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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04. 2024

시험관도 자연수정이 있다니

인위적으로 수정을 시키는 줄만 알았는데

"현재 채취한 난자 19개 중 12개가 자연수정이 된 상태예요."

"자연수정이요?"

"네, 자연수정이 어려울 경우 미세수정을 시키는데 자연수정이 잘 되어서 시도하지 않았어요."


남편과 내가 꽂힌 건 개수가 아닌 자연수정이란 단어였다. 우리가 알았던 정보는 단순했다. 시험관 자체가 인위적으로 임신을 시도하는 것. 맞는 말이지만 인공수정은 자연임신과 같다는 말처럼 깊게 넣어주는 거고 시험관은 수정을 시켜서 주입을 하는 것이기에 수정도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시키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았던 정보와 달리 시험관도 수정에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자연수정과 미세수정. 수정은 말 그대로 난자와 정자를 합치는 건데 여기서 자연은 난자와 정자를 한 곳에 놓고 자연스럽게 수정을 유도하는 방법이고, 미세는 미세한 유리관으로 난자에 정자를 주입하는 방법이다. 우린 난자와 정자 상태가 괜찮았는지 자연수정만으로도 많이 나온 편이라고 했다.


시험관이라는, 인위적이라는 말을 배제하면 우리가 귀에 담은 건 자연으로 이루어진 수정이었는데 이토록 놀랐던 건 차마 서로 말하지 못했던 임신 실패에 대한 이유 때문이었다. 몇 년 동안 시도했던 자연이든, 전에 시도했던 인공이든 수정부터 착상까지 우리의 몫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 젊으니까 우린 서로 건강하다고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임신이 되지 않았을 때마다 수정이 안되는지, 착상이 안되는지 원인을 알 순 없었지만 우린 각자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내 몸이 잘못이겠지, 내 식생활이 올바르지 않아서겠지. 온갖 부정적인 이유를 덧붙이며 보기 좋게 서로를 다독여도 정작 자신에 대해선 깎아내리기 바빴다.


"시험관도 자연으로 수정을 시킬 수 있는지 몰랐어요."

"정자와 난자의 질이 좋으면 자연수정부터 시켜요."


듣고도 믿지 못하겠는지 남편은 재차 되물었고 우린 조금 전과 같은 답변을 들을 있었다. 우리도 자연으로 수정이 되는 거였구나. 난자 채취를 많이 했어도 공난포나 수정이 되지 않는다면 그간의 과정이 물거품이 되니 심히 걱정을 했었다. 수정이 안되면 어떡하지. 하나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기대를 일부러 져버렸기에 기분은 더 벅차올랐다.


"그럼 좋다는 말인 거죠?"

"좋다고 볼 수 있죠. 근데 지금 상태론 이식을 받으면 복수가 차서 위험하고 임신 유지가 힘들 수 있어요."

"그러면 이식은 못 하는 거예요?"

"수정된 12개로 동결을 시도할 거예요. 동결로 개의 개수가 남는지는 모르지만 위험 부담을 주는 것보단 안전한 상태에서 이식을 받는 게 좋아요."

"알겠습니다."


남편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로 걱정했던 게 이식 후 복수가 차는 일이었기에 동결을 시도할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놓였다. 수정된 배아 상태가 동결을 못할 정도라면 복수가 차더라도 이식을 받았겠지만 아직 배가 불편한 상태에선 임신만 보고 과한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동결하는 게 좋은 거죠?"

"그럼요. 동결이 되면 몸이 괜찮은 상태에서 이식을 받기도 좋고 난자채취를 안 해도 또 기회가 있으니까 신선이 아니더라도 동결이 되면 좋은 일이에요."

"근데 혹시 동결을 시도하면 다는 안된다던데 하나 정도는 성공하죠? 했는데 안될까 봐 걱정이 돼서요."

"원장님이 동결을 시도한다는 건 일단 수정된 배아 상태가 좋다는 말이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기분 좋게 진료실을 나와 상담실에 들어가니 남편은 질문 봇이 되어 나보다 먼저 질문을 던졌다. 복수가 차있는 상태로 이식을 받지 않아도 되는 건 좋으나 동결을 하면 개수가 적어진다고 하니 것도 걱정인 모양이었다. 되려 나보다 질문을 많이 하던데 그 모습이 얼마나 든든하고 좋아 보이던지.


"나 울컥해서 진료실에서 울 뻔했어."


상담을 마치고 차에 탄 남편은 그제야 제 속을 털어놓았다. 영양제를 먹고 관리하는 내 모습에 비해 스스로 관리가 부족해 보여 걱정이 많았는지 자연수정이 되었다는 말이 더없이 와닿은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나보다 자신의 탓일 거라고 생각을 했었을 테니. 덩달아 눈물이 고인 나는 애써 밝게 웃었다.


"우리 자연수정이 된 거 보면 둘 다 건강한 거 맞네. 이제 착상만 잘 되면 되겠다."

"족욕도 하고 몸 따듯해지는 음식 많이 먹자."

"근데 동결이 되긴 되겠지?"

"상태도 좋다고 하고 12개니까 하나는 되지 않을까? 우선 나는 여보가 오늘 이식 안 받아서 좋아."

"이식 받으면 복수 더 차니까?"

"응, 아파서 복수 빼러 다니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


아직 이식조차 시도도 안 해봤지만 수정이 된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편했다. 동결도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난임센터에서 온 전화를 통해 나는 동결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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