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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13. 2024

십사 층 화장실 : 여신 유튜버의 대포

따각거리는 구둣발 소리를 내며 화장실에 들어온 여자는 분명 주비서다. 화장실 안에 퍼지는 은은한 자몽 냄새…… 오른쪽 맨 마지막 칸 변기에 앉아 있는 나에게까지 주비서의 향수 냄새가 밀려온다. 이 회사에서 샹스 오 땅뜨르 향수를 쓰는 사람은 주비서 한 명밖에 없다. 주비서는 늘 같은 자리, 오른쪽 첫째 칸에 들어갔을 것이다. 곧이어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쀼쀼 뿌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럴 땐 정말 난감하다. 주비서는 변기가 부서지도록 대포를 쏘아댄다. 아마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을 것이다. 아침 일곱 시를 이제 막 넘긴 시간에 화장실에 누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주비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소리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듣고 있다. 발레리나 같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데시벨이 나올 수 있는지…… 어젯밤 유튜브 여신먹방 채널에서 십 인분의 소곱창을 쉬지 않고 입속으로 밀어 넣는 주비서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지금이라도 바지를 올리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갈까 고민했지만 나는 천천히 발끝을 들어 올린다.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탄력 하나 없이 흐물거리는 내 허연 허벅지만 보고 있다. 허벅지 위로 어지럽게 날벌레들이 날아든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화장실 바닥에 놓인 손바닥만한 화분 안에서 벌레들이 기어나온다.  


화장실 입구 바닥에서부터 맨 안쪽 칸까지 다양한 키높이의 화분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사람이 아닌 화분들에게 치이지 않게 바닥을 잘 보고 걸어 다녀야 할 만큼 회사 화장실이 근린공원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직원들의 친환경적 문화 감수성을 위해 화장실에 식물들을 놓아둔 것치고는 어딘가 지나친 데가 있다고 오래전부터 느껴왔지만, 별수 없다. 


나 때문에 중요한 흐름이 끊기면 안 되니까…… 


친하지도 않은 주비서의 흐름을 왜 내가 배려하고 있어야 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주비서가 물을 자주 내려주었고 진동하는 향수 냄새에 자연의 냄새가 묻히기도 한 것 같다. 귓가를 때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변기에 앉아 있는 것이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주비서는 그렇게 이십 분 남짓 볼일을 보고 자리를 뜨셨다. 나는 주비서가 화장실을 나가고 나서도 한참을 변기에 앉아 있었다. 


……자주 그랬다. 한적한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회사로 걸어오는 길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의 엉덩이에서 뭔가가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남성은 뒤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무방비 상태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당하는 테러. 그것도 항상 아침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너무 적나라고 이기적인 소리. 얼마 남아 있지도 않은 동심이 파괴되는 것 같은 폭력적인 소리. 그의 뒤에서 걸어가던 나는 걸음을 멈추지도 못한다. 괄약근이 너무 약해져서 그런 건지도…… 그런 상황에 또 그걸 이해하고 있는 나란 사람. 남성이 인기척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그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그가 아는 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나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손에 든 폰을 노려보며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아유, 밤마다 뭘 그렇게 처먹길래 아침마다 변기에 똥을 튀겨나?”


화장실 청소부 옥망 여사가 짜증스레 한소리를 한다. 나는 변기에서 일어나 바지를 올리고 물을 내린다. 첫째 칸 화장실 앞에서 옥망 여사가 얼굴을 찌푸린 채 변기솔을 들고 서 있다. 백칠십이 넘는 큰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짧은 커트 머리의 대장부 같은 옥망 여사는 이곳 삼십오 층의 회사 건물을 박물관처럼 깨끗하고 우아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성격은 다소 거칠어 보여도 청소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 


“집에서나 싸고 오지 말이야. 아니면 얌전히나 싸놓고 가던가. 잉?”


옥망 여사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나를 붙잡고 한탄이라도 하고 싶은 것 같다. 주비서가 남기고 간 흔적으로 인해 왜 내가 이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천천히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선다. 


“매일 닦아도 여기는 항상 이러니. 잘 좀 싸지르라고 경고라도 줘야 하겄어?” 


옥망 여사의 호랑이 같은 기에 눌려 나도 모르게 죄수가 된 듯 쭈뼛쭈뼛 화장실을 나가려다가 순간 멈칫한다. ……? 바닥에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귀걸이다. 초승달 모양의 팬던트가 달린 은색의 얇은 귀걸이였다. 아마 주비서 귀에서 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허리를 숙여 귀걸이를 주웠다. 옥망 여사에게 맡길까 하다가 되려 신경질을 내실 것 같아 귀걸이를 손에 들고 화장실을 빠져나온다.      


