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my life

가짜 스웩(Swag) vs 진짜 삶

by 코나페소아

​대형 힙합 오디션 '랩 유니버스' 최종 예선 대기실의 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운 긴장감이 흘렀지만, 동시에 관객 수백 명의 열기와 교차했다. 화려하고 힙한 무대의상과 롤렉스 시계로 치장한 참가자들 사이에서, 동구는 빛바랜 택배조끼와 작업용 후리스를 입은 채 이질적인 섬처럼 서 있었다.


예선 1, 2차를 거치는 동안 '더트리'의 크루들은 하나둘씩 탈락하고, 유일하게 생존했지만 스물네 살의, '비단을 쏟아낼 입'을 가진 금동구라는 이름이 오늘따라 유독 초라하게 느껴졌다. 주변 래퍼들의 화려한 '스웩'과 여유로운 몸짓들은 동구의 초라한 현실을 끊임없이 조롱하는 듯했다.


​한없이 위축되려는 순간, 동구는 전날 밤 나미리가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전해주던 말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오빠, 세상은 진짜 가짜를 구별하기보다 타협하는 걸 원해. 하지만 오빠는 그걸 거부하는 '영특한 꼴통'이잖아. 무대 위에서만큼은 아무도 못 건드리게 오빠의 감정을 쏟아내. 오직 오빠의 가슴에 뛰는 비트만 따라가. 가짜들을 뒤엎는 진짜 꼴통의 무대를 보여줘."


동구는 심호흡하며 요동치는 감정을 단단히 봉인했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자신만의 묵직한 킥과 날카로운 스네어 소리만이 가득 차고 온통 맴돌았다. '가자. 가자고. 그래. 동구야. 이제 진짜 시작이라고.'



​무대 조명이 암전 되고, 방송 스태프가 동구의 택배 조끼에 마이크를 채워준다. 동구는 자신의 택배조끼에서 풍겨 나는 땀 냄새를 맡는 순간, 짧은 상념에 빠졌다. 누군가는 이 냄새를 가난의 악취라며 코를 찌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구에게 이 조끼는 매일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내리며 삶을 정면으로 돌파해 온 투쟁의 흔적이었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방송국 사람들은 내게 '눈물'을 원한다고 했다. 엄마의 고생담을 팔고, 내 저작권료 200원을 동정의 밑천으로 삼으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틀렸다. 내 이름은 '비단을 쏟아낼 입'을 가진 금동구다. 나는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딛고 선 이 땅의 흙먼지가 얼마나 생생하고 뜨거운지 증명하러 왔다. 가식적인 성자들이 대리석 바닥 위에서 거룩을 연기할 때, 나는 이 낡은 택배조끼를 입고 거쳐온 진짜 세상을 랩으로 뱉어낼 거야.


​동구가 가만히 어금니를 깨무는 순간, 무대에 불이 켜졌다. 삐딱하게 앉은 유명 래퍼 출신 심사위원 'K'가 동구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택배 유니폼이라... 동구 씨, 요즘 대중은 음악만 듣지 않아요. 그 음악 뒤에 숨은 '불쌍한 서사'를 쇼핑하는 거지. 제작진이 준 컨셉 가이드 못 봤어요? 조금 더 비참하게, 밑바닥의 정서를 팔아달라고. 지금 그 옷은 훌륭한 소품인데, 동구 씨 눈빛은 너무 뻣뻣해.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눈물 한 방울'이 부족하단 말이야."


​동구가 마이크를 고쳐 잡으며 반문했다. "소품이라니요. 이건 제 일터에서 바로 온 제 피부 같은 겁니다. K님, 당신이 말하는 그 번쩍이는 것들, 저도 꿈꿉니다. 하지만 빛나지만 가짜 같은 다이아몬드가 진짜를 외치는 제 목소리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딛고 선 흙탕물이 더럽다고 해서 제 삶까지 가짜인 건 아니니까요. 이게 제 삶이고 제 진짜 랩이니깐요." 무대 주변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 K는 코웃음을 쳤다. "솔직해지자고. 여긴 쇼야. 시청자들은 네 땀방울보다 네가 얼마나 불행한지에 더 열광해. 대본대로 해. 그게 네가 이 지옥 같은 그곳에서 벗어날 유일한 티켓이니까."


동구가 서늘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왔던 익숙한 말씀이네요. 앞에서 웃고 뒤로는 진실을 감추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지금 당신들의 요구가 딱 그렇네요. 제가 진짜 꼴통이라서 그런지,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체질에 안 맞아서요."

​심사위원 K가 발끈했다. "뭐? 지금 여기서 행패 부리겠다는 거야?"

"아니요. 진짜가 뭔지 들려주겠다는 겁니다. 비트 주세요."

동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화려했던 조명 아래 낮게 흐르던 베이스음이 뚝 끊기고 익숙한 동구의 묵직한 비트가 흘러나왔다. 동구가 심사위원의 권위에 굴하지 않고 "아가리만 터는 니 존재 자체가 내게는 민폐"라고 랩의 첫 소절을 쏘아붙이듯 내뱉는 순간, 스튜디오는 순식간에 진공 상태가 된 것처럼 적막해졌다. ​동구의 랩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박을 비웃듯 파고드는 엇박의 향연이었고,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들이 화살이 되어 날아갔다.

IDGAF(신경 안 써) / Just living my life

쇼윈도 안의 마네킹, 넌 팔기 바쁜 니 Life

난 오르막을 오르며 매일 숨을 골라

네가 뱉는 가짜 동정에 내 비트는 안 졸아

가짜 보석이 덮은 네 시야, 땀 흘린 내 언덕은 이미 신화

동구의 표정은 차가울 정도로 차분했으나, 그 목소리는 지하실 바닥을 뚫고 올라온 단단한 나무 기둥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처음에는 얼어붙어 있던 관객들이 하나둘씩 박자를 맞추기 시작하더니, 이내 스튜디오 전체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금동구! 금동구!"를 연호하는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 앞에 심사위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서로를 쳐다보며 허탈해할 뿐이었다. 그들이 세운 감동적인 가짜 시나리오가 동구의 진짜 랩 앞에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무대를 내려오는 동구의 땀 젖은 등 뒤로 환호 소리가 메아리쳤다. 복도 끝, 낡은 사물함 앞에 서서 그는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미리가 보낸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최고였어, 오빠. 진짜의 무대는 이제야 시작된 것 같은데?"


​동구는 짧은 숨을 내뱉으며 촬영장 밖으로 나섰다. 어둠이 깔린 주차장, 낡은 택배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거는 동구의 눈빛은 이제 허상이 아닌 현실의 오르막길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이 화려한 쇼 같은 무대가 아닌, 진짜 자신만의 숨소리가 증명될 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동구는 미리에게 전화를 걸어 단호하고 짧게 말했다. "미리야, 우리의 계획을 수정해야 하겠다. 방송국 무대 말고, 진짜 내 목소리가 필요한 곳으로 갈 거야." 동구의 택배차가 가파른 찌르레기 마을의 오르막길을 힘차게 오른다. 가장 낮은 곳에서 터져 나올 찬란한 함성은, 이제 막 그 언덕 너머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https://youtu.be/a2GfFRl8bPs?si=RYtZBrBmFbL0Ujcs


이전 04화Cl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