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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이면서 피해자

긍휼...이 분노를 넘어섰다.

by 지영

70살의 내담자.

머리가 희끗한 그녀는

고통에 일그러진 채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딸이 애가 셋이야.

추석이라 올라온다는 거야.

애들 옷 사줄려고

온 백화점을 세 시간을 쏘다녔어.

어디 그 뿐인 줄 알아?

마트가서 재료 사다가

장조림에 잡채에 전도 붙이고

애들 오면 먹일려고...

할 거 다 했어.

근데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는 거냐고!"

그녀는

병든 남편으로 인해

평생 일을 하며 살아왔다.

거친 손과

단단한 몸을 보며

그녀가 얼마나

억척스런 삶을 살아왔는지

느껴졌다.


그녀의 딸은

그녀가 벌어다주는 돈, 물질 말고

그녀를 원했다.

그녀의 따뜻한 말과 관심, 사랑을 원했다.


"내 딸년이 뭐라고 그러는지 알아?

엄마, 그런 거 필요없어.

나한테 그리고 손주, 손녀한테

엄마랑 함께 있을 시간을 내달라는 거야.

대화도 안 하고

폰만 보고

이상한 뉴스 얘기만 하고

손주 손녀들도 안 좋아한대 할머니.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내가 딸 눈치나 보고

이 나이에 내가 뭐하나 모르겠어!"

그녀는 시간을 내 달라는 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가

자녀들과 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돈과 물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녀를 사랑한다.

입혀주고 재워주고 먹여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하다.

마음을 먹여주어야 하므로.

몸을 음식으로 채우듯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으므로.

결혼을 해서 애가 셋인데도

그녀의 딸은

아직도 70살인 노인을 바라보며

사랑을 달라고

징징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70살인 그녀도

사실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녀에게 사랑이

물질인 이유는

그녀 역시

그런 사랑 밖에는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받아본 것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다른 이에게 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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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나의 어르신...

한평생 자녀에게 몸으로 헌신한

가여운 여인...

어르신을 보며 마음이 저려왔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르신. 그럴 때는 그냥 자녀 말을 따라해보세요."

"어떻게?"

"엄마 이게 싫어, 하면 그냥 싫었구나."

"싫었구나."

"맞아요. 폰 보는 게 싫었구나"

"폰 보는 게 싫었구나"

"네. 그냥 따라해보세요."

"참... 지만 힘든 가 나는 안 힘들어?"

"옷하고 음식 해주는 거 말고 어르신 사랑이 고픈가봐요."

"사랑이 뭐야. 옷하고 음식해주는 게 사랑이지!"

"맞아요. 근데 딸은 말이랑 관심 같은 게 더 고픈가봐요."

물질도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배부르고 안 춥게 하는 것이

사랑이니까.

그러나

우리 부모는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배우지 못했다.

알지 못했다.


나이가 들고

상담을 하며

깨달은 것은

부모 역시 피해자였다는 것이다.

부모의 부모로부터

그들도 물질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나 역시 부모를 미워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들도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느 순간

긍휼의 마음...이

내게 들어왔고

긍휼이 분노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분노가 엷어지면서

삶에 자유가 찾아왔다.

관계가 열리면서

내 안의 가능성이 믿겨지기 시작했다.


미움과 분노는

나를 내 안에 가두게 한다.

미움과 분노로

살아가는 인생은

세상에 대해

스스로 한계를 세우고

장벽을 만드는 것과 같다.

부모를 용서하는 것은

내 삶에 자유와 가능성을 불러오는

헤아릴 수 없는 유익이 된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자녀들에게

말하고 싶다.

부모의 사랑의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길.

긴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그 무엇도 아닌

나를 위해서

부모를 용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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