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두 시.
점심을 먹은 후 눈뜨고 일하는 척하는 것보다 큰 고문이 없다. 과장이 당을 충전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언제나 그렇듯 도리 선배의 잇몸 운동이 시작되었다.
“야, 이자바, 너 어디 산다고 했었냐?”
“신림…… 입니다.”
“원래 회사 가까이 사는 놈들이 더 늦는 법이거든.”
“…….”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지. 출근하는 시간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이 대충 파악이 된다는 거거든.”
도리 선배는 자신의 잇몸 운동을 우리 모두의 엔터테인을 위한 자기희생이라고 여겼다. 도리 선배의 자기희생 정신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했는데 그 제물은 항상 자바였다. 초거도 미리도 나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도리 선배의 잇몸 운동이 점심 후 나른함을 각성시키는데 꽤 효과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그것은 엔터테인이 맞았다.
입사 초기 자바는 도리 선배, 초거, 내가 들어 가 있는 카톡방의 멤버였다. 도리 선배가 카톡방의 방장이고 카톡방을 만든 이유는 과장의 이상한 낌새에 우리끼리 적절한 대응을 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자바는 입사한 지 이틀 만에 카톡방에 초대되었지만 한 달 만에 스스로 카톡방을 나가버렸다. 우리끼리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바는 나간 것이다.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이 방에 더이상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니 노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물어보지 않았다. 자바가 카톡방을 나간다고 해서 우리에게 피해가 올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자바는 그날 이후부터 점심시간에 혼자 회의실에 남아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스스로 왕따 역할을 도맡아 했다. 자바의 그런 태도를 도리 선배는 은근 괘씸하게 여기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랬다. 도리 선배와 나, 초거를 피하고 거르는 것 같은 자바의 태도에 가끔씩 답답함과 서운함이 밀려오기는 했었으니까.
“태도의 문제라는 거야. 어떤 태도로 이 직장을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거거든.”
“흐흐.”
“윗사람들은 알아. 말 안 해도 다 아는 거라고.”
“…….”
“아, 이 새끼는 이곳에 마음이 없구나.”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합니다, 할 때마다 말야…… 내 기분이 어떤 지 아냐?”
“…….”
“발로 밟으면 벌레처럼 찌그러질 것 같긴한데 그럴 수는 없겠고…….”
초거가 웃으며 말한다.
“왜. 저기 계단에서 밟아요.”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
주비서가 다가와 과장님을 찾는다. 도리 선배가 급작스레 목소리를 상냥하게 바꾼다.
“잠깐 자리 비우신 것 같은데, 뭐 말씀하실 거 있으시면…….”
“아니요. 좀 있다 올게요.”
뭔가 아쉬워하는 눈으로 도리 선배가 주비서의 뒷모습을 쫓는다.
“이자바.”
“……네.”
“네가 왜 여자를 못 사귀는 줄 아냐?”
“…….”
“마찬가지야. 똑같은 거라고. 여자들이 좀 눈치가 빠르냐. 네가 출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만 봐도 이 인간은 직장에서 어느 정도 하고 있겠거니…… 느낀다는 거야. 그런 사소한 거 하나로 말이지.”
“…….”
“이자바, 넌 애초부터 글러먹은 인간이야.”
“…….”
포기한 듯 자바는 웃고만 있다.
“여자들한테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인간들이 말이지, 사실은 더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놈들이라는 거야. 여자한테 거절당할까 봐 먼저 거절하는 거라고……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으면서 말야.”
“…….”
“너도 그런 식이지?”
“…….”
“그런 인간들이 정말 불쌍한 게 과거를 스스로 반증하고 있다는 거거든. 아직까지 여자가 준 상처에 매여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는 거야. 얼마나 데였으면 지금까지 그러고 있는 거냐…… 얼굴 보면 이 인간은 상처가 참 많구나…… 그게 보인다는 거야. 슬프게…….”
“…….”