퇴근 후 집에서 하는 것도 없이 빈둥거리고 있다보면 금세 열한 시가 넘어버린다. 그제야 냉장고에 들어 있던 빵 부스러기와 말라비틀어진 과일 조각을 꺼내 저녁을 먹는데 그럴 때마다 심심풀이용으로 유튜브를 틀어놓는다. 채널 중에 혼쿡, 이라는 요리 프로그램을 자주 보곤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를 소개해주고 직접 만들어보는 십 분 미만의 짧은 영상인데 이제껏 백여 건의 영상을 모두 봤으면서도 따라서 만들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다 두 달 전, 혼쿡 채널 밑에 들어온 추천 영상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여신먹방. 썸네일에 올라온 가면을 쓴 여성 유튜버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져 클릭을 했었다. 여신먹방의 유튜버는 닭털 같은 허잡스런 깃털로 만든, 눈만 가린 가면을 삐뚤하게 쓰고 있었는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단번에 주비서, 임을 알 수 있었다. 


여신먹방은 구독자가 일만 명이 넘어가는, 만들어진 지 이제 일 년 정도가 된 채널이었다. 어떤 영상의 댓글은 천여 개가 넘어간 것도 있었다. 그날 여신이 냉동 삼겹살 이십 인분을 먹어치우는 라이브 방송을 홀린 듯 두 시간 넘게 보고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두 달간 거의 한주도 거르지 않고 여신의 라이브 영상을 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나는 여신먹방의 열렬 구독자가 되어 있었다.  


목요일에 한 번씩 영상을 올리는 주비서는 금요일 아침이면 늘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그 이유가 먹방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회사에서 나밖에는 없는 듯했다. 주비서는 십 년간 회사 사장의 손과 발이 되고 있는,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인재다. 특히 외모에 있어서 손바닥만한 얼굴에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 호리호리한 몸매에 키가 작은 편이 아니지만, 항상 킬힐을 신고 다녀 웬만한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주비서는 우리 회사의 여신이 분명하다. 나와 입사 동기인 초거는 입사하자마자 주비서에게 커피를 챙겨주며 집적거렸는데 초거는 제대로 된 액션도 못해보고 주비서에게 단칼에 거절당했다. 결혼한 도리 선배도 주비서가 영업부에 들르기만 하면 뭔가 좀 더 챙겨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의 시선까지 붙잡아 매두는 압도적 비주얼, 곁에만 지나가도 오금을 시리게 만드는 철벽 방어로 감히 어떤 남자도 주비서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주비서는 개인적인 일에 관해서는 철저히 숨기고 점심도 대부분 혼자 나가서 먹거나 가끔 과장들 점심 모임에 끼여 먹지 다른 층 비서들과는 함께 먹지 않는다.        

주비서의 귀걸이를 주운 그 날 퇴근 후, 마트에서 오랜만에 장을 봤다. 두부와 계란을 좀 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생각만 했다. 마들렌, 아이스크림, 비스켓, 오징어, 빼빼로…… 같은 주전부리만 잔뜩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마트에서 사온 물건들을 냉장고에 대충 밀어 넣고 침대에 누워 잠시 졸았는데 일어나 보니 아홉 시가 넘어가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들어가 씻고 나왔다. 침대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혼쿡 채널을 보며 눈으로 저녁을 먹고는 열한 시에 맞춰 주비서의 채널을 틀었다. 주비서는 보기만 해도 혀가 얼얼해지는 벌건 닭발과 소주 대여섯 병을 책상 가득 펼쳐 놓고 먹기 시작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 마트에서 사다 놓은 마들렌, 쿠앤크 아이스크림, 아이비와 버터 소스를 가져와 침대 위에 앉았다. 


“우리 님들아 꼬몬 꼬몬. 지금 막 시작했잖아. 오늘 닭발이 먹고 싶어서 사왔는데 지난 번에 쌀벌레님이 추천해주신 거잖아.”


여신은 유리잔에 가득 찬 소주를 천천히 들이킨다. 소주가 식도에 넘어가는 것을 음미하며 주비서가 지그시 눈을 감는다. 소주 한 컵을 원샷한 후 여신은 젓가락으로 닭발을 집어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나도 아이비 위에 쿠앤크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을 얹어 입에 넣는다. 


