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윤익 선배로부터 함께 저녁을 먹자는 문자가 왔지만 나는 몸이 좋지 않다는 답장을 보내고 퇴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나섰다. 공용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문득 수영장 생각이 났다. 나는 차 뒷좌석에 버려두었던 수영복을 챙겨 빌딩 숲 사이 감춰진 시장을 향해 걸어갔다.
좁은 골목길을 돌자 하늘을 덮은 긴 천막 아래로 야시장이 펼쳐졌다. 감색의 등불이 달린 가게들과 그곳에서 활활 피어오르는 음식 냄새에 배가 고파왔다. 복작거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분식집 앞에 멈춰 섰다. 분식집 안에는 엄마와 어린 아들…… 두 명의 손님이 전부였다. 나는 분식집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떡볶이와 오징어 튀김, 오뎅을 시켰고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뜨거운 오뎅 국물을 후후 입으로 불어가며 음식을 천천히 해치웠다. 쌀알만큼의 음식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그릇을 비웠다. 오랜만에 정말 많이 먹었다. 진짜 맛있는 걸 먹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만찬을 즐긴 후 가게를 나왔다.
다시 시장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핑크빛 수영장이 보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이 층 입구에 지난번에 보았던 그 남자애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남자애는, 오늘은 모자를 벗고 있었는데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겼을까, 무척이나 앳되보였다. 카운터 소녀도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이곳은 지난번 내가 왔던 그 날 이후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곳 같았다. 소녀는 나를 보더니 반갑게 먼저 인사를 했다.
“하아아아이.”
“……안녕.”
“얼굴이라도 보고 가고 싶었는데. 마침 와 주었네요.”
“…….”
“오늘도 일일권으로 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내가 내민 카드를 받아들고는 계산을 한 후 영수증을 건네주었다. 탈의실은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누군가 두고 간 수영복과 때밀이 타월이 나뒹굴었다. 샤워장으로 들어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따뜻한 물로 몸을 데운 후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빗소리가 들렸다. 레인 안에 발을, 다리를, 가슴을 담궜다. 부드러운 물결이 몸에 감겨왔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걸어간 곳마다 물결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레일 저쪽 끝까지 물결이 일렁거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빗속을 걸었다.
열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바지를 걷어붙인 소녀가 밀대를 들고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좀비처럼 뻣뻣한 팔과 다리로 레일을 걸어 다니는 나를 향해 소녀가 입을 열었다.
“신경 쓸 필요 없다니까요.”
“…….”
“오늘은 밤이 새도록 걸어도 정말 상관없어요.”
“매번 느끼는 건데…….”
“뭐요?”
“서비스가 여긴 끝내주네…….”
“그렇게 걸으면 다리 안 간지러워요?”
“수영을 못하거든 내가.”
소녀가 킥킥거렸다.
"궁금한 게 있는데…….”
“저한테요?”
“아니.”
“…….”
“지난 번에도 저기 저렇게 있던데…….”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남자애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
“뭘 저렇게 보고 있는 건가 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있는 거겠죠.”
“여자?”
“글쎄요.”
“지금도 나 보고 있어?”
“에이 설마…….”
“놀라기는.”
“저분도 취향이라는 게 있을 건데.”
“나도 없는 건 아니거든.”
“신경 쓰이나봐요.”
“뭐…… 조금?”
“걱정마요.”
“…….”
“확실한 건 절대 우리를 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소녀의 말대로 남자애의 시선 속에 우리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남자애는 멀리,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망했어요?”
“아니라고는 못하겠네.”
“가서 말 걸어봐요.”
“너무 어리잖아.”
“나이가 뭔 상관이에요.”
“첫 만남이 수영장이라니…… 좀 그렇잖아.”
“그러다가 놓치는 거예요.”
“…….”
“변명이죠 다들.”
“……응?”
“사랑이 힘든 이유들을 늘어놓기만 하는 거예요…… 사실은 본인이 절절하게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면서.”
그 주제에 관해서는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소녀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폰을 꺼냈고 폰에서 곧이어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소리인지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인 것 같았다. 소녀가 바닥에 세제를 뿌리고 솔로 문지르자 거품이 일어났다. 미끌거리는 바닥을 맨발로 비비면서 음악 소리에 맞춰 소녀가 몸을 움직였다. 보기 민망할 정도로 몸치인 소녀.
“근데 사실…… 저 남자분…….”
“응?”
소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사실은 말이죠…….”