“불쌍한 놈.”
“…….”
초거가 옆에서 도리 선배를 거든다.
“이자바, 너는 대체 잘난 게 뭐냐? 어?”
“……흐흐흐.”
“웃는거?”
“…….”
“사람 좋게 보이려고 히죽거리면서 쪼개는 거?”
“…….”
“그건 사람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네 감정을 속이는 거야.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을 외면하는 거라고.”
“…….”
“현실부인.”
“히키꼬모리잖아. 이 새끼.”
“너를 괴롭히지 마라. 이자바.”
선배로써 후배에게 해주는 충고인지 농담인지 가학질인지 알 수 없는 말들…… 초거와 미리, 나는 함께 웃는다. 공짜로 볼 수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관람하듯이. 맞은편에 앉은 자바의 얼굴이 어쩔 수 없이 내 눈에 들어온다. 자바는 무료한 시간을 다 같이 견디기 위해 자신이 재수 없게 걸려든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자바의 눈은 공허해 보였다.
내 옆에서 잇몸 운동을 쉬지 않는 도리 선배…… 그는 자바보다 행복한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만년 대리 도리 선배. 과장이 되었으면 진작에 되었어야 하지만, 회사도 그를 버린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렵고 중요한 프로젝트는 초거나 나에게 맡겨진다. 그는 사고의 융통성이 없고 창조적이고 복잡한 일을 할 능력이 없다. 이곳에서 도리 선배 혼자만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늘 과장 탓을 하거나 회사 탓을 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쓴 보고서는…… 읽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는 업무에 있어 성장을 멈춘 사람이다. 아이 셋의 아빠인 도리 선배는 이곳을 나가면 다른 곳에 취업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 역시 오래전부터 틀어져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도리 선배 아내의 얼굴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아내의 얼굴은 메마른 땅에 짜부라질 대로 짜부라든 나무껍질 같았다. 나는 아내 사진을 보며 아내의 얼굴은 도리 선배의 맨얼굴이나 다름없다고 느꼈다. 종종 도리 선배는 아는 사람 중에 변호사와 의사들이 많다고 하며 그들 얘기를 자주 떠들어댄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실…… 자바에게 내뱉은 말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러니까 아내에게 나는 뭣도 안되는 존재다. 회사도 날 포기한 것 같은데 나이만 들어가고 있는 것들에게 빌붙고 싶은데 딱히 전화가 오는 인간이 없다. 나는 지금 굉장히 위태롭다…….
자바는 도리 선배가 자신을 투영시키기 위해 만든 반사체일 뿐이다. 자바에게 쏟아놓은 모든 말들은 실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최면을 걸기 위한 말인 것이다. 도리 선배가 지금 가장 미워하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소리를 저렇게 자바를 세워두고 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는 그 사실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
오후 시간 내내 그토록 정신없이 일을 했지만, 밀린 업무로 야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바와 나 둘이서 텅 빈 사무실 안을 지키고 있었다. 자바는 여섯 시 이후부터 저녁도 먹지 않고 끈질기게 모니터만 노려보고 있다.
……밤 열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자바의 얼굴을 힐끗거렸다. 자바는 지금 전국 지점의 상반기 총 매출과 하반기 중간 매출까지 모두 정리하고 점검하고 있을 것이다. 월말이 다가오는 그 주엔 무조건 야근을 하는 것이 자바에겐 룰인 듯 보였다. 자바가 피곤한 지 두 눈을 감고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바에게 말을 건넸다.
“끝나가니?”
자바가 눈을 뜬다.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글쎄요……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탕비실에 들어가 냉장고에 있던 비타민 음료 두 병과 요깃거리가 될 만한 과자를 한 뭉치 손에 들고 온다. 자바에게 음료와 과자를 건네자 자바가 두 손으로 냉큼 받아든다.
“쉬는 날에는 뭐해?”
