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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04. 2024

차라리 같이 아는 게 낫지 않나

어차피 들으면 알게 될 건데

피검사를 하는 날에 친구와 만난다는 걸 알게 된 주위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한 명은 되고, 한 명은 아니면 좀 그렇지 않아?"

"둘 다 잘 되는 거 아니면 한 명이든 둘이든 안 되는 것도 참 그럴 것 같은데."

"굳이 그날 같이 봐야 해?"


남편을 포함해서 나의 주의 사람들은 모두 그날 친구와의 만남을 걱정했다. 하필 나의 결과를 듣게 되는 날, 친구도 같은 날짜에 결과를 듣는다니.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니 다음으로 이어질 기분이 어떻게 다를지, 아님 같을지 걱정이 안 될 순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만남을 제안한 건 나였다.


피검사를 하기 며칠 전에 친구에게 안부 연락이 왔고 나는 기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전과 같을 순 없겠지만 다시 좋은 마음으로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안부를 물었고 소소하게 연락을 이어가다 문득 궁금해진 내원 날짜에 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고 친구도 신기한 듯 자신도 같은 날짜라고 말했다. 나는 결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저 친구와 또 만나고 싶었기에 방문 시간까지 정하며 만남을 기약했다.


사실 나는 주위 반응과 다르게 별 생각이 없었다. 결과가 나온다면 날짜가 다르더라도 어차피 비슷한 시기에, 남편들도 친구도 나도 다 서로 아는 사인데 시간 차이가 무슨 상관있을까 싶었다. 톡 까놓고 보면 둘 다 성공이 아니라면 마주한 자리나, 연락으로 전하는 일이나 어차피 듣는 이도 전하는 이도 마음이 좋지 않을 테니까.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인데 이걸로 그리 심각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슬퍼하지 마. 담담하게, 알았지? 혹시나 친구가 되면 꼭 축하해 주고."

"나를 뭘로 보냐. 내가 아니더라도 친구가 임신이면 당연히 축하해 줘야지."


긴 대기 때문에 이른 아침 나서는 나를 보며 말은 건네는 남편의 얼굴에 걱정이 묻어났다. 그게 임신 결과에 대해 감정이 달라질 나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 한 명만 되는 상황을 그려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일이 좋고 나쁨을 떠나 참으로 애매한 일이긴 했다. 한 명만 전하는 고마움과 위로가 어찌 보면 더욱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만큼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니까.


"끝나면 바로 전화해."


남편에게 씩씩하게 웃어주고 집을 나선 나는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다. 내가 진료받는 원장보다 대기가 긴 원장에게 진료를 받는 친구는 긴 기다림이 있을까 미리 왔다고 했다. 접수 한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무려 앞에 6명이 있다고 말을 보태며. 얼른 가겠다고 전한 나는 난임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순간 오늘 무슨 날인지 잊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그냥 친구가 반가웠다.


"몸은 어때, 느낌이 좀 있어?"


나는 인공수정 1차에서 큰 낙담을 맛봤었기에 사실 2차 결과를 듣는 건 생각보다 긴장되지 않았다. 일부러 임신테스트기도 하지 않아서 기대보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조심히 지냈으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 마음뿐이었다. 친구도 특별한 증상은 없다고 했고 우린 대기하는 동안 앞으로 생길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만약 오늘 동시에 임신 얘기를 듣는다면 돌잔치를 오전, 오후로 나눌까 하는 농담도 하고, 각자 남편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도 해보고, 단태아도 좋지만 쌍둥이면 더 좋겠다는 서로의 바람도 얘기하고.


한참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이며 시간을 보내다가 먼저 이름이 불린 친구는 급하게 진료실로 들어갔다. 마침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 현재 상황을 알렸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나만큼이나 남편도 많은 생각이 들었을 거라는 걸. 점점 조여 오는 마음을 숨긴 채 나는 연신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이 고정된 진료실에서 친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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