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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22. 2023

첫 알 싸움

 주말농장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닭장에서 우리 집 꼬꼬닭이 첫 알을 낳았다. 처음 알을 발견한 아내는 들뜬 목소리도 전화를 걸어왔고 사진까지 찍어 올리면서 기뻐했다.


  우리 집 꼬꼬닭은 모두 청계다. 지난해 옆집에서 얻어온 청계 알을 부화시켜 병아리 때부터 기른 것이다. 어린 손자 손녀들은 텃밭에 올 때마다 서로 모이도 주고 물도 준다고 야단법석을 피웠다. 그런 병아리들이 자라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드디어 첫 알을 낳은 것이다.


  청계 알이 작다지만 그중에서도 첫 알은 유난히 작았다. 청자와 백자의 빛깔을 모두 담은 푸르스름한 색을 띠면서 한쪽 끝이 갸름한 게 보기만 해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작고 윤기 나는 첫 알을 보려고 우리 집에 온 어린 손자 손녀들은 연신 신기해하며 서로 만져본다고 난리다.


  청계 알은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그러다 한 녀석이 혼자 알을 움켜쥐고 냅다 숨어버린다. 아내는 알이 깨진다며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잡아들이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이 청계 알이 조그맣지만 다른 알보다 영양도 많고 귀한 거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찜이나 프라이를 해준다고 했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요거를 품으면 병아리가 태어나잖아요. 내가 키울래요”

“야, 여기에 귀 좀 대봐. 이 속에 병아리가 들어있데”

“아무 소리도 안 나. 벌써 죽었나 봐. 할아버지 미워!”


  가장 어린 손자 녀석은 이런 누나들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나를 노려보더니 조그만 주먹으로 불쑥 나온 내 배를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휴지를 뽑아 첫 알에 덮어주고 두 손으로 감싸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묘안을 생각해 냈다. 우선 알을 냉장고에 보관한 후에 날씨가 더 따듯해지고 알도 더 낳으면 그때 병아리가 태어나게 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자마자 첫째 손녀는 또 닭똥 같은 눈물부터 떨어뜨린다. 냉장고 속이 저렇게 깜깜하고 추운데 알 속에 있는 병아리가 분명히 죽을 것 같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한다. 손자 손녀는 더 그렇다. 첫 알 싸움에서 완패당한 나는 결국 아이들 소원대로 청계 알을 부화시키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조그만 부화기도 사고 청계 알 십여 개를 넣고 작동시켰다. 3주 정도 걸린다는 데 습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연결된 호스에 물을 조금씩 보충해주어야 했다. 이제 아이들은 서로 물을 부어 준다고 또 난리법석이다. 그래, 열심히 싸우거라. 병아리들처럼 부지런히 쫑알거려라.


 가만 생각하니 지난봄에 태어났던 병아리떼가 떠오른다. 여러 마리 중에서 한 마리가 싸우지도 못하고 한쪽에 얌전히 있더니 결국은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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