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를 보러 새벽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새해 떡국을 먹으려 아내와 내가 식당을 향한 길은 평소와는 다르게 혼잡했다. 새해 첫해를 추위와 오랜 기다림 끝에 지켜보고 내려온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떡국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설렌다.
"신년은 무슨 얼어 죽을, 오늘도 택배, 내일도 택배, 그날이 늘 그날이지 뭐."
신년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에 나이 많은 H형님이 퉁명하게 내뱉은 말이 생각난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힘겹고,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현실은 언제나 우리 눈앞에 펼쳐지지만, 무수한 사람들은 신년 첫날 첫해를 향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틈바구니에 간신히 끼어들어선 우리는 번잡스러운 혼잡을 기꺼운 마음으로 감내하며 새해 첫날 아침을 바삐 맞이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일렁이는 떡국 한 그릇이 놓였다. 맛난 떡국과 함께 나란히 놓인 물김치, 총각김치, 포기김치는 보기만큼이나 맛도 깔끔하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품는다. 따끈한 떡국을 한술 뜨는데 어제 마지막날 등 근육통으로 고생했던 일이며, 지난 한 해의 다사다난함이 슬며시 떠오른다. 서예가로 활동하는 식당주인과 딸인 듯한 직원이 분주히 떡국을 나르며 오가고, 신년의 설렘을 가득 안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우리는 그렇게 위안과 서글픔이 묻은 떡국을 한술씩 떠먹고 있었다.
집에 있는 아들을 위해 끓여줄 떡국재료며 간식거리를 장바구니에 채워 들고 돌아오는 차 안에 '엔젤 올슨'이 부르는 <All The Good Times>가 감미롭게 흘러나온다. 행복했다. 감사하고....
"한 해 동안 고생 많았고 애 많이 썼어."
대답이 없어 아내를 바라보니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순간 나도 뭉클해진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맺히는 그 의미를 누가 알 수 있을까.누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여보, 우리 집에 통증약이 이렇게 많이 있었어?"
약상자를 정리하던 아내가 놀라며 한마디 했다. 식탁테이블에 펼쳐진 타이레놀 등 각종 통증약, 파스 등을 바라보니 만만치 않은 한 해를 우리가 지나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또 그런 한해에 우리는 방금 한걸음 내디딘 상태다.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우리의 손가락 끝에태양을 올려놓고 바라보는 것 같은 여유가 슬며시 생겨난다. 반딧불처럼 아주 작디작지만 따스하고 희망이 생겨나는, 그리고 힘겹고 더 고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더 기대가 되고 희망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그런 느낌들이강하게 와닿는다.
위로를 주던 따끈한 떡국 한 숟가락에 슬며시 지난날의 힘겨움과 아픔들이 덧놓여져 먹먹하지만 생을 향한 강한 욕구가 뒤섞여 느껴지는 그런 이상스러운 순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