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한 그릇

by 금경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육촌 형님이 돌아 가신지도. 형님은 돌아가시기 1년 전부터 몸에 이상이 왔으나 좀 호전을 보이더니 3개월 전쯤부터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어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되었다. 형님은 연극영화를 전공하셨다. 고향 진주에 대한 자부심이 남 달랐던 분이셨다. 임진왜란 당시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대첩을 기리기 위한 포럼과 문화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대중가요의 황태자 남인수 동상을 진양호 호반에 세우는데 크게 조력했었다.

형님의 진주에 대한 자부심은 한마디로 압축된다.

“야. 동상! ‘북평양 남진주’라는 말 들어 봤어?”

형님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가 있긴 하지만 형님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시간은 지난 10여 년간이었다. 해마다 할아버지 산소를 빠짐없이 찾는 서울 사는 사촌 형님이 진주로 내려올 때면,

“장을 한 번 열어야지.”하셨다. ‘장’이란 셋이 모여

질펀하게 얘기 꽃을 피우는 시간을 말한다. 얘기의 단골 메뉴는 진주 출신의 가요인에 얽힌 것들이다. 한국가요 최초인 ‘강남달’을 비롯하여, 20세기의 이재호, 손목인,..... 등과 더불어 21세기의 이봉조 등의 작곡가가 등장한다. 수 십 번을 들어도 항상 새롭게 들렸다. 매번 처음 듣는 노래를 선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주출신 가수인 위키리의 ‘눈물을 감추고’를 흥 얼된 모습은 흡사 자신이 가수인양 몰입해 불러 제켰다.

“진주를 삼성, LG, 효성의 창업자를 배출시킨 이유로 최근에 K-산업의 산실이라 하는데 K-가요의 원조라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이를 전 국민이 알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하면서 애향심을 쏟아 냈다.

형님이 소개한 진주 사투리와 연관된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정말인가?’를 진주 사람들은 ‘애나가?’라 한다. ‘애나가’에 담긴 우스개 소리는 이렇다. 진주에 사는 장년 서너 사람들이 모처럼 상경하여 업무를 보고 난 다음 서울 번화가에 있는 어떤 카페에 들러 술 마시면서 생긴 일이다. 경상도 특유의 큰 소리로 인해 주인집 아주머니가 와서 “좀 조용히 해 주십시오.”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시끌벅적하자 이 번에는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거구의 사람이 뚜벅뚜벅 진주사람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쪽을 향해 다가오자 진주 일행 중 한 사람이 한 말이다.

“이게 다 니끼가? 애나가?”라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 서면서 자기의 일행들을 향해 “야! 일본사람들이다. 그냥 마시자.”라고 했다 한다. “이게 다 니끼가?‘라는 말은 우리가 좀 시끄럽다 해도 한 방 칠 기세로 다가오니 “이 술집이 너희 것이냐? 정말로?”의 뜻으로 뱉은 말이다. 어떤 학자들은 경상도 사투리와 일본말이 비숫한 게 제법 있다는데 ‘애나가’도 해당될지 모르겠다.

진주비빔밥 집에서, 남인수 동상비와 이재호 기념비가 있는 진양호에서, 논개의 얼이 묻어 있는 의암 바위의 촉석루에서, 그리고 할아버지 공원묘지 앞에 커다랗게 서 있는 천상병 시인의 ‘소풍’ 시비 앞에서 형님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폰에 저장돼 있다.

형님은 생계로 여러 직업을 거쳤다. 생전에 마지막까지 계속해 왔던 일은 ‘집밥 도시락’이었다. 몇 안 되는 단골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많이 쓰셨다. 일생을 수입이 생기는 쪽쪽 거의 진주와 연관된 문화사업에 다 쏟아부었으니 80가까운 노후에도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어느 여름날, 전화 통화를 하던 중 형님에게서 폰으로 들려온 말은

“우리, 서로 간에 바쁘더라도 조만간 만나 냉면 한 그릇 하자.”였다.

나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늘 마음속에 담아 두었든 ‘형님과 냉면 한 그릇’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물론 코로나가 있었고, 그 탓으로 형님이 상급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도 문병이 불가능했었다. 결국 시간이 흘러 형님과의 약속은 영영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유머와 해학, 그리고 애향심으로 불탔든 형님이 불쑥불쑥 떠 오른다. ‘소풍’처럼 살다 간 형님의 삶을 되새기면서 나는 다짐해 본다. 앞으로 대상이 누구든 내가 먼저 “밥 한 끼”하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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