“혹시…….”
“눈치 챘어요?”
“그럼 그렇지.”
남자애는 다름 아닌 소녀를 기다리는 망부석이었던 것이다. 멀쩡한 남자애가 하루종일 이곳에 붙어 앉아 있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잘 생겼죠?”
“말이라도 진짜 걸었으면 어쩔 뻔.”
“아줌마들이 승현이한테 어찌나 들이밀던지…….”
“좋겠네. 아줌마들한테 인기가 많아서.”
남자친구 이름이 승현인가 보았다. 이제 스무 살인 듯한 남자애와 가출 소녀…… 소녀의 수영장 알바가 끝나면 둘은 어디서 이 밤을 또 헤매고 다닐까.
“승현이는 제 꿈을 응원해준 사람이에요. 유일했어요. 승현이가요.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저와 방향이 틀리면 그 사람과는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는 거니까…….”
“…….”
“승현이는 알아요.”
“…….”
“내가 누군지 승현이는 알아요. 승현이 만나기 전엔 제가 어떻게 살았는가 몰라요.”
“……뭘 했었는데 전에는?”
“마트에서 물건을 팔았어요. 저 같은 여자가 수십 명도 넘게 유니폼을 입고 매대 앞에 서 있어요. 그 여자들 중에서 저는 나이가 어려서 유리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정말 잘 했어요. 물건을 잘 팔면 회사에서 보너스도 줬어요. 한 달에 받는 보너스가 월급보다 많을 때도 있었으니까.”
“오…….”
“사람들이 저를 믿고 물건을 사서 만족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어요. ……근데 시간이 갈수록 싫어졌어요. 제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다 돈으로 보였으니까. 회사에서 월급을 더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거절했어요. 물건을 봐도 더이상 기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더 좋고 비싼 물건을 사도록 애를 써야 했어요. 매달 끝도 없이 새 물건들이 쏟아졌어요. 이전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어요. 이 물건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진짜 같지 않았어요. 그런 물건을 가져도 저는 충분히 불행했으니까요. 근데 그 일을 삼 년을 했어요. 질질 끌었어요. 원하지도 않는 것들을 하면서 제가 둘로 나뉘는 것 같았어요.”
“…….”
“오징어처럼 찢어질 뻔 했다니까요.”
“……후우.”
“뭐 할 말 없어요?”
“응?”
“없냐구요.”
“……오다가 오징어 튀김 맛나더라고. 근처 분식집 있지?”
“……언니.”
“……?”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나는 잠시 망설였다.
“네?”
“편한 대로.”
“저한텐 언니가 없는데…… 이상하게 전 항상 언니들이 편해요. 앵앵거리면서 애교도 잘 부려요.”
“…….”
“나중에 다시 만나면 놀아주면 돼요.”
“응?”
“그냥 저를 갖고 놀아주면 된다구요. 언제든지 그래줄 마음이 있으니까. 언니들한테는.”
“갖고 노는 거 잘 못하는데.”
“……떠나요.”
“…….”
“오늘.”
“오늘?”
“언니 얼굴은 보고 떠나고 싶었어요.”
나는 소녀의 얼굴을 보며 짐작했다. 소녀의 얼굴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음에서 새어 나오는 빛. 언젠가 그런 빛을 지하철 바닥에서 김밥을 팔던 여인의 얼굴에서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홀린 듯 그 여인에게 다가가 김밥을 샀다. ……그런 빛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소녀는 이제 떠날 준비가 다 된 것 같았다.
“너 진짜…… 바다로 가는구나.”
“당연하죠.”
나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방은 구했니?”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에요.”
“승현이랑 같이 가니?”
“아니요.”
“그럼?”
“승현인 내가 꿈을 이룰 때까지 내 곁에 있어 주겠다고 했어요.”
“…….”
“제가 가장 필요했던 건 그거니까.”
“…….”
“선물을 주고 옷을 사주는 것보다 더 필요한 거라고 했어요. 그냥 제 옆에서 저를 응원해주는 거. 제가 필요했던 건 그게 전부였어요. 승현이는 제 마음을 오해하지 않았어요. 정말 제 옆에 있어 준 거예요. 절 기다려준 거예요. 그것보다 더 소중한 건 없어요.”
소녀의 눈이 붉어졌다. 부끄럽다는 듯 소녀가 손으로 눈을 세게 비벼댄다.
“승현이가 오늘 가장 기쁜 날이라고 제게 그랬어요.”
