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미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자리에 가방만 덩그러니 올려진 채 열 시가 넘어가도 미리는 자리에 돌아오지 않았다. 참다못한 과장이 초거에게 짜증스레 묻는다.
“얘 어딨어?”
“저도 잘…… 전화도 안 받네요.”
도리 선배가 실실 웃는다.
“허허허 허메이징~”
과장이 나를 보며 한마디 한다.
“정대리가 좀 찾아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돌아본다. 회의가 진행 중인 두 개의 방을 제외하고 어디서도 미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복사실, 탕비실에도 없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마지막으로 복도 끝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안 모든 칸을 뒤졌지만, 미리는 보이지 않았다.
냐아아옹.
화장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고양이 소리가 나 뒤를 돌아보았다. 열린 비상문 쪽에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뒤룩뒤룩 살이 오른 파란털의 고양이.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두 눈이 마치 그린색 보석을 박아넣은 듯 빛나고 있었다. ……러시안블루. 오래전부터 이곳 주인이라도 되는 듯 나와 눈이 마주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돼냥아 반가워…….”
만지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눈. 나는 천천히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돼냥이는 귀찮게 한다는 듯이 나를 흘겨보며 느릿느릿 몸을 돌려 비상구 계단 쪽으로 사라진다. 잠시 헛것을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혼자 자리로 돌아온 나를 보며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과장은 혀를 차며 물건 중에 물건이라고 중얼거렸다.
열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번 주 중으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 보고서는 첫 장부터 막히고 있었다. 삼십 분 넘게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어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숨을 고르며 다시 천천히 머리를 돌리고 있는데 푸르스름한 뭔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돼냥이! 비상구 쪽에서 만났던 그 고양이였다. 헛것이 아닌 게 분명했다. 나는 머리를 쳐들고 한마디 했다.
“여기 고양이 키워요?”
각자 자리에서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눈 뜨고 자고 있었던 과장, 도리 선배, 초거, 자바가 순간 나를 향해 경악스런 눈빛을 던진다. 도리 선배가 걱정스런 듯 내게 묻는다.
“정신아, 너 어디 아프니…….”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복도 끝에 앉아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나를 향해 묘연의 웃음을 짓는 돼냥이. 돼냥이가 태평하게 꼬리를 살랑거린다.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복도 끝을 향해 빠르게 걸어간다. 그새 돼냥이가 열린 비상구로 나가버린다. 나는 비상구로 나가 위아래를 두리번거린다. 위쪽 계단에서 파란색 꼬리가 보였다가 휙 사라진다.
“엄만 항상 그런 식이지? 내 인생 망쳐놔서 기분 좋지? 혼삿길 망쳐놓고 엄만 아무런 미안한 마음도 없지?”
계단 복도 가득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웅웅거린다. ……미리인 듯했다. 미리는 내가 있는 십사 층에서 한두 층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미리는 이곳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빚만 남은 우리 집을 누가 환영하겠어. 나 같아도…… 나도 힘들어 엄마. 나 없으면 누가 우리 집을 책임질 건데? ……어. 그러셔…… 그 말 진심이지 그럼 나 하나쯤은 없어져도 되겠네? 죽으라면 내가 못 죽을 줄 알아?”
폰에 쏟아놓는 말들이 막장 드라마 수준이었다. ……미리의 얘기를 통해 짐작해 보면 아마 초거는 미리의 집안 배경을 들먹거리며 초거 쪽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니 결혼까지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얘기한 듯했다. 이제껏 초거를 지나쳐간 여사원들은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거절감에 고통스러워하며 회사를 떠났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미리도 그런 사원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미리가 전화를 끊고 옥상으로 뛰어 올라간다. 회사 막장 드라마의 마지막 씬은 언제나 옥상인 법이니까……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미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돼냥이 그 녀석을 더 찾고 싶었다.
접근금지 팻말이 걸려 있었으나 옥상 문은 열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자동으로 입이 벌어졌다. 몇 년 만에 와본 옥상은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짙은 녹색의 잎을 달고 내 키보다도 높게 뻗어있는 나무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디서 많이 봤던 화분들도 보였다. 내가 버렸던, 누군가가 버리고 갔던 식물들은 이곳에서 죽지도 않고 꿋꿋하게 살아 있었다. 그러면서 뭔가…… 이곳은 십사 층 화장실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깨져버린 항아리와 그릇, 플라스틱병을 모아 그곳에 식물들을 옮겨심기해 놓은 것이나 죽어 있는 이파리는 단 한 장도 보이지 않을 만큼 정성스럽게 돌봄 받고 있다는 느낌의 도도한 식물들. 분명히 이곳도 싼티의 영역인 것 같았다.
