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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13. 2024

쉘로우 비치 : 영업 일팀

월요일 출근길. 


하늘은 먼지 하나 없이 투명하고 맑았다. 어느덧 거리에는 낙엽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십사 층에서 내린다. 출입증 카드를 스캐너에 대자 도어가 열린다. 기획부 일, 이 팀과 영업부 일, 이, 삼 팀이 십사 층 한곳에 다 모여 있다. 


일찍 출근한 미리가 자리에 앉아 있다.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 탕비실 쪽으로 걸어가는 초거의 뒷모습이 보인다. 미리와 초거는 오늘도 함께 출근을 한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켠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미리가 나를 보더니 재빠르게 얼굴을 떨군다.  


“안녕하…….”


인사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미리는 나를 보더니 벌겋게 충혈된 눈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수그린다. 미리는 아침부터 운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표정한 얼굴로 도리 선배도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도리 선배의 눈 아래로 검은 다크써클이 고드름처럼 내려와 있다. 도리 선배는 막내가 이제 두 살을 넘긴 아이 셋의 아빠다. 이곳에서 십 년째 대리로 버티고 있는 붙박이장. 요즘 들어 이마 바로 위쪽 머리가 더 벗겨지고 있는 것 같다. 내 옆자리에 앉는 도리 선배는 얼굴을 숙인 채 미동도 없는 미리를 보며 내게 묻는다. 


“제 또 왜 저러냐?” 

“모르죠.”

“초거는?”

“탕비실.”

“또, 또 아침부터 라면 냄새 사무실에 풍기기만 해봐라.” 


도리 선배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득한 엠에스쥐 냄새를 풍기며 자리로 돌아오는 초거. 초거를 보며 도리 선배가 말을 건넨다. 


“얼마나 마셨어.” 

“어젠 적당히 달렸어요.” 

“그걸 누가 믿냐.”      


“안녕하십니까.” 


과장이 느릿느릿 사무실로 들어온다. 손에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가 들려 있다. 과장이 들어서자 미리는 그제야 얼굴을 들어 올린다. 


과장은 십여 년 전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산다. 백육십오 정도의 키에 백 키로는 넘어 보이는 육중한 몸에서는 언제나 식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침 눈 뜨는 순간부터 달달한 라떼를 입에 넣어줘야 겨우 정신이 돌아온다는 과장. 그는 식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듯하다. 업무 중에도 압박감을 느끼면 말도 없이 뛰쳐나가 뭔가를 급히 먹고 오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늘 그렇듯 자바가 허겁지겁 사무실에 등장한다. 왜소한 체격에 커다란 백팩을 메고 다니는 자바는 항상 출근 시간 오 분을 남겨두고 출근한다. 도리 선배가 자바를 보며 혀를 차댄다. 지각은 아니지만, 매번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출근하는 자바가 도리 선배는 못마땅한 것이다. 자바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늦어서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바의 출근 시간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다들 오늘도 수고해주세요. 점심 전까지 결재할 거 올려주고. 오후엔 자리에 없을 예정이니깐. 아, 그리고 역삼점은 누가 담당인가?”


역삼점 담당자 미리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을 때리고 있다. 옆에 있던 자바가 미리의 팔을 툭 건드린다. 그제야 미리가 과장을 쳐다보며 느릿느릿 입을 연다.  


“아…… 접니다. 과장님.”  

“후우…… 주말 내내 판매사원 한 명도 없이 매대 앞이 텅 비었다고 하던데. 걔네 교육은 시키고 있는 거야 미리씨?”

“안 그래도 보고드리려고 했는데 그분이 발목 통증으로 급하게 수술을 받는다고…… 대체 인력을 구하고는 있는데 뽑히지가 않는가 봐요.”

“그걸 왜 이제 말해.”

“죄송합니다.” 

“사람이 없으면 미리씨가 가서라도 거기 서 있어야 하는 거야.” 

“…….”

“온라인 매장도 매출 변화가 없는 건 마찬가진 거 알고 있지? 이건 미리씨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내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도리 선배와 초거, 나, 자바 모두 물고기처럼 숨만 쉬고 있다. 


“후우…….”


과장은 입을 둥글게 말고는 빨대에 입을 가져가 응급처치라도 하듯 라떼를 빨아먹는다. 라떼의 처방 때문인지 다소 진정이 된 듯한 과장이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 올린다. 


“이대리.” 


