을 얘기하다 아들 며느리 이야기까지 나왔다. 엊그제가 그 친구 생일이었는데 전화 한 통 없던 며느리한테서 뜬금없이 아버님 사랑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걸 무시해야 하는지 답장을 보내야 하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넋두리다. 그 친구한테 지금 우리는 어쩌면 외계인끼리 모여 사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의 며느리들한테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외계인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얼른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그 친구와 합의했다.


  내 핸드폰에도 며느리한테서 불쑥 메시지가 왔다. 아기자기한 그림이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니 작은 글씨가 보였다. 


‘새들이 씨앗을 쪼아 먹을 때는 직접 발 벗고 나서서 쫓아내야 해요. 허수아비는 아무 소용없거든요’ 


이게 무슨 메시지인가 영 감이 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수수께끼를 풀다 답장을 못 하는 데  다시 메시지가 왔다. ‘할아버지, 도서관에 왔어요. 이 책이 농사짓는 할아버지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 찍었어요’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손녀가 제 엄마 핸드폰으로 보낸 메시지다. 


  이제는 문자 메시지 건너편에 또 어떤 외계인이 있는지도 살펴봐야겠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문자 메시지 이쪽에 있든 건너편에 있든 원래부터 우리는 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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