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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02. 2024

아니,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널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진료실과 가까운 대기실이 가득 차 바깥쪽에 대기하고 있던 나는, 누군가의 부름에 시선을 올렸다.


"야아-!"

"어? 뭐야."


같은 지역에 사는, 친하지만 연락은 잘하지 않던 친구를 뜻하지 않게 만난 장소는 길거리도 아닌 상상조차도 안 한 난임센터였다. 그동안 연락도 잘 안 했는데, 어떻게 우리가 여기서 만날 수가 있지. 얘도 임신 준비를 하고 있던 건가. 언제부터 다닌 거지. 그동안 왜 못 봤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그 친구를 만난 게 너무 반가웠다. 나와 같은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동지가 생겨난 것 같아서.


"아니, 만나도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으니 대기를 더 하고 싶을 정도로 우린 정말 많은 얘길 나누었다.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어쩌다 여기를 오게 되었는지. 진료받는 원장도 달라 서로 물어볼 정보도 후기도 봇물처럼 새어나왔다. 난임센터에서 기다리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각자 진료를 보고 못다한 얘기를 위해 우린 만남을 약속했다.


주사를 보관하기 위해 집에 들렀다 나온 나는 전화하면서 잡은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 둘이 밥 먹으러 같이 만난 적이 언제였더라. 친구와의 관계를 잠깐 얘기하자면, 중학교 때부터 이어온 인연으로 정말 많은 도움과 우정을 제대로 알려준 사람이었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위로를 해주고 같이 웃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운명이었는지 남편과 나의 주선으로 지인과 이 친구는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골인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지냈어? 임신은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새로운 가정의 삶을 살게 되어서 그런지 가까운 곳에 있어도 우린 자주 만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묘한 감정과 함께 멀어진 듯한 느낌이 들면서 서서히 연락도, 만남도 갖지 않았다. 편하고 좋은 친구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조심스러운 사이였고 배려가 많았던 사이였다.


그랬던 관계에 시간이 갈수록 치명적인 독이 퍼져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어느 날, 친구의 마음과 나의 마음 사이에 존재하던 이기적인 본성이 나타나고 말았다. 그렇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불편함을 가진 채 오랜만에 병원에서 만난 것이었다.


"시험관 준비 중이야? 나는 인공수정 2차 하고 있어."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건 무척이나 즐거웠다. 어느새 불편한 감정은 잊고 마치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대화에 열을 올리며 서로의 상황을 공유했다. 그냥 편했다. 우리가 임신을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도 신기한데 같은 난임센터를 다닌다니. 준비하면서 뭘 먹고 있는지, 뭘 하는지, 마음은 어떤지, 몸은 어떤지. 브런치를 먹으면서 장장 2시간을 얘기한 것 같지만 무언가 부족한 갈증에 우린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어쩜 연속적으로 입을 열었는데 할 말이 끊이질 않지?


인공수정과 시험관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비슷한 감정과 겪은 사람만 아는 통증, 불편한 부분을 말하고 듣고 공감하며 다독여줄 수 있으니 그 점이 정말 좋았다. 서로의 내원 날짜까지 말해주며 우린 성공을 바라고 또 바랐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몸 관리 잘하고 또 보자,라는 말을 끝으로 우린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종일 떠들었음에도 아직 아쉬움이 남았는지 남편에게 친구와의 만남을 신나게 털어놓았다.


"친구 만나서 신났나 보네, 기분 좋아 보여."

"응, 오랜만에 엄청 재밌었어."


신이난 이 감정 그대로, 친구와의 관계를 다시 평온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상처를 주고 받길 꺼려하고 솔직하지 못한 감정에 보이지 않는 배려가 겉에 묻어나는데 이 관계,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마음을 간직한 채로 임신 확인을 위한 피검사를 받으러 간 날, 나는 친구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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