도리 선배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과장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들을 옆으로 돌린다. 도라지 차와 홍초, 홍삼 같은 건강 음료로 과장의 채찍질 이후에 나오는 당근이라 할 수 있다. 도리 선배, 초거, 나, 자바, 미리 다섯 명의 책상 위에 과장이 준 건강 음료들이 놓여진다. 도리 선배, 초거, 나, 미리 네 사람 모두 책상에 그것을 놓아두기만 하지 뚜껑을 따서 절대 먹지는 않는다. 건강에 그렇게 좋다는 그것을 입에도 대지 않는 이유는 과장이 주는 것은 절대 먹지 말라고 입사 초반 도리 선배가 교육을 시키기 때문이다. 도리 선배가 정한 우리만의 룰인 것이다. 입사한 후 줄곧 초거와 나는 도리 선배의 눈치를 보느라 과장이 주는 것은 절대 먹지 않았으나 꼭 도리 선배의 무언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과장이 주는 것은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되어가는, 버리기 아까운 것들을 사원들에게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자바는, 도리 선배의 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과장이 준 홍삼 음료를 뜯어 입에 넣고 벌컥벌컥 들이킨다. 물론 자바가 도리 선배를 무시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자바는 그저 우리와는 다른 별개의 트랙을 달리고 있는 인간이다. 초거와 나는, 그런 자바를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지만, 도리 선배는 자바를 볼 때마다 속에서 뭔가를 꾹꾹 내리누르는 것 같다. 


과장이 준 홍삼을 다 흡입한 후 자바는 분위기 파악은 무슨 지나가는 강아지에게나 줘버리라는 듯 탕비실에 들어가 드립 커피를 내린다. 탕비실에서 내리는 드립 커피 냄새가 이곳까지 흘러나온다. 사무실 전체에 커피향이 가득 퍼진다. 도리 선배의 한숨이 점점 깊어진다. 그 와중에 커피 냄새는 왜 또 그렇게 좋은건지……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간혹 자바의 커피 내리는 시간이 기다려질 때가 있다. 십사 층 사무실 전 공간에 커피 냄새가 퍼지면 사막 같던 회사가 카페가 된 것 같다. 자바는 단골 카페에서 로스팅된 커피를 직접 사오는 듯했다.      


기획팀 과장들과 영업팀 과장들이 회의실로 들어간다. 과장들만 모여서 하는 회의는 주로 오전에 하는데 최근 들어 제조 공장들이 지방에 세워지고 해외 법인 설립으로 인해 회의가 길어지는 듯했다. 과장이 자리를 비우자 도리 선배와 초거, 내가 포함되어 있는 카톡방에 톡이 올라온다. 도리 선배 왈. ‘주말에 매장 나가서 서 있으라는 거 들었냐? 미친…….’ 초거 왈. ‘아침부터 헛소리는.’ 


도리 선배가 과장 책상 옆에 놓여 있는 금전수를 괜히 흘겨보며 한마디 한다.  


“어째 이놈의 화분들은 죽지도 않아. 물 한 번 준 적도 없는데 말이지…… 정대리.” 

“네.”

“네가 물주냐?”

“아니요.” 

“질기다 질겨.” 

“…….”

“꼭 누구 같다니까.” 


과장이 사라지고 몇 분 뒤 미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초거가 선물해준 화분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귀를 찢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사무실 가득 울린다. 영업 이팀 사람들의 시선까지 미리에게 집중된다. 


“으……으…… 으으흐흐으.”


미리가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한다. ……초거와 미리의 관계는 이제 거의 막바지에 온 듯하다.       


화분은 나도 입사 얼마 후 받은 적이 있다, 초거에게. 나는 화분을 받고 몇 시간 후 그것을 초거에게 돌려주었다. 초거가 입사한 이후부터 그가 찔러보고 다닌 여자들은 이 건물에서 수십 명은 넘을 것이다. 그는 어떤 취향이 있어서 특정 여자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 있는 대상이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다가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 줄 물건을 찾는 것이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초거에게 받은 화분을 그에게 다시 돌려준 후 바로 다음 날부터 초거는 보란 듯이 내 앞에서 다른 부서의 여자 직원에게 화분을 선물했다. 그는 뇌세포가 하나였다. 그는 그 이후에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했다. ……그때부터 지금껏 초거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하고 있지만 나는 입사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초거와 둘이서 야근을 한 적이 없다.

초거는 돈이 많고 집안이 좋았다. 늘 깨끗하게 클리닝된 최고급 브랜드 옷만 입고 다녔다. 여자들은 초거와 결혼하면 자신의 인생도 빛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몇 달도 되지 않아 쉽게 몸을 내주는 것 같았다. 