주비서는 오늘따라 한껏 멋을 낸 것 같다. 어깨선이 시원스레 노출되어 있는 옷을 입은 탓에 투명한 브래지어 끈이 다 드러나 있다. 음식을 먹는 그녀의 모습보다 어쩔 땐 그녀의 긴 목과 희다 못해 눈부신 어깨에 더 시선이 가곤 한다. ……확실히 주비서의 채널은 계속 보게 되는 뭔가가 있다. 구독자들에게 반말을 해대며 단번에 방어벽을 무장해제시키고 얼굴에 쓴 닭털 가면 탓에 사람의 상상력을 무한으로 자극시킨다. 혹시 성형 중독으로 얼굴이 망가진 여자가 아닐까, 아니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재벌가에 시집갔다가 몇 달 만에 이혼한 여자거나…… 라이브 방송을 할 때마다 제발 가면을 벗어달라고, 얼굴만 보여주면 여신님이 부르는 대로 현금을 입금시키겠다고 애원하는 남성 팬들의 댓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곤 하지만 여신은 그런 것에 반응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술기운 탓에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는 여신이 화면을 꼬라보며 주절거린다. 


“님들아, 나 오늘 귀걸이 잃어버렸잖아. 한쪽. 선물받은 건데 너무 속상하잖아.” 


그 즉시 채팅창에 누가 선물해준 거냐고 구독자들의 질문이 쇄도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백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거린다. 주비서의 귀걸이가 없다! 분명 가방에 넣어둔 것 같은데…… 머리를 굴려본다. 한참 만에야 주비서의 귀걸이를 회사 사무실 모니터 앞에 놓아둔 것이 기억난다. 


“어떤 년이 훔쳐 간 거야. 내 귀거리이이이잉. 빨리 안 들고 와? 흐흐흐흐. 기분이 이상하잖아……. 내 귀걸이 훔쳐 간 인간이 내 구독자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잖아. 지금 내 방송 보고 있지 너……. 방구석에서 아이스크림이나 혼자 떠먹고 있는지도…….”


주비서가 이백사십 명쯤 되는 라이브 시청자 중 나만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이비에 버터 소스를 찍어 먹다가 멈칫하고는 화면을 응시한다. 아닌 줄 알면서도 괜히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래, 너, 너, 돌아보는 너!” 


나를 향해 비소를 날리는 주비서를 보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까아아약. 꺄꺄꺄.”


순간 정신 나간 여자처럼 웃어 제끼는 주비서……. 나는 화면 앞에서 잠시 얼어붙는다. ……후우. 나는 호흡을 천천히 길게 하면서 진정한다. 잠시 뒤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유리잔에 소주를 채우는 주비서를 보며 나는 안도하며 천천히 아이스크림에 숟가락을 꽂는다. 아직 녹지 않은 부분은 너무 딱딱해서 숟가락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부들부들 떨면서…… 숟가락을 아이스크림에 꽂아 넣는데 주비서가 풀린 눈으로 채팅창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내려간다. 


“누가 귀걸이 선물해 준거냐고? 내 남자친구잖아.”


구독자들은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댓글을 심하게 자주 올리는 사람 중에 흥사장, 이라고 있다. 흥사장의 댓글을 읽어보면 너무 다정스러워 주비서와 연인관계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오고고고 우리 아가 맛있게도 멍네요. 우리 아가 위를 채워주려고 나왔지요. 위 비워지면 또 화낼거지요. 그래서 식량 사서 갈테니까 기둘리세요. 집에 참기름 없던데 아가 좋아하는 곱창이랑 같이 사서 갈게요.’ 여신을 아가라고 부르는 흥사장의 댓글에 여신은 감사의 답글을 항상 달아 올린다. 유일하게 흥사장의 글에만. 몇 개월 전부터 흥사장이 여신의 애인이라는 추측성 댓글이 수없이 올라왔지만, 여신은 이 상황이 그저 재밌는지 댓글을 보며 실실 웃고만 있다. 


유감스러운 사실은 우리 회사 사장의 이름에 흥, 자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회사 흥사장과 주비서가 연인관계라는 말은 몇 년 전부터 나돌아다니고 있는 루머였다. 짐작하건대 여신먹방에 댓글을 다는 흥사장이라는 사람은 주비서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진짜 우리 회사 흥사장일 수…… 있었다. 나이가 칠십인 흥사장은 사장실에 처박혀서는 얼굴 한번 비추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럼 그렇지…… 일하느라 바쁜 게 아니라 연애하느라 코빼기도 안 보였던 거구만.” 


나는 아껴두었던 마들렌의 포장지를 뜯어낸 후 마들렌 위에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을 떠서 올린 후 입에 넣는다. 마들렌은 씹지 않아도 녹아내릴 것처럼 부드럽다. 나는 너무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환희에 주먹을 쥐고는 가볍게 몸을 떨어준다. 평생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마들렌. 


