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단맛이 떠나질 않는구만
난자를 채취한 다음날, 나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난임센터에 방문했다.
"주사만 맞으러 왔어요."
채취한 난자가 많아 엉덩이 주사가 추가 처방된 나는 4일 후 이식 예정일까지 매일 인근 병원이나 난임센터를 가야 했다. 정말 귀찮은 일이지만 배주사가 아니라서 셀프는 안되기에 병원 방문은 필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사만 맞고 오면 돼서 대기나 이른 아침 일찍 갈 일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접수를 하고 주사를 놔줄 선생님께 처방받은 약을 드리면 되는데 이건 정말 훅 고통을 주는 아주 매운 주사였다. 약이 퍼지는 순간부터 시작된 통증은 걸음을 삐걱거릴 정도로 크나큰 매운맛을 선사했고 최소 30분 정도가 지나야 서서히 주사를 맞기 전으로 돌아왔다. 이걸 매일 가서 맞아야 한다니. 복수에 도움 되는 주사라 안 맞을 수도 없고.
"이걸 언제 다 마시지."
집으로 돌아온 나에겐 하루에 꼭 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바로 이온음료 1.5L 이상 마시기. 이 정도는 껌이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이온음료의 섭취는 생각 이상으로 고난이었다. 윗배와 아랫배가 팽창되어 불어난 상태에서 밥을 먹고, 항생제 복용, 영양제 복용, 저녁 식사, 그리고 복수를 빠지게 도와주는 이온음료 섭취까지. 소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배는 이미 부어서 가득 차 있는데 계속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일은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었다.
하루 1.5L를 기준으로 많이 마실수록 좋다고 하니 싫어도 무조건 마셔야 했다. 액체류를 잘 먹는 편도 아니고 물도 의식적으로 챙겨 먹기에 단맛이 강한 포카리를 2L 먹는 일은 곤혹스러웠다. 신물이 올라오고 너무 꽉 차서 불편함이 배가 되어도 이온음료는 난임채취 후 꼭 먹어야 하는 필수 코스기에 나는 꾸역꾸역 하루치를 채웠다.
신기했던 건, 잠시동안 포카리를 먹지 않으면 위가 조여왔고 다시 한가득 마시면 증상이 나아진다는 점이었다. 분명 사람마다 받는 대미지가 다를 테고 나만 느낄 수 있는 증상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 때문인지 이온음료를 뗄 수가 없었다. TV를 보면서도, 컴퓨터를 하면서도, 몸을 움직이려 집안을 살살 돌아다닐 때도 내 손엔 언제나 포카리가 들려있었다.
"평생 먹는 양 생각하면 이건 포카리 광고감인데."
복수가 차는 일은 실로 평범한 일상생활에 멈칫거림을 가져다주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하는 이온음료를 입에 달고 산 덕에 많았던 개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덕분에 내 입안은 시간이 갈수록 마르면서 단맛이 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양치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 이 텁텁함. 이젠 포카리가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부피가 커진 만큼 내가 느끼는 묵직한 체감의 변화도 상당했다. 몸무게가 순식간에 3-4kg이 늘어났고 둔탁함 움직임 속에 입는 옷마저 몸에 부담을 주기에 헐렁한 밴딩이 아닌 이상 바지를 입을 수도 없었다. 조여 오는 동시에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니 나는 마치 겪어보지 않은 만삭의 임산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하루치 다 먹었어?"
"응, 겨우 다 먹었는데 배가 차서 먹기 힘들다."
"그래도 먹어야 해. 복수 차면 안 되니까."
남편의 챙김에 쉬지 않고 포카리를 먹게 되니 하루가 지날수록 증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방심은 안될 일이었다. 초음파를 하지 않는 이상 속을 알 수 없으니. 채취 후에는 음식 포함 산책도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 거의 눕거나 앉아 있는 일이 많았지만 혹시 몰라 나는 더욱 신경 써서 조심스럽게 사뿐히 움직였다. 배부른 느낌과 불편감은 계속 느껴졌지만 다행히 몸은 응급 상황이 생기지 않을 만큼 점차 안정되어 갔다.
"복수 찬 상태로 이식하면 빠지기도 전에 더 빨리 찬다는데 걱정이야."
"그럼 큰일인데, 여보 지금도 아파하잖아."
이온음료는 필수로 먹어야 하지만 사실 하루에 2L 이상 집요하게 먹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혹시나 하게 될 이식을 위해서. 복수가 차있는데 임신을 하게 될 경우 당연하게 많은 복수가 차오르고 심한 경우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에 내원해 물을 뺀다고 했다. 그런 경우를 들었기에 포카리를 더욱더 마실 수밖에 없었다. 복수로 인한 통증은 너무 괴로우니까.
이식 예정일 날까지 매일 엉덩이 주사와 셀프 배주사, 질정, 복수를 빼기 위해 이온음료를 열심히 섭취한 결과, 나는 느낌상 호전된 상태로 난임센터에 방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예상대로 내 상태는 그대로였다. 아직 튀어나온 배만큼 복수는 반이상 차있고 난소는 크게 부어있었다.
"이 상태로 이식하게 되면 복수가 더 차서 위험해요. 임신 유지도 어렵고."
"네네."
초음파를 보며 들은 말에 나의 대답은 간결했다. 복수는 나아진 줄 알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그러진 않지만 난자를 20개 가까이 채취하거나 그 이상 채취할 경우, 적게 채취한 사람에 비해 대부분 복수가 많이 찬다고 했다. 정도나 통증은 케바케지만. 그렇기에 반문할 거리도 없었다. 대신 포카리를 더 사야겠다는 생각뿐.
"그리고 채취한 19개 난자 중에..."
책상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한 채 이어간 설명에서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찰나지만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