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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함께 한다는 의미.

가족공동체를 향한 꿈

by 코나페소아

택배를 하고부터는 가족과 늘 함께 한다. 1톤 탑차에 실리는 사오백 개의 물량을 두세 명이 함께 하니 배송이 많이 수월하다. 택배는 보기와는 다르게 단순하지 않다. 상품이 고객 문 앞에 놓이더라도 오배송이나 파손, 이사 등 다양하게 발생된 변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배송은 무한히 연장된다. 배송될 상품이 지닌 다양한 변수들이 잘 처리되고 정확하게 고객문 앞에 도착해야 비로소 배송이 끝난다.


가족이 상품적재, 운전, 고객응대 및 처리, 분류 및 배송 등 다양한 업무를 나누어 분담하니 그만큼 심신이 편안하다.


하지만 함께 한다는 사실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사람은 정치적인 존재가 된다. 자기중심적인 자아들 간의 지속적인 충돌이 시작된다. 피를 나눈 혈연관계라 해도 희생을 감내하는 마음이 없다면 함께 하기 어렵다. 관계가 형성되면 누군가는 늘 희생되어야 한다.


그래서 함께 한다는 사실이 주는 유익함 여부를 떠나 관계는 늘 구속이고 속박이라고 여겨져서 공동체를 향한 나의 시각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막의 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조형물이 강렬한 붉은 불길에 휩싸이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곧이어 음악과 춤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공동체 프로젝트 <버닝맨 Burning Man>은 1986년 '래리하비'가 편견 없는 공동체를 꿈꾸며 창조, 자유, 무소유 등을 슬로건으로 시작된다. 매년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 단 9일 간만 존재하는 '블랙 록 시티(Black Rock City)'에서 7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데 실험적인 아이디어, 자유로운 예술공연, 춤 등으로 교류한다. 자발적으로 모여 원칙을 지키며 실험적인 공동체생활을 한다. 인상적인 원칙 중 한 가지는 화폐를 사용할 수 없고 재능이나 물물교환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행사 후에는 모든 것을 불사르고 다시 무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새로운 탄생을 기다린다.


재미있는 건 신자유주의 상징인 구글 , 테슬라의 일론머스크, 메타의 주크버그 등이 열렬한 버닝맨 추종자라는 사실이다. 물질만능적이고 철저한 개인주의 신봉자라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어떠한 매력이 공동체에게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국내에도 다양한 공동체가 있다. 특징은 교육, 주거, 일자리, 신앙 등 다양한 삶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공동체의 힘을 통해 실직, 소외계층, 교육불평등 등 큰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하게 시도되고 있다.




관계가 싫어 홀로 하는 택배를 선택했지만 싫든 좋든 간에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 사는 게 현실이다. 택배의 많은 인력과 품이 요구되는 측면이야 서로 분담하면 해결되지만 함께 하면서 발생되는 서로 다른 성향과 소소한 의견충돌 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과제로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살면서 가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거 같다. 그저 함께 있으면 친밀한 관계는 저절로 형성되는 줄로만 착각했다. 관계에 대해 무지했으니 번거롭고 힘들게만 여겨진 게 아닐까. 택배를 하면서 그동안 무시하고 방치해 왔던 가족이라는 의미와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무수한 관계로 이루어졌다. 죽는 순간까지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루기 싫다고 부정하고 회피하기보다는 관계 맺는 법을 아는 게 인생정답 아니지 싶다.


즐겁게 관계를 맺으며 함께 하는 유익함을 누릴 수는 없는 걸까.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개인이 일상생활을 하며 타인과 함께 있는 동안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그는 일상에서 개인자아 간에 소통하는 관계에 성스러움이 부여되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의례>라고 보았다. 그 의례의 뼈대는 '존대'와 '처신'이라고 여겼다.


일상적인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존중의례>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잘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공동체의 유익함을 알고 그 힘을 원하지만 상호존중하는 법에는 서툴고 관심이 없다.


택배를 하면서 형성된 작은 가족공동체이지만 그동안의 나중심의 말과 행동을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던져 태우고 잘 이루어 나가고 싶다. 우리 가족만의 <상호존중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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