라이브 방송 채팅창에 읽지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댓글이 올라온다. 그 중 백조라이프 라는 닉네임의 댓글이 유독 눈에 띈다. 여신도 나처럼 백조라이프의 댓글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괜찮은 사람을 너네한테 소개시켜달라고? 백조라이프님, 너 지금 뭐라고 한 거잖아.” 


얼큰하게 취한 여신. 여신이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귀신처럼 음산하게 웃어댄다. 


“이것들은 주는 것도 없으면서 뭐가 그렇게 해달라는 게 많잖아? 너네들 즐겁게 해주려고 위가 찢어지도록 먹고 있잖아.”


화면에 대고 자기 구독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주정녀 여신.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가끔 욕도 섞여 있는 여신의 말들이 필터 없이 그대로 방송된다. 목요일 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이 야밤에만 볼 수 있는 진기한 풍경…… 여신의 리얼한 주정 탓인지 라이브 방송 시청자가 이백 명대에서 오백 명 대로 순식간에 늘어난다. 가식은 하나도 없는 그래서 더 끊지를 못하겠다. 여신의 방송은. 


“내가 또 이래놓고는 마음이 약하잖아. 구독자님이 해달라는데 노력은 해야 하잖아. 있어 봐. 님들아.”  


삿대질을 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소개해줄 만한 주변 인물들이 있는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 여신.  


“가만 있어보자…… 영업 일팀은…… 변태랑 히끼, 유부남 스크루지가 있긴 한데…….”


헉. 진짜 정확하다……. 나는 들으면서 좀 놀란다. 내가 속한 영업 일팀에는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변태 그놈은 사람을 쳐다보는 게 아니라 뜯어보잖아. 신입사원이랑 요즘 썸탄다고 하잖아. 여자면 다 들이대는 변태 새끼잖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초거와 미리의 관계는 모든 부서에 이미 소문이 난 듯하다. 


“결혼한 남자 대리는…… 지독하잖아…… 돈 백 원도 아까워서 벌벌 떠는데 회식에서 남은 음식 싸갖고 가는 인간이잖아. 그게 마누라랑 자식 먹일 게 아니라 지 술안주 하려고 갖고 가는 거란 말이잖아.” 


도리 선배는 회식 때마다 사무실에서 비닐팩을 챙겨가서는 남은 음식을 집으로 싸가지고 간다. 우리 팀과 회식 한번 한 적 없는 주비서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다른 남자 사원 있는데 걔는 히끼코모리잖아.” 


아마 자바를 말하는 것 같다. 


“아침마다 칼출근 하는 인간이 한가하게 드립 커피 타서 먹는데 눈치 없는 게 아주 심각한 수준이잖아.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조여온다고 하잖아. 뭐 걔는 포기한 것 같잖아. 지 동료들도……. 여자는 없냐고? 여자 있잖아. 대린데…… 대리 그 년은…….”


대리면…… 난데? 나는 수저로 아이크림을 푸던 손을 가만히 멈춘다. 천천히 노트북 볼륨을 높인다. 


“그 년은…….”


주비서는 닭발을 입에 넣고 한동안 씹지도 않고 가만히 생각을 하는 눈치다. 


“뭐라고 해야 하나…… 얼굴도 몸매도 다 중간…… 더럽게 평범한 년이잖아……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살아 있는 거 보면 눈치는 졸라 빠른 것 같은 년이잖아…… 대화는 잘 안 해봤잖아. 하고 싶지도 않잖아. 그냥 그년도 재수가 없잖아. 영업부는 다 재수 없는 년놈들 밖에 없잖아.” 


나는 수저에 아이스크림을 올린 후 그 위에 마들렌을 얹어 입속에 밀어 넣는다. 더럽게 평범한 년…… 뭘까…… 왜 화가 안 나는 걸까…… 항변을 못 하겠다…… 맞는 말이긴 하니까. 


“아, 한 놈이 있잖아. 기획부에 결혼 안 한 과장이 있다는 거잖아…… 얼굴 반반하잖아. 그 정도면 괜찮기는 하잖아. 근데 또라이라서 안 되잖아.” 


그 또라이는 내가 대학 때부터 짝사랑했던 윤익 선배다. 


“전 여친한테 차였다는데…… 그 여자가 우리 회사에 청소부로 들어왔다고 하잖아.” 


나는 그만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믿거나 말거나잖아. 그게 진짜인지는 나도 모르잖아.” 


