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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23. 2024

중국집 : 주식, 사업 아이템, 과장은 반찬

출근한 도리 선배의 표정이 어두웠다. 


어제 늦게까지 술을 먹은 듯했고 속이 불편한지 자주 트림을 해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과장은 회의실에 들어가 자리를 비웠다. 도리 선배는 한참 동안 모니터도 켜지 않은 채 눈을 감고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 선배는 또 아내와 싸운 듯했다. 


평소 아내로부터 하루에 한 번은 전화가 걸려왔다. 그럴 때마다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가 얼른 전화를 받고 들어오는 도리 선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내 전화를 받는 선배를 본 적이 없다. 가끔 도리 선배의 모니터에 이혼 전문 변호사 싸이트가 떠 있기도 했다. 도리 선배와 아내의 관계가 더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 돈, 회사, 자신에 대한 풀지 못한 뭔가를 압력밥솥처럼 내면에 꾹꾹 눌러 놓고는 오늘도 사무실에 나와 영혼 없는 빈껍데기로 앉아 있는 도리 선배. 후우……. 옆에서 도리 선배의 한숨을 듣고 있으면 뭔가 섬뜩한 데가 있다. 내면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 한숨을 쉬며 조금씩 기를 빼주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한계치를 벗어나 터져버릴 날이 올 것 같았기 때문에. 


여덟 시 오십구 분. 자바가 허겁지겁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고 도리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바를 붙잡고 잇몸 운동을 시작한다. 


“이자바.” 

“네.” 

“밥은 먹고 오냐?”

“네.” 

“그래서 늦는 거지? 밥 다 먹고 오느라고.” 

“그건 아닌데…….”

“네가 해먹냐?”

“아니요.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거 먹고 오죠.” 

자바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다. 도리 선배는 아침밥을 어머니가 차려준다는 말을 붙잡고 늘어진다. 

“너는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다니냐?”

“……흐”

“밥을 해준다고 먹는 너란 인간도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말이야. 여태껏 다 큰 아들 밥 해주는 네 엄마가 난 더 이상한 것 같아서…….”

“…….”

“아니냐? 이자바.”

“……흐흐.”

“기형적 자식 사랑이 결국 아들을 망쳐놓는 법이지. 밥 한 끼 자기가 챙겨 먹을 수 없는 병신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쯧쯧.”

“…….”

“머리는 최고로 만들어놓고 생활은 저능아로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이 직업만 해결되면 다 되는 건 줄 안다는 거지…….”

“…….”

“평생 늙어 죽을 때까지 결혼도 안 하고 자식 밥 챙겨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삶인 줄도 모르고…… 죽는 순간까지 자식새끼 밥 해주느라 자기 인생 한 번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는 거라고.”

“…….”

“얼마나 비참하냐…… 대한민국 부모들이 갖고 있는 재앙이지 재앙.”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바의 부모님을 들먹이는 도리 선배. 도리 선배의 말이 뭔가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누구도 도리 선배의 말을 막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초거와 나, 미리는 도리 선배의 말에 웃거나 방관했다. 열 시가 넘어 과장이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도리 선배는 입을 다물었다. 


점심시간. 도리 선배와 초거, 나와 미리는 근처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바는 웬일인지 도시락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가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자바의 눈은 모니터 속 어지러운 숫자들을 보고 있었지만 멍하니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자바를 사무실에 남겨두고 우리는 사무실을 나섰다.      


중국집에 도착해 우리는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주문했다. 초거와 도리 선배는 볶음밥, 나는 울면, 미리는 짬뽕을 시켰다. 잠시 뒤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초거와 도리 선배는 미리와 말을 전혀 섞지 않았다. 주식,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지속적으로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사업 아이템, 그놈의 과장…… 등이 그들이 반찬으로 곁들여 씹어먹는 주제들이었다. 나는 초거와 도리 선배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물론 미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미리는 짬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두세 번 젓가락질을 하더니 더이상 먹지 않았다.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연신 숨을 몰아쉬었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고 있는 미리. 아직 아랫배는 밋밋했지만 미리의 허벅지는 최근들어 두 배로 늘어나고 있었다. 


……미리는 한참 힘들 것이다. 아무리 독하게 마음을 먹고 초거와의 결혼에 모든 것을 올인했다고 해도 혼자서 초거와 주변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하기에는 심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다. 


도리 선배와 초거는 금세 볶음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는 담배를 피운다며 먼저 나가버렸다. 나는 그릇 가득 담겨 있는 면과 해산물을 조금씩 천천히 먹었다. 미리는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미리는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듯했다. 회사 안에서 어떤 누구도 미리를 심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약해져가는 것이다, 미리는. 울면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가게를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미리가 나를 불렀다. 


“대리님.” 


초거와 도리 선배는 건너편 건물의 벤치가 놓여 있는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문 초거가 나와 미리를 빤히 보고 있었다.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


나는 멈춰섰다. 뒤로 고개를 돌리고는 미리의 눈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좀 그러네. 오늘까지 처리할 게 있어서.” 

“…….”

“다음에 하자.”