……초거가 여자들에게 화분을 선물하는 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주로 글라디올러스, 라는 꽃이 피어난 화분을 선물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식물의 꽃말은 밀회였다. 생존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 이곳에서 화분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보며 여자들은 금세 심리적 방어벽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여자들은 초거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이 얼마나 여성스럽고 결혼하기에 좋은 사람인지를 증명하는데 더 몰입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랑에 빠져 감상에 젖은 채로 맡은 일에 있어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이곳에 입사한 여자들은 대부분 재능이 많고 똑똑한 인재들이었지만 그런 여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버리는 것을 보며 나는 진심 안타까웠다. 나는 입사한 후 초반엔 여자 신입이 들어오면 초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조심스레 언급해 줬지만, 그때마다 그녀들은 나를, 초거를 빼앗으려는 경쟁 상대로 보고 대놓고 나를 경계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여자 신입들에게 초거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 초거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초거는 여자들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사귀던 여자들이 회사를 떠날 때마다 초거는 아무런 감정 변화를 겪지 않았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일을 했다. 어떤 동요도 없이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와서는 도리 선배와 주식 얘기를 했다. 주식이 떨어져 자신의 자산에 약간의 손해라도 가는 날이면 그때 유일하게 감정 변화가 있을 뿐이었다. 

여자와 돈…… 에 빠져들어가는 초거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곳에도 초거의 시선이 머무르지 않는 것 같았다. 본인은 알 수 없겠지만 만족이 뭔지 모르는 초거의 삶은 비참해보였다.  


여자들은 모두 한 명도 예외 없이 초거와 헤어지고 퇴사를 선택했다. 사실 관계를 정리하게끔 유도한 것은 초거였을 테지만 여자들은 그것을 몰랐다. 그는 교묘하게 여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여자들 스스로 자신의 배경과 재능, 능력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고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는 표정과 말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임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에 너무나 뛰어났다. 초거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여자들은 알지 못했다. 


나는 단 한 번도 표정 관리를 하지 않고 초거를 대면한 적이 없다. 지금껏 초거에게 내가 갖고 있는 진짜 표정과 감정을 그에게 내비친 적이 없다. 나는 철저하게 나 자신을 숨기고 초거를 대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는 나 자신을 모두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적어도 그에게는 나의 어떤 것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를 진심으로 대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미리의 울음소리에도 초거는 매일 아침 루틴인 주식 현황을 확인하며 태평하다.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우는 미리를 그냥 내버려 둔다. 옆에 앉은 도리 선배가 나를 부른다. 


“정신 대리.” 

“네.”

“네가 졌지?”


도리 선배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직 모르죠…….” 


도리 선배와 나는 미리가 입사하기 전, 이번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육 개월 만에 퇴사를 할 건지, 안 할 건지를 가지고 내기를 한 적이 있다. 도리 선배는 신입사원이 뽑혀 들어올 때마다 밥을 얻어먹을 구실로 내게 내기를 걸어온다. 도리 선배는 당연히 퇴사를 한다, 에 걸었고 나는 자동으로 아니다, 에 건 셈이 되었다. 이렇게라도 후배에게 붙어서 밥을 얻어먹으려는 도리 선배의 속내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거절할 구실을 찾을 수도 없어서 내기를 수락하고는 했다. 네 밥값 정도야 내주는 게 무슨 대수겠냐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내기를 수락하는 내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오늘 뭐 먹을까요.” 


초거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앉은 도리 선배에게 묻는다. 


“글쎄.”

“뜻뜻한 게 땡기는데 말이죠.”

“좋지, 좋아.” 


초거가 담배를 들고 사무실 문밖으로 나간다. 미리는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 사무실에서 혼자 울다가 스스로 머쓱해졌는지 울음을 멈추고는 넋이 나간 듯 모니터만 보고 있다. 옆에 있던 도리 선배가 내게 말을 건넨다.  


“솔직히…….”

“네?”

“아니 초거 말이야.”

“초거요?”

“저 새끼랑 솔직히 밥 같이 못 먹겠어.” 

“…….”

“피부병인 것 같은데.”

“…….”

“봤냐? 목에 무슨 곰팡이처럼 올라온 거…….”

“아. 그래요. 전 안 보이던데.” 

“저 인간이 좀 더럽냐.”

“…….”

“피부에 난 거 저거 성병이 분명하거든. 근처에 가고 싶지도 않단 말이지.”      


오전 열한 시. 어지러운 숫자들을 머릿속으로 밀어 넣는다. 내가 다니는 회사, 쉘로우 비치는 주류 제조업으로 작년부터 매출이 백 억대를 웃돌고 있다. 삼 년 전부터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올 한해만 해외 법인 두 곳이 추가로 세워졌다. 


