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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택배, 회복의 발판이 되다.

by 코나페소아

자신만만하게 40세에 시작한 사업이 허무하게 실패로 끝났다. 실패의 대가는 난생처음 겪어보는 '돈가뭄'과 가혹한 '돈갈증'의 생생한 체험이었다. 당장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 그리고 다달이 내야 했던 월세에 대한 부담감이 공포스럽게 덮쳐왔다. 내 삶에서 돈의 보호막이 사라진 채 맞이하는 낮시간은 너무도 기나긴 고통이었고 밤은 내일 다시 올 아침에 대한 두려움으로 뒤척이게 했다.


2010년 곤파스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쾌청한 어느 날 아침 산에 올랐다.

산속에 있는 나뭇잎들과 풀들이

한층 더 푸르고 싱그러웠다.


산정상을 향해 가던 중

많은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다.


깊은 산속에도 이런 시련이 있구나.

세속은 많은 죄 때문에 징벌차원에서

갖가지 시련을 받는다지만

산속 깊은 이곳에 사는 나무들 무슨 잘못이 있어 이렇게 고통을 겪나 싶었다.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중에서

욕심 없이 살면 한없이 평온하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얘네들도 이런 깊은 아픔을

여지없이 겪어내며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쓰러진 나무들을 지나치다

문득 그 모습이 사람인(人)처럼 보였다.


마치 쓰러진 나무들이

인생은 시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들려주는 것만 같아 걸음을 쉬 떼지 못한 채 한참을 지켜보았다.


중년의 실패 앞에 재기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실업급여, 중년 재취업지원제도, 소상공인지원 등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창업. 취업지원제도들은 저임금 임시고용직의 일자리만 제공할 뿐 실질적 재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업 또는 창업을 통한 재기를 꿈꾸었지만 높디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다시 일해왔던 현업으로 복귀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현업에 복귀했지만 경영난, 임금체불 등으로 불안정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50대에 들어서면서 관계에 대한 염증이 느껴졌고 노후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인생의 큰 전환이 필요했다.


세렌디피티.

인생은 잘 짜놓은 각본이 아닌 우연한 흐름대로 흘러갔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택배'를 접하게 되었다. 택배의 가장 큰 매력은 체력이 있는 한 은퇴 없이 계속해서 일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하는 만큼 벌 수 있다는 수입구조였다.


운명의 대전환과도 같이 오랜 기간 해왔던 일과 살던 지역을 떠나 새로운 일,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왔다. 모든 관계도 끊어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되는 속에 택배일을 가족과 함께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비 오면 비를 맞고 눈, 바람을 받아내며, 날 것 그대로의 작업환경 속에서 적응하려 애썼다.


막다른 길에 봉착했을 때, 이젠 끝인가 보다 하고 절망감으로 멈춰 서려 하던 순간마다 인생은 슬며시 또 다른 길을 열어줬다. 택배는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선택한 희망을 향한 또 하나의 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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