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의 젊은 영령에게
누군가 말했다. 거리를 지나가다 여행 캐리어만 보아도 마음이 설렌다고. 여행은 그런 것 같다. 두근거리는 기다림, 아직 마주치지 않은 풍경에 대한 막연한 동경, 떠남이라는 단어가 주는 해방감 같은 것.
석 달 전, 봄이 막 시작될 무렵 나는 코카서스 삼국여행을 예약했다. 몇 해 전, 가려고 시도하다 무산되었던 곳이었다. 그때부터 마음 한구석에 작은 깃발처럼 꽂혀 있던 이름이었다.
"유월, 그곳에 가면 야생화의 축제에 초대될 거야." 먼저 다녀온 이가 말을 했다. 기대감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마침내 출발을 앞둔 날에는 오매불망하던 첫사랑을 다시 만나러 가는 기분이 되었다.
9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두바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또 다른 비행기로 3시간 반을 날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뉴스가 전해졌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에게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속보였다. 그 충돌의 하늘, 불안한 지점은 우리가 지나가야 할 항로였다.
부득이하게 우회 비행이 결정되었고, 우리는 3시간을 더 하늘에 떠 있었다.
그 여섯 시간 반은 단지 피로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미사일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 하늘 한복판에서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감과 함께였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뉴스 헤드라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하늘을 가르는 미사일의 불빛이 내 마음속에서도 번쩍이는 듯했다. 나는 수만 피트 하늘 위에서 공포를 느꼈다.
긴 비행 끝에 바쿠공항에 도착했을 땐,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청명한 하늘과 뭔가 다른 신선한 바쿠의 공기를 마시며 다시금 낯선 곳의 기대감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그리 두려워했던가.
선사시대의 유물로 사만 년을 버티고 있는 암각화를 보기 위해 고부스탄으로 향했다. 바쿠 시내에서 한 시간여를 달렸다. 버스 차창 밖의 이국적 풍경들을 눈에 담으며 가는 길, 도로변에 놓인 비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서 있는 비석들. 그 비석에는 아직도 앳된 젊은 얼굴들이 웃고 있었다. 처음엔 낯설고 의아했다. 왜 거리 한복판에, 묘지가 아닌 곳에 이런 비석들이 놓여 있을까.
가이드가 말했다. “이 비석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순간, 마음속에 싸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듯했다. 내가 마음 졸이며 지나쳐온 전쟁이 이곳에도 있었다. 돌 위의 새겨진 얼굴들은 마치 시간 속에 갇힌 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 서 있었다.
누군가의 아들, 친구, 연인이었을 그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하늘은 어떤 색이었을까. 그들의 부모형제는, 어린 자식은 어떤 마음으로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그 얼굴들을 바라보며, 또다시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왜, 사람들은 전쟁을 해야만 하는 걸까. 그리고 무엇이, 누구의 권리로, 젊은 생명을 저토록 가벼이 데려가는 걸까.
문득 스물몇 살 때 보았던 한 전쟁 영화가 떠올랐다. 제목도, 등장인물도 모두 희미해졌지만, 영화가 끝난 후 가슴 깊이 남았던 두려움과 허무감은 아직도 선명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 감정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한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은 폐허뿐이었다. 피폐해진 인간성과, 사라진 청춘, 무너진 일상. 그리고 모든 게 바뀐 듯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 혹은 그와는 반대의 세상이 존재한다. 즉, 시간이 흘러도, 전쟁이 남긴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제르바이잔의 거리에서 마주한 비석 속 얼굴들은, 단지 돌 위에 각인된 사진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묻혀 같이 살아갈 것이다. 남겨진 이들은 그 거리를 오가며 그 사진들을 보며 상실의 고통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실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라는 질문은 공허한 울림일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든, 어떤 전쟁이든 그 전쟁을 위해 하나뿐인 생명을 희생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인지는, 지금도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되풀이된다.
전쟁이 가져온 흔적들이, 비석 속 얼굴들이 나를 계속해서 묻게 만든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나는 이 질문에 결코 답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