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다시 꺼내는 일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by 뭉게 뭉게

글을 쓰면 마음이 가벼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쓰면 쓸수록 더 많은 마음이 솔직해지면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한 문장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 초지만, 그 문장 하나에는 수십 년의 생각과 감정이 묻어난다.
누군가는 글을 쓰며 세상을 바꾸고, 또 어떤 이는 글을 쓰며 자기 자신을 구한다.
나는 출발 선 그 어딘가에 서서 두리번대고 있지 않을까? 세상을 구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 하나는

구해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일이 아닌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이해하며, 내 안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도 한다.

『작가되기 연구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작가가 되려는 마음은 먹었는데어떻게 글을 쓰면 되는것인지, 어떻게 쓰는 것이 잘쓰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법”을 찾아 나름 꽤많은 책과 유튜브를 뒤졌지만, 제대로 정리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없다면 내가 정리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글이 어느새 나를 공부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나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아, 글은 배우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구나.”

아무리 글을 잘 쓰는 법을 아무리 배워도,
삶을 다르고 보고, 느끼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글은 텅 비어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꿨다.
‘공부하듯 쓰는 글’에서 ‘살아내듯 쓰는 글’로.

그 후로는 책보다 거리를, 이론보다 사람을, 문장보다 삶의 냄새를 더 자주 읽으려 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지식보다 진심의 깊이와 감정의 결에서 비롯된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물론 방법을 전혀 모른 채 쓰는 건 더 막막하다.

즉, 영어문법을 안다고 영어회화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회화를 잘 하려면 약간의 영어문법을

알아야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작가 연구기”라는 이름으로 나만의 문법을 찾아가고 있으며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글, 내가 써도 괜찮을까?”
“이 문장,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언제나 나를 멈칫하게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조금 부족해도, 서툴러도, 오늘 한 문장을 썼다는 사실이 어제의 나보다 나은 증거가 된다.
두려움은 여전히 있지만, 그 위에서 멈추지 않고 써내려가는 일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글을 쓸때 카페에서 또는 퇴근 후 사무실에서 쓰는 경우가 많다. 가끔 밖에 나가서 바람도 맞고, 하늘도

보고, 카페에서는 사람들의 즐겁게 떠드는 소리를 듣고, 다들 퇴근 한 사무실에서는 혼자 있는 조용함을

즐긴다...사람과 바람과 하늘 그리고 혼자있는 고요함 이런것들은 나에게 '작은 사치"가 된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순간만큼은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세상 속에 내가 있고 또

고요함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니까


글쓰기도 인생과 닮았다.


조급해할수록 단어가 흩어지고, 천천히 받아들일수록 문장이 모인다.
글이 내 마음에 맞춰 걸어오기를 기다릴 때, 오히려 글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걸 깨닫게 된다.

영감은 대단한 깨달음의 순간에 오지 않는다.

오히려 묘하게 지루한 일상 속에서 슬며시 찾아온다.

나는 ‘삼성 노트폰’을 쓰는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펜으로 휘갈겨 적는 걸 좋아한다.
길을 걷다가 본 유머러스한 간판옆에 붙은 문구 — “공부만 하다 망했어요. 그래서 족발 팔아요”," 고등학교때부터 전국을 다니면서 친 당구. 맘에 안들어 내가 직접 만든 당구장" - 를 보면 그 문장 하나에 담긴 체념과 유머가 이상하게 마음을 울린다.
책을 읽다가도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스크린샷 대신 직접 손으로 적는다.
그게 훨씬 오래 남는다.

가끔 부동산 또는 재태크 단톡방에서 누군가 “인생은 매수 타이밍이 아니라 보유의 시간이다” 같은 말을 할 때, 나는 혼자 피식 웃으며 생각한다.
‘인생에도, 글 에도 똑같이 적용되네. 결국 보유한 사람이 남는 것이지.’

이렇게 흘러가는 말, 표정, 풍경, 냄새가 모두 글의 재료가 된다.
영감은 멀리 있지 않다

단지, 내가 그것을 포착할 마음의 여유를 잃고 있을 뿐이다.


영감이란 결국, 기억의 조각을 붙잡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영감보다 더 믿을 만한 것이 있다.

바로 습관이다.

영감은 반짝이지만, 습관은 근육이다.

동기부여는 날씨 같아서 금세 변하지만,

습관은 계절처럼 꾸준히 이어진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했다.

“당신의 가치는 좋은 습관에서 나쁜 습관을 뺀 후 남은 것이다.”


우리의 뇌는 상당히 게으르도록 진화해욌다.. 새로운 행동을 싫어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을 ‘자동모드’로 등록한다.
양치하듯 글을 쓰는 사람만이, 언젠가 자신의 문장을 숨 쉬듯 써내려갈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습관이 뇌에 각인되기까지는 66일이 걸린다고 한다.
매일 10분이라도 같은 시간, 같은 마음으로 쓰면 글쓰기는 우리의 일부가 된다.

나는 주말이면 가방에 노트북을 넣고 집사람은 쉬고 두고 조용히 아침일찍 집을 나선다.
아침 8시, 문을 여는 스타벅스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루의 첫 문장을 쓴다.
그 후 집에 돌아와 아내와 브런치를 만들어 먹는다.
가끔은 대형서점에 들러 세상이 어떤 책을 내보이는지 구경한다.
이제 이런 생활의 리듬이 습관이 되었다.


나는 ‘하면 된다’는 말을 전부 믿진 않는다.
하지만 ‘안 해도 된다’는 말은 세상에 없다.
하다가 포기하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는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글을 붙잡고 있을까?”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글을 쓸 때만 나는 조금 더 솔직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하지 못한 말,
그리움이나 서운함 같은 감정도 문장 속에서는 부끄럽지 않다.
글은 나에게 ‘다시 나를 꺼내는 행위’다.

잊고 있던 과거의 나,
지나쳐버린 감정,
말하지 못한 마음을 다시 불러내는 일.

그래서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조금 더 나를 이해하게 된다.

작가 연구를 하지만 나는 여전히 완벽한 문장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한 문장을 썼다.
그 문장이 내일의 나를 조금은 나아지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영감이 없어도, 피곤해도,
그저 하루 한 줄, 내 마음의 조각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는 건, 세상을 바꾸거나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은 것보다는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일이 되는 것 같다

결국, 오늘의 나를 다시 꺼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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