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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y 29. 2024

처음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속상할 수가 있나

인공수정 1차가 실패로 끝이 나고 나는 많이 우울했다.


남편 외에 다른 가족들이 궁금해하는 결과를 전하는 것도 그들이 주는 괜찮다는 위로도, 아이러니하게도 다 괜찮지 않았다. 난 분명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지가 않다니. 눈물을 그치고 나선 마음을 다독이며 스스로 위로를 했지만 사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1차는 로또라잖아. 내 인생에 로또가 있을 리가 없지."


결과를 듣고 온 그날 저녁, 나는 그간 참았던 술을 마시며 속을 풀어냈다. 마치 보상 심리처럼. 준비한다고 생활 습관도 바꿔가며 노력했으면 오늘은 술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편해지려는 생각과 함께 남편은 나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진심 어린 따듯한 말을 연신 들려주었다.


"고생했어, 고생했다, 진짜 고생 많았어."


누구보다 나의 노력을, 고통을, 애쓰는 마음을 옆에서 봐온 남편은 병원에서 나올 때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고생했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해주었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마운지, 얼마나 따듯한지, 얼마나 마음 아렸는지. 애써 웃고야 마는 나의 얼굴을 보며 남편은 속이 상하겠지만 실은 모를 것이다. 나처럼 난임센터에 머무는 예비 엄마들도 다 겪는 일이지만 이날 나는 모든 과정을 마치 나 혼자 다 겪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걸.


어떤 일에 대해 기대를 하는 만큼 실망도 크게 오는 법이라던데, 기대치를 낮춰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완전한 결과를 듣기 전까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1차는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자체에 의미를 두는 거니까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뱉어냈지만 한편에는 설마 하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혹시 진짜 로또 당첨?


호르몬 주사의 영향으로 감정 기복이 있긴 했지만 하루동안 몇 번이나 배를 어루만지며 앉을 때도 신경 쓰는 나를 문득 발견할 때면 퍽 웃음이 나곤 했다. 기대 안 한다면서 행동은 이미 임신이 된 것처럼 조심스러우니 이 얼마나 아니러니한 일인가 싶어서. 시술날부터 피검사 전날까지 아침마다 맞는 프롤루텍스 일명 '돌주사'라 불리는 이 아픈 주사를 맞을 때마다 혹시 잘못 놓은 건 아닐까, 맞은 부위에 통증이 있는데 괜찮은지 검색도 하고 수정이 되고 착상이 되는 동안 문제가 되는 건 아닌지 정말 모든 게 의심스러운 날들이었다.


"그래, 1차는 됐고 할수록 확률이 올라간다고 하니까 2차 해보자."


1차 시도에 내가 겪은 과정을 보며 지낸 남편은 주사를 맞는 것만으로도 걱정을 많이 했었다. 2차보다 차라리 유명한 한의원에서 한약을 먹어보자고 했지만 나는 실패를 맛보더라도 한 번은 더 해보고 싶었다. 아무 문제없는 원인불명 난임인데 혹시 이번엔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갑자기 시작한다고 술 끊고 좋은 음식 먹어도 그동안 살아온 생활 습관이 있는데 한 달 만에 바뀌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이어서 도전하면 몸도 계속 신경 쓰고 연달아하니 조금이나마 확률이 더 있겠지 하는 마음이 컸기에 나는 완강할 수밖에 없었다.


"인공수정은 2차까진 해보자. 이게 마지막."


나의 의견에 건강을 염려하면서 수긍한 남편은 전에 했던 행동 그대로 족욕 물을 떠주고 산책을 하며 나를 챙겨주었다. 든든한 남편 덕에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은 나는 "인공수정 2차 도전!" 속으로 화이팅을 외치며 생리 2일 차에 난임센터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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