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고3인 승우는
학창시절 대부분을 할머니 손에서 자라났다.
부모님 모두 일을 하느라 바빴는데
어머니는 유치원 교사고
아버지는 승우 중학교 때 외국 주재원으로 나가 현재까지
외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공부도
아르바이트도
친구도
싫다고 하며
학교도 거부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승우가 걱정스러워
엄마가 승우를 상담실로 보냈다.
승우 곁엔 할머니가 있었지만
할머니가 부모의 빈자리를 온전히
채우지는 못한다.
승우는
부모의 부재로 인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통제, 규칙, 절제를 배우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승우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승우와 친하지 않는
부모도 당연히
승우를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승우.
승우는
상담실에서도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부모와 나를 한편으로 여기며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눈을 흘겨대며
나에게 으르렁거렸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며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려하는
그 아이는
사람이 아닌
작은 짐승 같았다.
승우 엄마와 상담을 하며
아이와 어떤 대화를 하는 지 물어보았다.
승우 엄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밥 먹었어? 청소 했어? 씻었어? 하라는 거 했어?... 이런 말 밖에 안 하는 것 같아요.”
엄마와 승우의 대화는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이 텅빈 가정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가정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가.
나는 가정은
부모와의 이야기로 채울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의 사소한 일상
힘들고 짜증나고 서럽고 외롭고 슬펐던
모든 일들을
조잘조잘거리고
속닥속닥거리며
이야기하는 것.
그것으로 가정은 채워질 수 있다.
아이가 커가는 모든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듯
서로의 이야기로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 가정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이와 부모를 잇는
다리가 되지 않을는지.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유산이 된다.
돈이나 건물을 자식에게 남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따뜻한 시간의 기억을
남기는 것이지 않을까.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유산이 된다.
나는 승우 엄마에게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부터 시작하며
조금씩 대화를 나눠보라고 말했다.
부모님
당신이라는 붓을 들고
아이들은 위대한 창조를 하길 원한다는 것을 아는가.
부모의 입을 통해 부모의 손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자한다.
그들이 마음껏 자신을 세상에 그릴 수 있도록.
당신이라는 붓을
아이에게 내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