한참 옥상 구경을 하다가 얼핏 난간에 올라서 있는 미리가 보였다. 벽에 고정되어 있는 펜스만 손으로 붙잡고 있는 미리.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내딛으면 정말 떨어져 죽을 수도 있을 듯했다. ……미리의 어깨가 들썩였다. 미리는 울고 있었다. 건너편 건물 광고판에서는 공유가 커피를 들고 유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치명적인 공유의 시선보다 더 치명적인 가을 하늘…….
냐아아아옹.
어디 숨어 있었던 것인지 싼티와 돼냥이가 모습을 드러내며 미리 옆으로 스물스물 다가간다. 싼티의 손에는 살수기 호스가 들려 있다. 내가 다가가 말릴 새도 없이 싼티가 미리 옆에 바짝 붙어선다. 미리를 보고 뭔가 내키지 않는 듯 싼티의 얼굴이 상당히 도전적이다.
“저기요.”
“…….”
난간에 서서 미리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저기요.”
“…….”
“저기요.”
끈질지게 물어대자 미리가 마지못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저요?”
미리의 얼굴은 보기가 처참할 지경이다. 벌겋게 충혈된 눈에 마스카라 때문인지 구정물 같은 것이 얼굴에 줄줄 흘러내려 있다.
“아니. 밟지 말라고.”
“……네?”
“밑에 그거.”
“…….”
“밟지 말라고.”
싼티, 그녀가 자식 같이 키우고 있는 담쟁이 넝쿨을 미리가 밟고 서 있었던 것이다.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생각하고 있는 듯한 미리. 싼티는 그런 미리를 내버려두고 혼자 궁시렁거린다.
“대체 말야. 눈까리를 제대로 뜨고 다니는 거냔 말이지.”
죽으려고 왔다가 된통 혼나고만 있는 미리. 언제 올라온 건지 옥망 여사도 손에 장갑을 끼고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침 청소를 이제 막 마치고 한숨 돌리기 위해 이곳에 올라온 듯했다. 손으로 난간만 겨우 붙잡고 있는 미리를 보고도 옥망 여사는 태평하다.
“저래도 죽는 사람 없드라 마, 내가 한두 명 봤겠나. 저런 인간을…….”
카톡이 울렸다. 도리 선배다. 어디서 뭘 하는데 미리랑 너까지 둘 다 사라진 거냐는 내용이었다. 벌써 열두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 끝내야 할 지점별 매출 보고서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는 슬금슬금 미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저기…….”
“…….”
“네 인생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는데 말이야.”
“…….”
“너 거기서 떨어지면 그 피는 누가 치우니?”
“…….”
“너 없어진다고 슬퍼할 사람 여기 아무도 없는 거 알지?”
“…….”
“초거는 더 그렇고.”
초거 이름이 나오자 미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알고 있었어요?”
“뭘?”
“저희 둘…….”
“둘이서 같이 퇴근하고 같이 출근해놓고서는.”
“…….”
“여기 왔던 여자애들이 몇 명이었을 것 같냐? 그 중에 초거랑 사귀었던 애들은 몇 명이었을 것 같고?”
“…….”
“이 건물 안에서만도 수십 명은 될 것 같은데 말이지.”
“…….”
“저기 공유가 그러잖아. 너만 모르는 비밀이라고.”
미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려버린다.
“저거…….”
“…….”
“저거 있잖아…… 저게 누구한테 준 거 같애?”
“뭐, 뭐가요?”
“저기 화분들 말이야…… 저기 보이는 저 화분들 다 누구 건 줄 아냐고.”
“……저기요 대리님.”
“어?”
“지금 화분 얘기나 하려고 이러는 줄 알아요?”
“하아…….”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 말대로 화분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릴 것이다.
“그럼 됐고, 그러니까 그게 말야…… 초거가 안 찌르고 다닌 여자가…….”
나는 차마 나도 그 인간에게 찔려봤다는 말을 미리에게 할 수가 없었다.
“왜 얘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그럼?”
“뭐?”
“처음부터 초거 그 사람에 대해 왜 얘기해주지 않았냐고요.”
“여기가 학교냐? 주변에 있는 개망나니는 각자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오리엔테이션이라도 해야 되냐?”
“아이고야…….”
미리와 나의 대화를 들으며 답답했던지 옥망 여사가 불쑥 끼어든다.
“뭐 남자 때문에 그러나? 참말로. 누구? 누구 말하는 건데?”
“아, 그…….”