나는 회사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윤익 선배에게 연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그것 때문에 괴로워 술로 마음을 달래다가 알코올 중독까지 갈 뻔했었다. 윤익 선배의 연인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너무 소중한 것은 감춰두고 싶은 것처럼 윤익 선배는 누구에게도 연인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고 인정하기 싫지만, 그때처럼 윤익 선배의 얼굴이 빛났던 적은 없었다. 이 년 후쯤 사귀던 연인과 헤어졌다는 소문이 회사 내에 돌았고 그 이후부터 윤익 선배는 아무와도 만나는 것 같지 않았다.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여자 동료들에게 무심한 것은 물론이고 소개팅 자리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때부터 선배는 눈에 띄게 살이 빠질 정도로 심하게 일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그 여자인 것 같다. 몇 달 전 화장실에 들어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급히 밖으로 나가버린 그 여자. 청소부치고는 지나치게 젊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가 맞는 것 같다. ……결국 먹방은 지저분하게 끝이 났다. 책상엔 소주병들이 나뒹굴고 여신은 책상에 얼굴을 박은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절거리는 모습을 끝으로 영상이 끊어졌다.      


금요일. 출근길. 여신먹방 덕에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몸에 모래주머니를 가득 달고 있는 것 같았다. 컨디션이 오전 내내 바닥이었다. 입맛이 없었지만, 부서 사람들과 억지로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고 들어왔다. 화장실에서 칫솔질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주비서와 마주쳤다.


“저기요. 정대리. ”

“네?”


나는 입에 묻은 물기를 손으로 닦아내며 주비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키 차이가 꽤 나는 관계로 나는 고개를 약간 들어야 했다. 주비서는 나를 매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요?”


주비서의 너무 당당하게 들이미는 자세 때문에 나는 잠시 당황한다. 


“……네?”


순간 내가 지 구독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없냐구요.”

“아…… 사실…… 제가…….”

“…….” 

“그게…… 제가 목요일에…… 보기는 하는데…….”

“뭐요?”

“끝까지는 다 못보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네?”

“귀걸이 말이야…… 제 귀걸이가 왜 당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냐고?”

“……아.”

“뭐야, 당신?” 


머릿속이 하얘진다. 주비서는 팔짱을 끼고 너 오늘 한 번 죽어봐라, 라는 표정으로 서 있다. 


“그……게.” 


머릿속에 엉킨 생각들로 인해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문득 뒤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린다. 쩌렁쩌렁하게 화장실 안을 울리는 목소리. 


“아, 그거 내가 주웠어요.”


헉! 그 젊은…… 청소부다!


“은색 귀걸이 말이죠? 어제 내가 주워서 그 사람에게 줬어요.” 


언젠가 화장실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유리구두 대신 푸른 잎사귀 하나만 남기도 도망간 그 여자. 청색 수건으로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있었지만, 수건 밑으로 얼핏 보이는 젊고 당찬 기운은 감춰지지 않는다. 청소부 가슴에 달린 이름패에 새겨져 있는 이름, 싼티……. 주비서는 어디서 튀어나온 개뼉다구야, 라는 눈으로 청소부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화장실을 휑 나가버린다.  


감사의 말이라도 하려고 세면대 앞에 멀뚱거리며 서 있는 나를 보며 싼티는 어서 나가라는 듯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화장실에 놓인 식물들의 녹색 잎 한 장 한 장을 손으로 매만지며 자기 새끼처럼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싼티의 얼굴은 이 순간 너무 행복하니까 제발 방해하지 말고 어서 꺼져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화장실 을 아마존으로 생태계화 시켜놓은 장본인은 바로 이분이신 듯하다. 


순간 화장실 안으로 햇살이 밀려 들어왔다. 짙은 녹음 냄새가 주변을 가득 메운다. 극락조, 아레카야자, 알로카시아, 파키라, 해피트리, 떡갈나무, 행운목, 뱅갈고무나무, 스킨답서스, 버킨, 오드리…… 모든 식물이 동시에 몸을 흔들어대었다. 화장실 안에 바람이 불어오는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싼티가 자신들에게로 가까이 다가서자 식물들은 좋아서 몸을 흔들어댄 것이었다. 나무가 웃고 있구나……. 나는 처음 알았다. 반려동물들이 주인의 표정을 보고 웃고 우는 것처럼 식물들도 주인을 보고 웃는다는 것을. 


잠깐 동안 새나 바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을 몰래 엿본 것 같았다. 신비하다, 라는 말은 동화책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그날 나는, 신비를 회사 십사 층 화장실에서 경험했다. 나는 좀 더 이곳에 있고 싶었지만 아니 가능하면 이곳을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천천히 뒤돌아섰다. 화장실을 나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사무실은 아까 그 여자가 있던 곳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윤익 선배의 전 여친, 싼티.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싼티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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