“…….”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말이죠. 손님이…….”
“손님도 있어?”
“언니에요.”
“나?”
“그렇다니까요.”
소녀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한다. 셔츠와 바지, 그러다가 팬티까지 벗어버린다. 나는 멀뚱거리며 소녀와 유리벽에 서 있는 승현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소녀는 밀가루처럼 새하얀 알몸으로 유리벽 너머의 승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승현이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오늘 잠은 다 잤네. 네 남친.”
“승현인 앞을 못 봐요.”
“…….”
“시력이 남아 있었을 때 마지막으로 본 게 수영장이었대요. 승현인 지금 어릴 때 봤던 그 수영장을 보고 있는 거예요.”
“…….”
“여기 일하면서 꼭 마지막 날엔 홀딱 벗고 수영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소녀는 수영을 너무 잘했다.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홀린 듯 소녀를 바라보았다. 물결과 하나가 된 듯했다. 소녀의 몸은 말랑거리는 투명한 젤리처럼 보였다. 처음 알게 되었다. 물과 교감할 땐 수영복 같은 건 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애 혼자 벗고 있는 것이 나는 좀 미안했다. 천천히 나도 수영복을 벗었다. 소녀가 헤엄쳐가고 나도 소녀를 따라갔다. 나를 보고 답답했던지 소녀가 내게 다가와 물을 뿌리고 다리를 잡아당겼다. 머리카락까지 물에 흠뻑 젖었다. 소녀가 내게 바닥에서 발을 떼라고 했고 소녀의 팔을 붙잡고 오랫동안 나는 물속을 떠다녔다.
우리는 비가 내리는 거리를 말없이 그렇게 흘러 다녔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머리 위로 하늘이 조용히 우리를 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소녀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말없이 자리에 서서 얼굴을 숙였다. 두 손을 얼굴에 댄 채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굴에서 물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흘러내렸다.
“언니…….”
“……응?”
“울어요?”
“……그냥, 나 예전에 누구랑 이렇게 놀았던 것 같아서.”
……말없이 나를 보고 있던 소녀가 내 두 손을 잡아당겼다.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는 물속 가장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우리는 물속에서 손을 맞잡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뻗어 소녀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겨주었다. 눈을 맞춘 채 우리는 그렇게 정지해 있었다. 얼마 뒤 소녀가 손을 들어 내 눈을 가렸고 몇 초 뒤 소녀의 손이 치워졌을 때 나는, 눈처럼 하얀 비늘에 싸인 소녀의 눈부신 하체를 보고 말았다. ……소녀의 눈에서 초록빛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 입에 넣었다.
그날 수영장 바닥 청소를 마치고 소녀와 승현이, 나 우리 셋은 여자 탈의실 바닥에 앉아 파티를 열었다. 승현이는 나를 알고 있었다.
“얘기 들었어요. 원더우먼처럼 나타나서 여친을 구해주셨다고요.”
승현이의 너무나 깨끗하고 고운 목소리…… 때문에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승현이는 가방 속에서 새우깡 한 봉지와 샴페인 한 병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샴페인은 공교롭게도 우리 회사 제품이었다. 난 회사 얘기는 조금도 꺼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말했다. 바닷가, 물고기, 아름다운 석양과 파도, 연애와 고양이…… 그런 것들이 주제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하는 승현이는 무척 담담했다. 승현인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기다려야 하는 사명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소중한 누군가가 과거에도 떠났고 지금도 자신을 떠나가고 있다고 그래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 사람들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지 승현이는 울지 않았다. 우는 것은 소녀였다. 소녀는 신나게 떠들어대다가 중간중간 이야기의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뚝뚝 눈물을 흘렸다. 승현이는 소녀가 울고 있는 것을 마치 눈으로 보듯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소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승현이의 반쯤 뜬 눈은 초점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승현이는 사람의 모든 감정까지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로 말로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미세한 에너지 같은 것들로 승현인 상대방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것까지 승현인 볼 수 있는 아이였다.
밤이 새도록 우리는 함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기억될 수 있도록 서로를 눈 속에 새겨 넣는 것이 전부인 듯이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 천천히 날이 밝아왔다. 새벽녘 수영장을 나왔을 땐 시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아직 희뿌옇게 잠들어 있는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승현이와 소녀, 나는 각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아섰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길가에 심겨진 나무들은 조용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잎을 모두 다 떨어뜨려 놓고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