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 그림자가 서로 겹쳐지는 완벽한 순간들.
같은 하늘 아래에 살지만 사람들은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를 만난 그날은 몹시도 춥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몰아치는 '한파'는 말랑한 인심도 거칠게 만드는가 보다. 배송하기 위해 차량을 멈추는 순간 거기다 대지 말라며 마트 직원이 꽥 소리를 지른다. 자신도 짐을 실어야 하는데 방해가 되었나 보다.
엘리베이터를 잠시 멈추고 물건을 배송하는 순간 20대 아들과 함께 있던 오십 대 아줌마가 '닫힘 버튼'을 눌러댔다. 놀라서 황급히 되돌아온 아내를 보며 그녀의 아들은 무안한 듯 엄마에게 눈치를 주지만 그녀는 들으라는 듯 바쁘다는 말만 되풀이 해댔다.
그렇게 매서운 한파와 인심에 겹겹이 시달렸던 우리는 포근한 온기가 감도는 집안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커피 한잔씩을 손에 든 채로 우울한 감정 속으로 무기력하게 침몰해 가고 있을 때, 우연스레 '히라야마'를 만났다.
우리의 고단한 그림자와 그의 그림자가 하나씩 겹쳐질 때마다 완벽한 삶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완벽'이라는 단어가 주는 진정한 의미가 느끼지면서 옥죄였던 우울한 감정의 밧줄들이 우리에게서 하나씩 풀려 나갔다.
'히라야마', 그는 도쿄의 공공화장실을 청소하는 육십 대 노동자이다. 그가 왜 이런 삶을 사는지 구체적인 사연은 알 수가 없다. 감독인 '빔 밴더스'감독은 무뚝뚝한 독일인답게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관객들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을 통해서 추측가능한 힌트를 줬다.
정장을 입은 기사가 모는 고급세단 승용차에서 내린 여동생이 "오빠가 참 좋아했던 거잖아."라며 고급 초콜릿상자를 건네는 장면과 사진촬영과 독서, 분재, 음악감상 등 많은 정성과 지출이 요구되는 고급스러운 취향들을 통해서 그가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세상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했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화장실 청소부인 삶을 자신의 현실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더러운 화장실 변기를 부여쥔 채 청소에 집중하는 순간이면 그곳은 그만의 완벽한 세상이자 삶의 전부로 변했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용변이 급하다며 청소 중이라는 팻말을 무너뜨린 채 들이닥친 사람들에 의해서 무례하게도 자주 침범당했다. 화장실에서 길을 잃은 아이의 손을 쥐고 엄마를 찾아주려는 순간 황급히 다가온 아이의 젊은 엄마는 고맙다는 인사 대신에 물티슈를 꺼내 아이의 손을 닦아내고는 감사대신에 모멸만을 남긴 채 가던 길을 가버렸다.
그들의 무례한 침범이 있을 때면 '히라야마'는 그저 그들에게서 가만히 한걸음 물러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하늘을 올려보거나 벽에 일렁이는 나뭇잎들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옅은 미소를 짓곤 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하든 그는 자신의 세상에 집중할 뿐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에 집중하고, 평온함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삶, 그 자체로 다가왔다.
하지만, 과묵함과 사람들과의 적절한 거리 두기를 통해서 자신만의 세상 속 평화를 잘 지켜온 그였지만, 조카와 여동생과의 우연한 조우를 통해 잊었던 그들의 삶과 충돌하면서 단단했던 그의 평정심이 무섭게 흔들렸다. 여동생과 조카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어둑해진 집 마당에서, 가족들과 동떨어진 자신의 처지와 볼품없는 현실, 그리고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는 그들과의 세상에 대한 단절로 인해 밀려오는 아픔에 그는 한동안 오열하며 산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인생이란 같은 하늘아래에서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유유히 살아가는 듯싶지만,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위성처럼 터무니없는 긴 타원을 그리며 이리저리 다른 인생들과 충돌하고 분산하는 아픔을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숙명을 지녔다.
서로 다른 세상이 충돌하는 순간이면 잔잔하던 우리의 내면은 파문으로 일렁인다. 뒤이어 생겨난 크고 작은 균열들이 애써 지탱해 온 우리의 세상 속 평온함을 서서히 파괴시킨다. 좋든지 나쁘든지 그렇게 우리의 완벽한 일상은 늘 그렇게 방해를 받는다. 관계란 살아있기에 겪어야 하는 숙명적 굴레이자, 우리에게 충돌과 파열을 끊임없이 안겨준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잠자리에 든 그는 일상의 기억들과 뒤섞인 의미를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꿈결을 헤매다가 새벽이면 산사의 마당을 쓰는 빗자루 소리에 두 눈을 뜬다. 비질 소리에 주저함 없이 일어나 이불을 개고 캔커피 하나를 달랑 들고 차를 몰고 일터를 향하는 그의 모습에서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다.
페소아가 "몸을 씻듯 삶도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듯이 내 속의 생각들을 매일 새벽마다 갈아줘야 한다."라고 쓴 글귀의 의미가 와닿는다. 일상의 잔재들, 관계의 파편들을 새벽마다 빗자루로 쓸어내고 새로운 아침을, 완벽한 나날을 꿈꾸며 그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참 모순적이다. 상상하고 꿈을 가지는 발걸음 앞에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터준다. 그리고는 인생이 무작위로 베푼 것 이 외의 것은 포기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현실을 아프게 확인시켜 준다.
이른 새벽 일터를 향하던 '히라야마'가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니나 시몬'이 부르는 <Feeling Good>을 들으며 기나길게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며 짓던 강렬했던 앤딩장면 속 표정의 의미는 아닐까.
인생이 얼마나 모순되는 지를. 그것이 이해되어야 비로소 삶의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것을...
이런 인생의 완벽한 모순 때문에 그가, 내가, 인생들이 울고 웃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