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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06. 2024

그 꿈은 태몽이 아니었나 봐

그냥 개꿈이었지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손짓한 친구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뭐야, 뭐야. 수치 나왔어? 임신 맞아?"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들뜬 마음으로 친구에게 물었다. 대기할 때부터 묘하게 오는 촉이 나는 아니더라도 친구는 임신이 된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믿기지 않은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웃기만 하는 친구를 보며 임신이 되었다는 걸 확실할 수 있었다. 나는 재차 물으며 친구에게 기쁨을 전해주었다. 시험관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착상도 잘 되었고 한 번에 임신 성공이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너무 축하해, 이제 진짜 엄마가 된 거네."


아직 나는 결과를 듣기 전이지만 친구의 결과가 성공적이라 덩달아 들뜬 기분이었다. 내 친구가 임신이라니. 엄마가 된다니. 신기하고 마음도 떨리고 내 일이 아닌데도 감격스러운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번이 아니라면 다시 시도하겠다는 친구도 임신이 된 사실이 믿기지 않은지 그저 말을 하다 멈추거나 웃거나의 반복이었다. 옆에서 보는 나도 뭉클거리는데 당사자는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나는 아직 들어가려면 더 기다려야 돼, 얼른 가서 쉬어. 진짜 축하해."

"응, 결과 들으면 연락 주고 먼저 갈게."


친구가 먼저 난임센터를 떠나고 들어가기에 아직 먼 대기 상황을 확인한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받은 남편은 친구의 임신 소식에 잘 되었다며 축하한단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전화상으론 웃고 있지만 이번에도 나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일어난 좋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 남편에게 똑같이 전하면 정말 행복해할 것 같은데. 남편이 무척 좋아할 것 같은데.


"조금 있으면 들어가겠다. 끝나고 전화할게."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울컥한 감정을 보이고 싶지 않아 서둘러 전화를 끊고 나는 애처롭게 진료실을 쳐다보며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차라리 임신이 아니라면 빨리 듣고 여길 나가고 싶은데. 기대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건 며칠 전 꾸게 된 꿈 때문이었다.


커다란 잉어와 거북이가 집 연못에 나온 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찾아본 꿈 풀이에서 태몽으로 볼 수 있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사실 태몽이라면 대부분 품에 안기거나 물리거나 조금이라도 닿는 부분이 생긴다고 하던데 내 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친구 남편에게 저 중에 하나는 꼭 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꿈에서 깼는데 느낌은 아니겠지 했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태몽으로 생각하니 겉으로 표출하지 못할 기대가 스멀스멀 나의 정신을 지배했다.


"이번에도 임신이 아니네요."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에 들어간 나는 원장의 얼굴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이번에도 아니구나. 역시나 내 생각대로 임신 실패를 전해 들은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공수정은 확률이 워낙 낮다는 뻔한 얘기를 들으며 체념한 나는 다음 생리 때 오라는 말을 끝으로 무덤덤하게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그 꿈은 태몽이 아니라 그냥 개꿈이었네. 많은 생각이 교차하면서 차에 탄 나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이 기분을 털어내고 싶었다. 운전대를 잡기도 전에 남편에게 전화를 한 나는 표정을 갈무리했다.


"아니래, 아닌 거 같았어."


그리고 전하고 싶지 않은 말을 또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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