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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14. 2024

탕비실 : 마들렌 천사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카운터로 가 마들렌 한 통을 산 후 마들렌을 코트 안에 소중히 밀어 넣는다. 카페를 나와 우산을 펼쳐 들고는 윤익 선배를 향해 뛰어간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낙엽들이 비에 젖어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매트를 밟는 것처럼 땅이 기분 좋게 폭신폭신거린다. 선배 뒤에 바짝 따라붙고 나서야 나는 속도를 줄인다. 선배를 따라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통화가 끝난 것 같지만 선배는 뒤에서 쫓아가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점심 식사를 마친 직딩들 열댓 명이 엘리베이터 부근에 몰려 있다. 칠, 팔, 구 층 계열사 직원들인 것 같았고 거의 대부분 여자였다. 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선배, 나, 여직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간다. 선배는 앞쪽 코너로 바짝 몸을 붙인다. 


“저기요. 팔 층 좀 눌러주실래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선배는 아무 반응이 없다. 뒤에서 흰색 코트를 입은 여직원이 선배의 팔을 콕콕 찌른다. 선배가 귀에서 무선 이어폰을 빼고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팔 층이요.” 

“아.” 


얼른 선배가 팔 층 버튼을 누른다. 뒤쪽 구석에 서 있던 나는 흰색 코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입술이 도톰하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리가 긴 건강미 넘치는 여자애는 아직 이십 대 중반도 안 되는 것 같다. 그 인간이네, 지는 손가락이 부러졌나……. 괜히 짜증이 올라온다. 오래전부터 윤익 선배는 이 건물 여직원들 사이에서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보다 한 참이나 어린 여자 직원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판과 소문에 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는 윤익 선배는 자신이 어린 애들로부터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할 것이다. 


안 보는 척, 곁눈질로 선배를 힐끗거리는 암코양이들…… 그들은 목표물에 틈새가 보이면 언제든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복사기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십사 층에 올라와서는 복사를 하는 척하며 윤익 선배의 뒷모습을 힐끗힐끗 보고 가는 여자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흰색 코트는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십사 층을 자주 들락거리는 인간이다. 


구 층에서 여직원들이 전부 내린다. 엘리베이터 안에 선배와 나, 단둘이 남아 있다. 그때까지도 선배는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나인 줄 알지 못한다. 옆으로 슬쩍 눈을 돌려 선배를 바라본다. 그냥 막 걸치고 나온 듯한 차림새. 십 년은 입었을 것 같은 낡은 티셔츠. 가을이 깊어 가지만, 아직도 반팔티를 입고 있는 삼십칠 살이나 먹은 너란 사람. 회사 근처에 전셋집을 얻어 혼자 산다는 선배의 집이 어떤 모습일지는 대충 그려진다. 책상 하나만 봐도 그 책상 주인의 집이 어떨지는 감이 오기 때문에. 기획 이팀 오른쪽 첫 번째 자리인 선배의 책상을 보면 기획 이팀 책상 중에서 제일 더럽다. 온갖 쓰레기 잡동사니와 담배, 어디서 발행된 건지도 알 수 없는 잡지들, 일회용 종이컵과 선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어디서 주워온 듯한 피라미들이 헤엄쳐 다니고 있는 텀블러 크기만한 어항까지…… 피라미들은 선배의 무심함에 곧 죽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일 년 넘게 잘 자라고 있는 기특한 녀석들이다.       


대학 때부터 선배는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선배는 외모도 훌륭했지만 의외로 내성적인 성격에 욕도 못 할 만큼 부드럽고 후배들에게 밥을 잘 샀다. 선배 주변에는 늘 여자애들이 같은 과, 다른 과 할 것 없이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렸다. 선배는 항상 누군가와 사귀고 있는 중이었는데 선배의 사귐에는 한 번도 방학이라는 것이 없었다. 여자애들은 선배에게 알아서 고백을 해주었고 선배는 자신의 의지로 한 번도 고백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극히 수동적인 느낌의 연애였지만 그런 연애를 다른 남자애들은 전설이라고 불렀다. 선배와 사귄 여자들은 전부 하나 같이 공부를 미친 듯이 잘하거나 외모가 그야말로 천재거나 몸매가 지나치게 끝내주거나…… 그랬다. 


그러나 그런 여자들과 선배는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동기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문으로는 선배 쪽에 원인이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선배는 쓸데없이 진지하고 잘 씻지 않으며 선호하는 음식, 패션 등 개인 취향에 있어서 너무 외골수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추운 겨울 데이트를 할 때마다 십 년 전에 유행했던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고 나오는 남자를 처음에는 귀엽게 봐주다가도 어느 순간 귀여운 마음과는 다른 어떤 것이 올라올 수 있을 거라는 건 대충 예상해볼 수가 있었다. 여자들은 그런 선배에게 질려서 먼저 떠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좋았던 선배가 돌연히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선배가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선배의 이복동생이 학교에 찾아와 행패를 부린 적이 있었다. 이복동생은 급하게 사람을 찾는다는 핑계로 학교 방송부에 찾아가 마이크를 잡고는 고래고래 선배의 이름을 부르며 집안 사정을 폭로했다. 선배의 집안은 재산 문제로 시끄러운 것 같았다. 계모가 이복동생에게 재산 상속 신청을 했고 그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던 선배가 법원에 소송을 건 것 같았다. 한순간에 선배의 집안 사정을 캠퍼스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것이다. 선배와 이복동생이 서로 몸싸움까지 붙었던 그 날 경찰이 오고 나서야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반달 눈을 지그시 감고 선하게 웃음 짓던 선배의 얼굴은 더이상 볼 수 없었다.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는 일도 일절 없었다. 집에서 독립한 후 역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한다고 들었지만, 그 누구도 선배의 자취방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선배는 그렇게 학교와는 거리 두기를 하는 것 같았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이 되어 그 이후부터 선배의 모습은 사라졌다.      


