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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변종이었는데...

상담사의 고백

by 지영

여자는 아이의 심리상태가 걱정된다며

센터를 방문해 심리검사를 의뢰했다.

내가 여자와 만나 초기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어린 아들은 센터 대기실에 남겨져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상담은 30분이 넘게 이어졌다.

분리불안이 심한 아이는 엄마가 상담실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자

울분이 나 대기실 소파를 긁어대며 소란을 피워댔다.

상담이 끝난 후 아이는 한참 동안 여자의 품에 안겨있었다.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이에게 엄마를 빼앗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여자와 상담 시간이 길어진 이유는

이렇게 힘든 내담자를 오랜만에 봤고

단발머리의, 아직 어려 보이는 그 여자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여자를 알고 싶었다. 가능하면 많이.


거친 일을 하는 듯한 여자의 손은 뼈마디가 굵었다.

여자는 결혼 초부터 남편에게 폭력을 당했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몸이 병들어 큰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여자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그 여자가 심하게 아름다운 것 같다고 느꼈다.


많은 부모를 상담했고 아이들을 검사했지만

부모들의 마음속엔 아이 한명 밖에 들어있지는 않았다.

그들의 마음엔 성공과 돈...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대신 실현시켜줄 것이라는 야망이 있었다.

상담을 하며 아이 한 명으로 채워지지 못한

그들의 마음을 보는 것은 늘 슬프고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달랐는데

변종 같았는데

여자의 마음속에는 어린 아들 하나 뿐이었다.

돈, 성공과 같은 다른 가치들이 그녀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녀의 가난한 마음은 어린 아들 하나로 가득 채워졌고

그녀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여자는 오직 아이의 마음이 어떤가를 궁금해하며

내 눈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깊은 고통으로 무너진 그녀의 몸은

그녀의 작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담담함은

그녀의 거친 손은

그녀의 선한 눈은

남편의 폭력에 당하고만 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아이를 위해 점점 강해지길 원하는

...빛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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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아름답게 내 눈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상담실에서 그녀를 보며

잠시 마음이 아득해지고... 뜨거워지고... 그랬던 것 같다.


그날 이후

한동안 잊고 있었던 뭔가가 마음 위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왜 상담을 하고 있는지...

아픔.

때문이다.

나는 내가 고통을 사모하는 사람임을 기억해냈다.

나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

혼로 신음하는 인간을 보는 것이 즐겁다.

내가 그 아픔을 겪지 않아서 즐거운 게 아니다.

말없이 아픔 속에 녹아져 그것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인간을 보는 것이

내게는 뭔가 인생의 '진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라는 거 잊지 마...'

20대 초반, 지하철에서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사람을 뒤에서 바라보며

이게 진짜라는 거 잊지 말라고... 내가 내게 말했던 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그게 왜 진짜였을까. 그때의 나에게는...

홀로 견딤. 외로움, 눈물, 통증... 나는 이런 단어가 좋다.

그것이 나와 닮은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인 것 같다.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그런 것 같다.


여자가 내게 주고 간 것은

내가 상담을 하는 이유였다.

오래전부터 나는 아픔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여자는 내게 알게 해주었다.


고통 속에 홀로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고통과 가까이서 살며 그 아름다움을 보며 살아가고 싶다.

당신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 글을 통해 지금 고백하게 되어 감사하다.

어린 아들을 사랑하는 당신

오직 아들 하나 밖에 없는 당신


당신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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