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Jun 20. 2024

시험관 1차 시작, 잘할 수 있을까

한 번에 성공하면 좋을 텐데

피임약 덕분인지 다행히도 깨끗한 상태가 되어 나는 시험관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부터 주사를 맞을 거고, 4일째 되는 날 내원 하시면 돼요."


인공수정과 달리 시험관은 먹는 약이 처방되지 않았다. 대신 주사가 바뀌었고 용량도 많이 달라졌다. 상담실에서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시험관을 할 때 필요한 서류와 동의서를 작성하고 주사 놓는 법을 다시 배웠다. 인공수정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복잡하고 할 게 많은 느낌에 부담이 느껴졌지만 다 괜찮았다. 시험관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더불어 주사 포함 저녁에 먹을 아스피린을 처방받았다. 이 약은 왜 먹나 했더니 난자채취를 할 때 피가 많이 나오니 그전부터 복용해야 하는 약이고, 난자채취를 하기 며칠 전부터 끊고 난 후에 이식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다시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도움이 되는 약이라고. 같은 약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처방하는 이유는 다 있겠지.


"전이랑 비교해서 느낌은 어때? 많이 아파?"

"비슷한데 생각보다 괜찮아. 맞을 때만 그렇고 맞고 나면 좀 나아."


시험관을 시작하게 되면서 남편은 걱정도 늘고 궁금증도 늘었다. 아무래도 스스로 몸에 또 주사를 놓아야 한다니 남편의 성격상 걱정이 안 될 리 없었다. 맞는 주사야 바늘이 몸을 통과하는데 솔직히 안 아플 리가 있나. 아픈 걸 알면서도 곧은 자세로 내 배에 직각으로 주사를 놓은 걸 눈으로 보면서 찔러야 하니 익숙하다 해도 보통적으로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맞는 고통,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이지만 문제는 맞고 나서 오는 증상에 나는 정처 없이 휘둘렸다. 처방받은 '고날에프'의 증상은 주로 무기력, 졸림, 두통이 오는데 나는 무기력과 졸림에 무척이나 타격을 받았다. 두통은 약해서 약을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정도라면 무기력과 졸림은 사람을 아무것도 못하게끔 온몸에 힘을 다 빼고 눈만 껌뻑거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와아, 미치겠다. 집중이 하나도 안 되네."


블로그와 웹소설, 그리고 브런치를 쓰는 나는 주로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하는데 주사를 맞고 나서부턴 도저히 키보드에 손이 가질 않았다. 미치겠는 건 잠을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음에도 늘어지고 잠이 와서 눈꺼풀이 무겁고 짙은 무기력과 졸림을 이겨내기가 어려웠다. 커피도 마셔보고 움직이려고 노력도 했지만 몸은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아 나를 끌어당겼다.


결국 며칠 동안 겨우 써낸 건 블로그와 브런치 밖에 없었다. 웹소설은 내용을 이어가야 하는데 집중이 안되니 맥락이 없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 글자를 떼기가 어려웠다. 주사 하나가 주는 증상이 이렇게나 무섭구나. 그 덕에 밥을 먹고 나서 무조건 한숨이라도 자야 했고 사람이 무기력해지니 내가 해야 될 일이든, 집안일이든 모조리 무시하게 되었다.


당장 해야 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만 내일로 미룰 수 있다면 미루는 게 나았다. 뭘 하면서도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고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분간도 안되니 맨 정신일 때 하는 편이 결과론적으로 더 좋았다. 일단 해봤자 어차피 수정을 하거나 다시 치우거나 여러 번 손이 가니까.


"오늘은 초음파만 하는 거야?"

"아마도? 가서 초음파 보고 주사 더 맞을 거 같아."


대기줄을 서려면 남편보다 일찍 나가야 했기에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진료를 기다렸다. 며칠 주사를 맞고 난포가 잘 자랐는지 확인이 되어야 그다음으로 진행이 되기에. 기다림 끝에 이름이 불리고 수없이 많이 했지만 초음파를 하면서 어떤 말을 들을까 신경이 쓰였던 건 처음이었다.


"난포는 잘 자라고 있어요. 그런데 크기가 다른 사람에 비해 2일 정도 지났을 때 크기예요."

"아, 네."

"이걸 좋다고는 볼 수 없는데 일단 오늘부터 배란억제제랑 난포성숙주사 같이 맞을게요."


상담실에 들어가서 또 한 차례 설명을 듣다가 나는 난포 크기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괜찮다는 건지 궁금하니까. 내 걱정과 달리 상담을 해주는 선생님은 배란억제제가 처방되었다는 건 난포가 잘 자라고 있다는 뜻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그나마 안심을 하며 오늘도 가방 가득 주사를 담아주시기에 웃으며 받아왔지만 앞으로 오전에 세 개의 주사를 맞으라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필요하면 맞아야지, 그까짓 거 세 개. 다 맞을 수 있어."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의지와 달리 주사 맞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녹록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잠깐 얻은 자유가 이리 좋을 줄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