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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평강공주가 아니었습니다.

by 코나페소아

우리가 오랫동안 바꾸고 싶었던 식탁이 왔다. 그동안 저렴한 원목에 유리판을 얹은 식탁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보니 함께 식사라도 하려면 너무 좁았다. 그리고 사용시간이 길어지니 유리판에 낀 음식 때가 잘 지워지지 않아 눈에 거슬렸다. 아내와 포쉐린세라믹 식탁으로 바꾸기로 맘먹고 세일기간에 저렴하게 구입했다. 밥 먹고 나면 휑하니 제방으로 사라지는 막내아들이 요즘은 식사 후에도 한동안 식탁에 머물며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들어간다. 건전한 소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점은 새 밥그릇, 반찬그릇, 수저세트에 자꾸만 눈이 간다는 점이다.



휴일아침 식사 후 아내와 커피 한잔을 나누며 새 식탁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어제저녁에 오빠와 통화한 일이 주제가 되었다. 어떻게 오누이지간에 대화가 그리 메마르냐는 나의 핀잔에 아내가 형제지간이라도 속사정까지 다 나누기 어렵다는 대답에 살아가면서 맘 편한 관계를 맺고 사는 게 왜 이리 힘든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부모와 형제를 대해도 늘 조심스럽다고 했다. 장성한 형제지간에 서로 안보는 사이가 되는 게 두려워 살피게 된다고 했다. 안쓰러우면서도 나도 생각해 보니 공감이 되었다. 할 말이 있어도 서로 어떤 처지인지 알 수 없으니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란 생각이 우선 든다. 자연히 형제지간이라도 속마음이 빠진 겉도는 대화나 잘 지낸다는 무미건조한 인사만 오갈 뿐이다.


아내는 유일하게 모질고 공격적인 말을 해도 되는 대상이 남편뿐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도 되돌아오는 반응이 염려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도 아내에게 업신여김을 당해도 그려려니 하고 그리 불쾌하지 않다. 힘든 택배를 함께 하면서 서로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하나가 되서인지 몰라도 아내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택배를 시작하면서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낯선 외딴 도시, 그것도 산자락에 있는 아파트에 지내는 삶이 얼마나 무료할까. 백화점도, 흔한 화장품가게도 없다. 주말드라마와 남편과 아들 밖에 없지만 아내는 늘 환하게 미소 지어준다. 커피를 나눌 때면 거의 아내가 말하고 나는 그저 듣고 맞장구 수준의 대화를 할 뿐이지만 아내는 너무 편안해하고 생기가 돈다.


나는 늘 아내에게 바라기만 하며 살아왔다. 상처를 주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바보온달이 맞다. 하지만 아내는 평강공주가 아니었다. 내가 편안해하고 나를 세워주는 그런 존재로 일방적으로 희생해 주길 강요해 왔다는 자책이 든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고 감싸 안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게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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