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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10. 2024

난 괜찮아, 왜냐면 난 부럽지가 않아

내 꿈에 한 발짝 다가갔으니까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감춰내며 다독이는 언니의 위로를 받아냈다. 다음을 위해 파이팅도 잊지 않으며. 사실 오면서 어떤 얘기를 주절거렸는지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희미했다. 분명 주제는 임신 얘기가 맞긴 한데. 집에 와서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속이 허했다. 현실을 이제야 받아들인 것처럼.


"이 기분 놓칠 수 없어, 쓰자."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뭐에 홀린 듯 브런치스토리를 검색한 나는, 전에 가입해 두었던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을 했다. 그리고 마치 모든 걸 쏟아내고 싶은 심정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임신을 생각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나의 얘기를 휘갈기며 적는 와중에 말랐던 안구에 점점 습기가 차올랐다. 이것은 눈물이겠지.


나는 정말 괜찮았는데, 진짜 괜찮았는데 왜 한순간에 우울감이 차오르는지. 어느 포인트에서 눈물샘을 자극한 건지도 모르게 맥락 없이 터져버린 눈물을 막지 못한 나는 냅다 엉엉 울어버렸다. 친구 혼자 임신이 되었어도 좋은 마음은 여전했다. 다만 나는 왜 안되나, 왜 이리 임신이 어렵나 속이 상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한껏 가라앉은 이 기분, 부은 눈으로 어렵사리 세 편의 글을 작성한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괜찮다고 씩씩한 척을 하지 않나, 혼자 청승맞게 눈물이 나 흘리고 있지 않나, 뜬금없이 글을 쓰더니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질 않나. 맥락 따위 없는 하루를 맞이하며 컴퓨터를 끈 나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땐 화장실 청소가 딱이지."


남편이 돌아오고 우린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슬픈 분위기가 아닌 정말 괜찮다고, 고생이 많았다고 얘기를 들으며 나는 울적한 마음을 씻어냈다. 한참을 일상을 주제로 대화를 하다 나는 숨기려고 했던 낮에 눈물을 흘린 상황을 털어놓았다. 감정을 혼자 눌러버릴 수 있지만 남편에게는 이러한 감정마저도 솔직하고 싶었다. 내가 겪었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니까. 나만큼이나 마음을 쓰는 사람이니까.


"잘했어, 너무 고생 많았어."


임신 준비를 하면서 남편에게 워낙 많이 들었던 말인데도 '고생했어.'이 말을 들으면 허전한 속이 채워지곤 했다. 속내까지 깊은 공감을 해줄 순 없더라도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니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다음 주제를 꺼내며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나누었다.


"친구한테 축하한다고 말해줬어? 친구도 놀랐겠다."

"응, 되게 놀란 것 같은데 나까지 벅차더라. 시험관 힘들었을 텐데 한 번에 돼서 다행이야."

"그러게. 진짜 축하할 일이다."


임신은 축복받을 일이니까. 같이 성공한 건 아니지만 친구라도 되어서 좋았고 시험관으로 인한 고생을 더 안 해도 되기에 다행이었다. 내 마음은 단지 나에 대한 속상함일 뿐, 친구가 먼저 임신이 되었다고 해서 시기나 질투의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귀로 들리는 성공의 확률만큼 받는 시술도 달랐으니까.


그리고 다음날. 임신에 대한 속상함이 단박에 사라질 만큼 난 괜찮았다. 아침에 뜬 연예 기사를 보며 내가 아닌 누군가가 시험관으로 임신을 성공한 걸 봐도 전혀 부럽지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브런치스토리 작가 합격 메일을 받았으니까. 이게 뭐라고. 나를 예상치 못하게 이만큼이나 설레게 하는가. 곧장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브런치 작가 합격했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임신이고 뭐고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예전에 한 번 떨어진 적이 있어서 그런가, 별일이 아닐 수 있다고 해도 나에게는 근래 들어 임신 외에 기대감을 심어준 첫 주제라 신나는 기쁨이 마구 분출되는 느낌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로그인을 하고 작가 소개를 적고, 적어놓았던 글을 발행했다. 첫 발행, 내 글을 누가 읽을까 하는 기대로 인해 이날 나는 임신 실패에 대한 슬픔을 날려버렸다.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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