시멘트 바닥으로 얼굴을 떨어뜨리는 미리. 미리를 뒤에 남겨두고 나는 사무실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오후 두 시. 과장은 사장실에 들어가 심하게 털리고 온 듯했다. 매장 관리를 어떻게들 하고 있는 거냐고, 앞으로 각자 맡고 있는 매장에 대해서만큼은 매출 하락에 대한 책임을 지울 것이니 그렇게들 알고 미리 준비를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옆쪽 영업 이팀은 최고 매출 기록을 세운 모양이었다. 자기들끼리 서로 기념을 한다며 떡볶이, 튀김, 오뎅…… 분식을 잔뜩 사 와서는 사무실에 진득한 냄새를 풍겨댔다. 잔칫집과 초상집이 동시에 열린 사무실 안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밀려있는 업무 외에 매출 하락과 그와 관련된 대책, 홍보 전략 수정 등 추가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들이 점점 쌓여갔다. 나뿐만이 아니라 영업 일팀 모두가 그럴 것이다. 도리 선배, 초거, 자바, 미리 모두 자리에 접착제라도 바른 듯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도 과장은 퇴근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미리, 자바, 초거, 도리 선배 모두 과장의 눈치를 보며 죄수처럼 머리를 조아리면서 겨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사무실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퇴근했고 나 역시 과장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공용 주차장까지 거의 다 도착해서 폰이 주머니 속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툴툴거리며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을 땐 텅 빈 사무실 안에 주비서와 과장만이 남아 있었다. 과장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주비서는 과장의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둘이 언제부터 저렇게 친했던 걸까. 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줄도 모르고 둘은 대화에 빠져 있었다. 먹방 찍는 건 안 힘드냐, 내일은 무슨 음식을 시킬 거냐, 필요한 것은 없냐, 제발 그런 싸구려 가면은 버려라, 내가 좀 더 쌔끈한 것으로 사주겠다, 댓글 중에 불타는 장작놈은 완전 팬이 된 것 같은데 내가 좋냐, 불타는 장작놈이 좋냐……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주비서의 유튜브 채널에 댓글을 달고 있었던 흥사장은 진짜 흥사장이 아니라 과장인 듯했다. 


저런 자세로 서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둘은 오래전부터 연인 사이로 지내왔다는 말일 것이다. 주비서가 우리 부서에 대해 그토록 자세히 알고 있었던 것은 과장이 모두 얘기를 해줬기 때문이었다. ……나는 폰을 회사에 놔둔 채 다시 주차장으로 되돌아갔다.      


아홉 시쯤 집에 도착해 씻고 옷을 갈아 입었다. 식탁 한켠에 장식품처럼 놓여 있던 비스켓을 뜯고 컵에 뜨거운 물을 담아 홍차 티백 하나를 넣었다. 쓰디쓴 홍차에 푸석한 비스켓이 홀로 먹는 저녁 메뉴였다. 


열한 시쯤 침대 위에 노트북을 들고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여신먹방 채널을 검색해 클릭하자 여신의 먹방 라이브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화면 속 여신의 방은 평소와 달리 어둑하고 은은한 스탠드 조명 하나 밖에 켜져 있지 않았다. 


책상엔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어묵이 흘러넘치기 직전까지 가득 채워져 있고 그릇 옆에는 하츠, 테바사키, 네기마, 모모니꾸, 본지리, 사사미…… 수십 개의 닭꼬치가 겹겹이 정렬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신 옆에는 사케로 보이는 초록색 병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여신은 그새 과장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 배달앱으로 음식들을 잔뜩 시켜놓은 듯했다.


여신은 이자카야에 오신 걸 환영하잖아, 오늘은 특별히 준비했잖아, 에이에스엠알, 을 할 거잖아, 라고 세 마디를 던진 후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여신은 방송 전부터 술을 먹고 있었는지 눈이 약간 풀려 있었다. 꼬치를 훑어보며 잠시 고민하던 여신이 네기마, 모모니꾸, 사사미를 동시에 집어 든다. 꼬치 세 개를 한꺼번에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순식간에 세 개의 꼬치가 자취를 감춘다. 여신이 초록색 병을 들어 투명한 사케를 소주잔에 따른다. 가득 채워진 잔을 여신이 입으로 가져간다.  


꼬르깍 꼬르깍 꼬르깍. 


밤 열두 시를 넘어가는 이 시간에 시청자 오백스물한 명이 함께 듣고 있다. 여신의 목을 타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


채팅창에 쉴새 없이 글들이 올라온다. 


‘참을 수가 없네요. 지금 사케 사러 편의점으로 뛰어가는 중. 오늘 여신님 분위기 쥑이네. 제일 좋아하는 꼬치 뭐예요? 그거 먹어주세요. 앞으로는 말하지 마세요.  여신의 낯선 모습에 심쿵. 여신님과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같이 술 한잔 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목젖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의 새벽을 도둑질해가는 그녀. 사랑해요 여신사마.’


여신은 끊임없이 꼬치를 입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채팅창의 글들을 보며 실실 웃어댄다. 가면 속 여신의 두 눈은 텅 비어 있는 구멍 같다. 


나는 키보드에 손을 가져간다. 채팅방에 내 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라간다. 


‘새 왕비의 바람대로 공주는 과장과 결혼을 했습니다. 공주는 평생토록 자신을 추녀라 믿고 살았습니다…….’ 


채팅창에 여신이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지만 여신이 내 글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글들 속에서 내 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새벽 한 시쯤 여신은 책상 위에 펼쳐진 음식들을 모두 해치웠고 마무리 인사도 없이 방송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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