내가 버벅거리고 있으니 옥망 여사가 대뜸 묻는다.
“혹시 십사 층 그 대가리 크고 눈 찢어진 고놈 말이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말도 마라. 그 머스마 자리 휴지통 치울 때마다 쓰레기통에 콘돔 같은 게 한가득 나온다 아니가. 그게 몇 년짼 줄 아나? 금마가 여기 온 이후로 매일 그랬다. 청소할 때마다 그마만큼 찜찜한 인간도 없다 아니가. 뭐가 그리 죽을 일이라고 이래 아침부터 설치고 있노.”
“…….”
미리가 고개를 떨군다.
“저기 저 꽃들 다 지 여친한테 준 거 아니가. 여자들이 헤어질 때 그 새끼 재수 없다고 버리고 간 거 아니가. 그거 주워서 싼티가 지 자식처럼 돌보는데 그 새끼는 그걸 아는가 모르것어.”
“…….”
“내 여기서 이십 년 있었는데 내가 네를 왜 속이겠노 어이? 내 딸 같은 나이겠구만…….”
“…….”
“그 인간 때문에 거기 올라가 있는 거면…… 다시 생각해라.”
“…….”
“살아서 그 놈 같은 인간들보다 더 잘 살아야하지 않겠나. 죽지마라…….”
옥망 여사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미리. 그런 미리를 보며 뭔가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나의 오전 시간 모두를 쓰레기통에 내버리고 말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야.”
“…….”
“무슨 피해자인 척 울기는.”
“…….”
“걔를 좋아해서 사겼냐 돈 보고 사겼지?”
“…….”
“너도 사랑해서 사귄 거 아니면 할 말 없는 거 아니니?”
미리가 천천히 난간 안쪽으로 건너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을 끝자락의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다가 끝내 소리를 내지르며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나는 우는 미리를 내버려 두고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 십여 분 후 미리도 자리로 돌아왔고 과장은 미리와 짧은 면담을 가졌다. 아마 이런 일이 한 번 더 있을 시에는 회사 차원에서 경고 조치를 내린다고 했을 것이다. 초거와 미리는 하루종일 단 한마디도 말을 섞지 않았다.
옥상 소동이 있던 바로 다음 날. 회사 삼십오 전 층 남녀 화장실 칸칸마다 내 애인을 고발합니다, 라고 적힌 벽보가 붙여졌다. 누구든 볼일을 보러 변기에 앉았다가 눈앞에 보이는 고발장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발장에는, 보기 민망한 부분은 모자이크로 날려버린 남자의 알몸 사진 여러 장이 컬러로 프린트되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는 없었다. 한눈에 봐도 초거임이 분명했으니까. 고발장에는 고발장을 쓴 사람의 부서와 실명까지 밝혀져 있었다.
고발장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결혼을 전제로 만났고 현재 임신 중이지만 집안 배경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헤어짐을 통보한 사기꾼. 그는 만날 때마다 자신을 콜걸처럼 호텔 방으로 불러냈다며 그가 남긴 도저히 읽기 민망한 문자 메시지와 날짜와 시간, 호텔 방 호수까지 고발장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온 여사원들은 아침부터 웬 눈요깃거리냐며 난리를 쳤다. 고발장은 전 사원들의 점심 주제가 되었고 오랜만에 가십거리가 생겨난 사원들의 표정은 이런 맛에 회사를 다닌다는 듯 생기가 돌았다. 능글맞은 여자 과장들은 일이 있는 것처럼 십사 층에 내려와서는 과장과 얘기를 하는 중에 영업 일팀은 다들 기력이 좋은 선수들만 모여 있는 거 아니냐며 근데 왜 성과는 비리비리하냐고 여자한테 쓸 힘만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초거를 대놓고 까댔다.
초거는 하루 만에 사원, 대리, 과장, 계열사 사람들 할 것 없이 전 직원들 사이에서 인간말종으로 치부되었다. 초거는 앞으로 회사에서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미리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맞고 곧 결혼할 건데 잠시 갈등이 있는 것뿐이니 오해는 하지 말아 달라고 과장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변명을 하고 다녔다. 초거와 미리는 본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혼까지 가게 될 듯했다.
……미리는 갈수록 당당해져갔다.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여자보다 세상에 무서운 것은 없었다. 과장도 어쩔 땐 미리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도리 선배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미리는 이 회사에 끝까지 버티고 남아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옆에 있던 도리 선배에게 슬쩍 말을 꺼냈다.
“도리 선배.”
“어. 왜?”
“이번엔 제가 이긴 것 같네요.”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