사적인 얘기는 서로 잘 하지 않은 탓에 자바가 약간 놀란 듯 나를 쳐다본다. 자바가 뜸을 들이다가 입을 뗀다.
“영화봐요.”
“누구랑?”
“혼자 집에서.”
“현대인이네. 문화생활도 하고.”
자바가 웃는다.
“너 공포물 좋아하지, 막 사람 잔인하게 죽이는 거 있잖아.”
“애니메이션만 보는데.”
“그래?”
나는 웃었다. 자신을 인어라고 했던 수영장 소녀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소녀의 이름도 모른다.
“왜 웃어요?”
“아니. 누가 좀 생각나서.”
“……저도 그런데.”
“누구?”
“이전 여자친구가 애니만 보던 애였어요.”
“아.”
“걔가 하던 걸 이제는 제가 하고 있는 거죠.”
나는 속으로 윤익 선배를 생각했다. 윤익 선배가 좋아하는 마들렌을 나도 좋아하니까. 마들렌 없이는 이젠 일주일도 넘기기 힘들다.
“사랑은 늘 흔적을 남기는 법이지.”
“잔인하게…….”
“좋은 점도 있잖아. 없던 취미도 생기고.”
“왜 헤어졌냐고 물어볼거죠?”
“아니…… 관심없어 너.”
“그럼 말고요.”
“왜 헤어졌는데?”
“후우……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다신 안 보기로 했죠.”
“이런.”
“바람을 피웠거든요. 내가 자신의 꿈을 응원하지 않았대요.”
“걔는 사랑보다 꿈이 중요한 애였나 보네.”
“그렇게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어요. 엄마가 매일 구박했대요. 넌 거짓말쟁이라고. 걔도 그랬어요. 나 거짓말쟁이 맞다고…… 그건 걔가 자기 엄마한테 세뇌당한 거였지 그 아인 제가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진실한 아이였어요. 바람을 피고 있던 그때도…… 자신이 불리했던 그 순간에도 진실했었으니까.”
“너무 포장하네.”
“후후 그런가.”
“바람핀 게 무슨…….”
“어이없지만…… 바람 피다 들켰을 때 제가 걔를 붙잡고 애원했어요. 내게 진실이 아니어도 좋으니 내 기분을 제발 맞춰달라고 했어요. 지금 나에게 진실 같은 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라고…….”
“…….”
“싫대요. 그럴 수가 없대요. 그 아인 끝까지 내게 감추는 것이 없었어요. 나보다 잘난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장애를 가진 사람이래요. 그 말 듣고 더 좋아지더라구요. 그래서 더 미웠어요. 놔 줬어요…… 가끔 걔가 했던 말이 생각나요. 난 절대 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너처럼 굶어 죽는 게 무서워서 꿈도 꾸지 않고 살지는 않을 거라고…… 진짜 저는 그런 인간이 맞더라고요. 걔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저는.”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아 절대 속내를 알 수 없는 자바…… 자바는 이곳에서 돈 버는 게 전부인 사람이다. 인간관계는 일절 관심이 없고 자기가 얻을 것과 잃어버릴 것을 분명히 구분 짓는다. 자바는 받은 게 있으면 꼭 돌려주고 절대 빚지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신이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자바의 행동은 당신이 내 삶에 간섭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긋기로 보인다. 그러한 점은 사실 나와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애니 중에 말야…… 뭐 추천해줄 만한 거 있어?”
“취향이 어떻게 되세요?”
“로맨스는 좀 빼줄래.”
“일본은 자연재해를 많이 겪었잖아요.”
“응.”
“쓰나미로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죽었어요. 집단적 사망. 하루아침에 내 가족과 친척들, 이웃들을 볼 수 없는 거예요.”
“…….”
“상상이 안 가요.”
“근데 있잖아…….”
“네.”
“상상을 꼭 해야 되니…….”
“저기요 선배.”
“어.”
“우리가 왜 이렇게 사는 지 알아요?”
“돈이 없어서?”