회사가 전략 상품으로 내놓은, 회사 이름을 딴 칵테일 음료 쉘로우 비치의 인기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B, E 국에서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임원들은 장기적이고 거대한 소비 시장 개척을 위해 N 국으로의 진출을 위해 더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해외부서들은 N 국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고자 분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쉘로우 비치는 혼술족, 여성 일인 가구, 직장을 다니는 여성 솔로족들에게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알코올 함량을 줄여 음료처럼 편하게 마실 수 있고 맛도 깔끔해서 욜로족의 진정한 위로제가 드디어 출시되었다고 전국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쉘로우 비치는 알코올 성분이 낮기는 해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 먹고 나서 얼마 후엔 취기가 올라왔다. 기분 좋을 정도의 취기였고 다음날 일 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연인과의 데이트 대신 마트에 가서 쉘로우 비치를 사러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용기 때문에 다 먹은 병을 집에 장식해두기 위해 일부러 구입하는 여성들도 많았다. 


나도 입사한 후 마음의 위로를 좀 얻어보려고 퇴근 후 한두 잔씩 홀짝거리곤 했었다. 그러다 매일 먹게 되면서 이 년간 칵테일 없이는 잠도 오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다. 심각성을 느낀 후 습관처럼 마시는 것을 완전히 끊어내는데 반 년이 걸렸다. 그 이후부터는 회사 음료에 손도 대지 않는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음료 코너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회사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주류회사에 다니다가 알코올 중독에 걸려 강제로 퇴사 당하기 싫으면 슈퍼 음료 코너부터 철저히 발길을 끊어야 한다는 말은 남 일이 아니었다. 


도리 선배 역시 술꾼으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매달 직원 할인가로 주류를 사서 저장해둔다. 과장이 지방이라도 내려가는 날엔 텀블러에 칵테일과 사이다를 섞어 홀짝거리곤 한다. 그런 날이면 도리 선배는 일하다 말고 사무실에 가져다 놓은 섬유 탈취제를 사방에 뿌려댄다. 십 년간 이곳에서의 감옥살이를 견디게 하는 유일한 것이 도리 선배에게는 술인 것 같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도리 선배의 손이 언제부턴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못 본척한다.      


회의에서 돌아온 과장은 점심시간이 시작되어도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아 있다. 보아하니 문서 작업을 하며 파일 압축이나 문서 도구들을 제대로 쓰지 못해 애를 먹는 중인 듯했다. 과장의 그런 모습을 보며 도리 선배는 늘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도리 선배가 과장에게 다가가 흑기사를 자초한다. 도리 선배는 초거와 나를 향해 오늘은 점심 먹기 글렀으니 먼저 나가라고 손짓을 보낸다. 초거, 미리, 나, 우리 셋은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간다. 옆에 있던 초거가 내게 한마디 한다. 


“과장 오른팔은 도리 선배지.” 

“내 말이.” 


초거와 나는 이미 도리 선배의 심리전을 간파하고 있은 지가 옛날이다. 초거와 나에게 과장 욕을 하며 과장에 대한 불신감을 키워놓고는 도리 선배 본인은 과장 마음에 들려고 안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가장 절실한 사람은 바로 도리 선배라는 것을 초거와 나는 잘 알고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 있는 사원들의 손에 다들 우산이 들려 있다. 우리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우산을 챙겨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 층 로비에 도착해 나는 회전문 앞에 멈춰 선다.   


“저기.” 


초거는 벌써 미리와 둘이 남겨질 것을 예상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너 또…….”

“초거랑 같이 맛있게 먹어요.” 


나는 미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우산을 펼쳐 들고 회전문을 나선다. 뒤에서 초거가 궁시렁거린다. 


“야, 아예 카페 하나를 차리지 그러냐.”      


나는 비가 오는 날에는 식당 대신 무조건 카페로 간다. 회사에서 오십여 미터 떨어진 카페 이레이져로 들어가 에그샌드위치와 블랙티를 시킨다. 카페 사장 엠제이. 이십 대 젊은 사장은 내 이름까지 알고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이름을 물어보더니 오곡라떼 위에 내 이름을 새겨주었다. 사장의 그런 섬세함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곳은 마들렌이 너무 맛있다.  


손님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쁘고 젊은 사장 때문에 이곳은 항상 붐빈다. 다행히 창가 쪽 한 자리가 남아있다. 금방 나온 에그샌드위치와 블랙티를 들고 창가 쪽 자리로 가 앉는다. 사장이 직접 만든, 손바닥보다 더 큰 에그샌드위치를 먹으며 비가 내리는 창밖을 구경한다. 한 무리의 직딩들이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샌드위치를 반쯤 다 먹었을 때 즈음, 창밖으로 낯익은 누군가가 지나간다. 윤익 선배다! 검정색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선배는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는 무어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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