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낙엽이 내려앉듯, 글쓰는 마음도 천천히

by 뭉게 뭉게


가을빛이 하루가 다르게 옅어진다.
햇살은 부드러워졌고, 바람은 한결 선선하다.
낙엽이 바람에 밀려 천천히 떨어질 때면,
문득 내 마음도 그 속도를 따라 느려진다.


예전에는 이 계절이 괜히 쓸쓸했다.
낙엽이 지는 걸 보며 끝과 이별만 떠올렸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다.
가을은 사라짐의 계절이 아니라, 비워냄의 계절이다.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놓아주는 법을 가르쳐주는 시간이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생각이 가득 차면 문장은 오히려 멈춘다.
비워야 비로소 문장이 흘러간다.
마음속 낙엽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그 자리에 새로운 문장이 조용히 돋아난다.


그래서 요즘 나는 글을 빨리 쓰려 하지 않는다.

말하려는 대신, 들어보려 한다.
문장을 다듬기보다, 마음의 호흡을 맞춰본다.
낙엽이 땅에 닿기까지의 그 느린 곡선을 닮은 글,
그런 문장이 이제는 좋아졌다.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일이 찾아온다.
좋은 일이 생기면 그 기쁨이 채 식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일이 따라온다.
행복과 근심이 한날한시에 공존하는 걸 보면,
인생은 균형 잡힌 저울이라기보다
계절처럼 순환하는 것 같다.
지나간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 다시 돌아온다.


요즘은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인데, 나는 왜 주인공 같지 않을까.’

하루 종일 타인의 요구에 맞추고, 타인의 감정에 맞춰 말하고,
타인의 시간표에 맞춰 살아간다.


내가 살아내는 하루인데,
정작 그 중심에는 ‘나’라는 인물이 빠져 있는 날이 많다.
그 공백이 문득 서늘하다.

가을은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낙엽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처럼,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정말 좋아하는 게 뭘까.
이제라도 늦지 않게 나답게 살 수 있을까.
질문들이 천천히 내 안을 걷는다.


어제는 아내가 조금 우울해했다.
퇴근 후에 둘이 와인을 한 잔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녀를 위로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위로받은 건 나였다.
조용한 잔 사이로 흐르는 대화 속에
‘함께’라는 단어가 오래 남았다.
사는 건 결국 함께 걷는 일이다.

아내와 걷든, 가족과 걷든, 그외 지인들과 걷든


수학으로는 1 더하기 1은 2지만,
사람 사이의 ‘함께’는 3이 되기도, 10이 되기도 한다.
합계는 계산이지만, 함께는 온도다.

요즘 사람들은 ‘함께’보다 ‘합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

조금 아쉽고 쓸쓸하다.


돈보다 이름보다, 내 곁에 남아주는 사람이 내 인생의 제곱상수 아닐까.
같이 웃어줄 사람 하나면, 세상이 조금은 덜 차갑다.


요즘은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늘 힘껏 달리면 금방 지치고,
사랑하는 사람의 지친 얼굴을 보며 깨닫는다.
때로는 최선을 다해 쉬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쉬는 게 게으름이 아니라,
다시 살아보기 위한 숨고르기라는 걸.

그래서 이제는 조금 천천히 걸으려 한다.
앞만 보던 시선 대신, 가끔은 옆에 선 사람을 보고,
발밑의 낙엽을 밟으며 걸을 수 있는 속도로.
걸어가다 멈춰도 괜찮다. 멈춘 그 자리에서 나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회복의 시작이니까.


“Ever tried. Ever failed.”
늘 시도했고, 늘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졌다.
실패의 무게보다, 시도의 습관이 나를 지탱했다.
결국 가장 큰 실패는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는 게 힘이 아니라, 실행이 힘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너무 쉽게 포기한다.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 멈춘다.
하지만 글은, 멈추면 사라진다.
삶도 마찬가지다.


요즘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다시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은 매일 우리를 유혹한다 모두를 잡아끌 수 있을 정도로 중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만 반복하면서 살면,

나중에는 해야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살게된다

그로 인해 자유와 행복을 서서히 빼앗기며 살게된다

그대로 당신이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하루를 온전히 농밀하게 보낸다면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살 수 있다 완전히 다른 삶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 사이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그 리듬이 바로 나의 온도이자, 글의 온도다.

결국 인생은 ‘시간’을 저축하는 일 같다. 지금 쓰는 이 문장 하나도,
나중의 나를 위한 작은 저금통이다. 오늘의 생각을 조금 덜 거칠게,
내일의 내가 다시 꺼내 읽을 수 있게 담아두는 것. 그게 글쓰기의 힘이자, 살아가는 기술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멈춰도 괜찮다.
다시 쓰면 된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 더 나은 나로 자란다.
내 글이 조금씩 깊어지는 만큼, 내 삶도 천천히 단단해진다.

이제 나는 ‘퇴고’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문장을 고치기보다, 마음을 다시 읽는 시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조용히 마주 앉는 순간.
퇴고는 결국,
글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난다.


이 작가되기 도전기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서 가는 것 같다 다음 장의 제목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이제는 퇴고하는 과정을 적어볼까 한다

"퇴고 그 너머"를 알아보러 가자



이전 19화19장. 글의온도, 사람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