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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n 23. 2024

간호사를 해볼 걸 그랬나

주사를 왜 이리 잘 놓는 거야

시험관에 대해 여러 가지를 찾아보면서 남편과 그런 얘길 했었다.


"주사 맞으면 배에 멍이 들어서 다 보라색이래. 대부분 그렇다네."

"난 멍도 잘 드는데 큰일이네."


아니, 이게 어쩐 일이야. 시작이야 주사 한 대뿐이었지만 세 개로 늘어난 시점에 당연스럽게 내 배에도 보란 멍이 잔뜩 생길 줄 알았다. 세 개의 주사 중에 바늘이 보다 더 두껍고 들어가는 느낌 자체가 다른 주사가 하나 있었는데 이 주사는 맵싸한 맛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말 그대로 맞을 때부터 맞고 나서 통증이 화한 주사.


역시나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것부터가 전과 달리 삐그덕거렸다. 아니 왜 찔렀는데, 분명 푹 찔렀는데 바늘이 깊이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뭘까. 바늘이 일체형으로 되어 있는 주사라 다시 빼고 찌르면 안 되기에 내 살을 통과하는 느낌을 있는 대로 느끼며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껏 긴장을 한만큼 맞고 나선 절로 멍 때리기도 했다.


"으으, 주사 세 개 다 맞았어."

"고생했어, 아팠지?"

"응, 확실히 전보다 아픈 주사가 있어."

"근데 여보는 배에 멍이 안 드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친구에게 들었을 때도, 찾아봤을 때도 분명 대부분은 배에 멍이 들어서 보라색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냥 내 피부색이었다. 아픈 건 아픈데 왜 멍이 안 들지. 주사를 잘 놓은 게 맞나. 약이 잘못 들어간 건 아닐까. 순간적으로 오만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어진 남편의 말에 나는 뭉근하게 기분이 들썩거렸다.


"여보가 미용은 영 아닌데, 간호사를 했어야 돼."

"내가 주사를 너무 잘 놔서?"

"응, 그러니까 멍도 안 들고 통증도 오래 안 가잖아."


미용에는 소질이 없는 손이라 남편의 밑머리를 바리깡으로 다듬어줄 때면 매번 헤매곤 했다. 해봤으면서도 헷갈리니 실력은 영 늘지를 않았다. 그때마다 남편은 미용 쪽으로는 안 하길 잘했다고 하는데 이번엔 칭찬이 자잘하게 늘어지니 우쭐할 수밖에. 진짜 간호사를 해서 실력을 키워나갔어야 하나 싶은 헛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우스갯소린 것도 알고 공부 머리가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게 팩트지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주사를 놓고 맞는 일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바늘이 쑥 잘 들어가는지, 맞을 때 어떻게 해야 덜 뭉치고 덜 아픈지. 맞을 땐 항상 긴장이 되긴 해도 노하우가 생기니 전보다 수월해진 주사 맞기에 내 튼실한 피부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배 쪽은 주사가 체질인가. 다른 곳은 멍만 잘 드는데.


"난자채취는 언제 하는 건데?"

"내일 가봐야 알 수 있대."


처방대로 열심히 주사를 맞고 난임센터에 방문하니 다행히 큰 이견이 없는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난포는 잘 자랐고 배란 억제가 조금 되어있는 상태라 내일까지만 맞고 이틀 후에 난자채취를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드디어 내가 난자채취를 하게 된다니. 하기 전부터 심장이 쿵쿵거리긴 했지만 내가 더 놀란 건 난자채취를 위해 들린 상담실 선생님의 말이었다.


"내일은 오전에 세 개, 오후에 두 개. 총 다섯 개의 주사를 맞을 거예요."


하하하하하하. 세 개도 많았는데 다섯 개라뇨. 집에 가서 말하니 남편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루동안 배에 주사를 다섯 개나 맞을 수 있냐며. 마침 즉흥적으로 언니네를 만나게 되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언니가 보는 눈앞에서 나는 순식간에 세 개의 주사를 맞았다. 저녁에도 시간 맞춰 남은 두 개의 주사를 맞고 나니 속이 후련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배주사가 체질인 건지, 주사를 정말 잘 놓는 건지. 간호사를 했으면 잘했을 거 같긴 하는데. 스스로 칭찬을 후하게 하며 난임센터에서 챙겨준 가방에 빈 주사기를 챙겨 넣었다. 주사부터 힘들어하는 후기를 많이 봤는데 그에 비해 이 정도면 나는 꽤 괜찮게 마무리를 한 듯 싶었다. 내자신 아주 기특해.


하지만 완전히 안심하긴 일렀다. 나에겐 고통이 난무하는 난자채취가 남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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