선배를 따라 십사 층에서 내린다. 사무실 복도 끝쪽에 있는 탕비실로 바로 들어가 기획팀의 간식 서랍을 열어젖힌다. 초콜릿, 비스켓, 사탕…… 주비서가 챙겨놓은 간식들이 아직 한가득 남아 있다. 커피와 음료들은 일주일 만에 바닥이 나지만 다른 간식들은 몇 개월이 지나도 잘 팔리지 않는다. 나는 품속에 숨겨둔 마들렌을 기획팀 간식 서랍 맨 위에 놓아둔다. 참고로 나는 입사한 이후 내 돈으로 영업팀의 간식을 사다 둔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마들렌은 선배가 대학 때부터 좋아했던 간식이다. 넓은 도서관에 숨어 있는 선배를 찾기 위해 전화를 걸 필요가 없었다. 책상 위에 마들렌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는 자리는 무조건 선배의 책상이었으니까. 나는 선배가 군에 가 있는 내내 이름을 쓰지 않고 마들렌 간식을 보내주었다. 대학에서도 무슨 데이 때마다 선물 꾸러미들을 많이 받아봤던 선배였기에 마들렌 천사가 누군지 구지 알아내려는 노력을 선배는 하지 않았다. 상관이 없었다. 그가 자신의 천사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감사하고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선배는 기획팀 간식 서랍에 칠 년 동안 마들렌을 갖다 놓은 범인이 누군지 관심이 없다. 비서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대용량으로 대충 골라 사다 놓은 간식들 속에 운 좋게 자신이 좋아하는 마들렌이 놓여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탕비실을 나가려는데 윤익 선배와 마주치고 만다. 설마 마들렌을 가져다 놓은 것을 선배가 본 것은 아니겠지. 나는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떨군 채 선배 옆을 지나친다. 허둥거리며 빠르게 걸어가는 나를 뒤에서 선배가 부른다. 


“정신아.” 

“네.”


몸을 돌려 선배를 올려다본다. 오랜만에 가까이, 그리고 정면에서 보는 선배의 얼굴. 왜 이렇게 빈틈이 많아 보이는지. 정말 이 인간은 사방이 빈틈이구나. 선배의 귀 위쪽으로 흰 머리가 사방으로 삐져나와 있다. 주말에 미용실에 데리고 들어가 염색이라도 시켜주고 싶다. 입술은 또 어떻고…… 선배의 입술은 사시사철 거칠게 터 있다. 그것뿐인가. 뿔테 안경에는 늘 손자국이 가득하다. 나는 선배의 안경을 벗겨내 내 옷소매를 끌어당겨 빠득빠득 닦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내리누른다. 선배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내게 묻는다. 


“너.”

“…….” 

“너 말야…….”

“…….”

“결혼식 언제라고 했냐?”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아래층 인사과 상미 사원과 헷갈린 듯했다. ……대학 때부터 그랬다. 학교에 입학한 후 반 년이 넘도록 내 이름을 물어보며 나를 병풍 취급했던 선배. 마음속 끈 하나가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괜찮았다. 견딜만했다. 


“그러게요. 저도 알고 싶네요.” 

“어?”


나는 뚱한 표정으로 선배를 쳐다보고 뒤돌아선다.  


“아, 너 아닌가?” 

“……수고하세요.”      


과장들 사이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윤익 선배는 최근 삼 년간의 프로젝트에서 큰 성과를 걷었다. 윤익 선배 때문에 회사는 전례 없던 매출을 올렸는데 그런 실적을 내고도 윤익 선배는 목이 굳어지지 않았다. 윗사람, 아랫사람 구분 없이 언제나 인사부터 성실하게 했다. 일과 관계 모두에서 윤익 선배는 겸손했다. 


동료 과장들은 일에 있어서 선배가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고 선배의 작은 실수를 확대 해석해 아래 직원들에게 선배에게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 저질스런 과장들의 낚시질에 걸려들 선배가 아니었다. 선배는 귀와 눈을 스스로 적당히 가려가며 오로지 일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붓는 듯했다. 


선배는 종종 대여섯 시간을 주변 동료들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혼자 섬처럼 떨어져 앉아 모니터만 죽을 듯이 노려보곤 한다. 멀리서 그런 선배를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언젠가 동료 과장들끼리 그런 선배를 놓고 숙덕거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디까지 올라가려고 지금부터 저렇게 피를 말리나.”

“사장한테 하는 거 봤어?”

“성공을 위해서는 영혼도 팔아먹을 새끼…….”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선배는 벌써 입에 마들렌을 쑤셔 넣으며 기획 이팀 쪽으로 걸어간다.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 청소부랑 선배는 정말 사귀었을까. 그 여자의 어디가 좋았을까. 누가 먼저 고백했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그토록 쉬운 것이 나에게는 왜 이토록 힘든 걸까. 나는 왜 이러고 있으며 어째서 포기가 안 되는 걸까. 나는 또 미저리처럼 선배에게 집착하고 있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달라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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