“상상력이 없어서 그래요. 우리가 어떻게 살 건지는 상상력이 결정하는 거라구요.”
“……이메지네이션.”
“집단적으로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욕심을 부릴 수가 없어요. 인생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어떤 영역에 있다는 것을 무의적으로 깨닫게 되어 버리니까.”
“음…….”
“근데 이야기꾼들은 달라요.”
“…….”
“상실했던 사람들을 이야기로 살려내요. 자연재해를 주제로 다뤘던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죽었던 사람들을 이야기 속에 끌어와서 다시 살려내줘. 그런 작업들은 진정 의미가 있어요. 무엇으로 그것을 복구할 수 있나요. 복구할 수 없어요. 죽은 그 사람들을 살려낼 수는 없어요. 근데 이야기꾼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죠. ……소름이 끼쳐요. 그들의 치유적 상상력이…… 애니메이션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살려내는 예술이에요. 이야기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거예요. 그들 스스로 이야기로 극복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이 흘러가요. 다음 세대에게 희망이 되는 거죠.”
“…….”
나는 처음으로 자바의 얼굴을 그리고 그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물기에 젖어 옅어진 듯한 연한 갈색 동공……. 자바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지루하죠?”
“전혀. 좀 더 해줄래?”
“뭘?”
“이야기…….”
자바가 조금 놀란 듯 나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자연을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내는 작가가 있어요. 작가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죠. 그것이 작품 속에 녹아 있어요. 주인공을 조금만 분석해보면 작가가 무엇에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저는 그것을 발견하는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고러쿤.”
“그분은요. 그분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 문명에 연약한 여성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여줘요. 답은 여성, 자연 자체에서 찾고 있는데 그의 상상력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너무 궁금한 거예요…… 어디서 온다고 생각해요 선배?”
“야, 나 그분 얼굴도 모르거든.”
“의외로 간단해요. 그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인데요. 상상력은 그의 선한 양심에서 오는 거예요. 그가 인간으로써 자연에 감탄하고 순수하게 경외했던 그런 평범한 순간, 순간에서요…….”
“정말 너…….”
“네?”
“정말 좋아하는구나.”
“뭐를요?”
“애니.”
“좋아하면 관심을 갖게 되니까. 사랑하게 되니까…… 선배는?”
“응?”
“그런 거 없어요?”
“뭐?”
“좋아하는 거.”
“…….”
“좋아하는 게 뭐예요?”
“…….”
나는 얼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거 없어요?”
“…….”
나를 계속 쳐다보는 자바. 나도 자바를 바라본다. 둘이 동시에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린다. 자바가 날 불쌍하게 보는 것 같다.
“야…….”
“네?”
“너무 그렇게 불쌍하게 보지는 말아줄래.”
자바가 웃는다.
“눈을 감고 가장 행복했다고 느꼈던 때를 떠올려봐요…….”
자바가 일어나 탕비실로 걸어간다. 나는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고 목을 뒤로 꺾은 채 눈을 감았다. 잠시 뒤 은은한 커피 향이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자바가 탕비실 안에서 내게 소리쳤다.
“생각났어요?”
“아니…… 무슨 커피니?”
“꼬르따도. 스페인 산. 향 좋죠?”
“너무.”
“좀 줄까요?”
“아니.”
“말하지 말고 생각해요.”
“오늘 집에 못가겠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생각날 거예요.”
“……어떻게 알아?”
“선배에게도 누군가 흔적을 남겼을 테니까.”
결국 나는 삼십 분 넘게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짐을 챙겨 회사를 나섰다. 자바는 일을 마저 끝내겠다며 회사에 혼자 남았다. 집에 돌아와 씻은 후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눈을 감고 떠올려봤다. 내가 제일 행복했다고 느꼈을 때…… 한 참 만에 눈앞에 어떤 여자아이가 보였다. 여자아이와 나…… 둘 다 홀딱 벗은 채 우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비…… 나는 비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