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엔딩, 우울엔딩.

by 코나페소아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나지막한 산등성이가 후면부를 감싸고 있는 대규모 단지이다.


그 덕에 아침이면 창문으로 산속풍경과 산새소리

가 가장 먼저 찾아온다. 단지 정면 건너편 산자락

에는 유서 깊은 옛 산성터가 있고 단지 후면부 능선너머에는 첨단업종 및 제조업 위주의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변에 아파트단지는 이곳뿐인데 초등학교와 대형슈퍼, 근린상가시설들이 나름 아기자기하게 잘 갖춰져 있어 일상생활의 불편은 없는 편이다.


단지에 들어서면 주변의 녹지축과 잘 연계되게 조경이 꾸며져 있어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산속에 숨겨진 동화속 '동막골' 같은 세상이 펼쳐진 느낌이 들곤 한다.



지하철로 출근하며 졸다가 목적지를 지나쳐 우연히 내린 낯선 역의 풍경이 너무도 편안하고 고요하게 다가왔다.


되돌아가는 전철을 기다리며 이런 곳에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덜컥 이사 와서 택배 하며 생활한 지 벌써 5년째 접어든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이곳에서의 삶은 단순해졌다. 가족이 늘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일한다.


택배를 마친후에는 유일한 벗이자 이웃인 아내와 수다 떨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책 읽고 장보고 요리한다.


먹고사는 문제부터 자잘한 일상까지 우리는 늘 함께한다. 잠시라도 곁에 없으면 어디 있냐고 서로를 찾는다.


상호의존성이 정상범주를 벗어난 것 같지만 낯선 환경 속에서 지내다 보면 누구든지 경험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병리현상이라 생각한다.


벚꽃이 곧 내릴 비에 모두 떨어질 것 같은 월요일 오후에 혼자 택배를 끝내고 돌아오니 아내는 지쳐있었다.


택배를 시작하면서 외딴섬 같은 이곳으로 이사와 살면서 아내 곁에는 아는 이라고는 남편과 막내아들뿐이다.


이사오기 전에는 혼자 있을 때는 근처에 있는 백화점이며 상가들을 구경하며 값싸고 마음에 드는 가성비 좋은 상품을 발견하고는 득템 했다며 좋아서 나에게 자랑하며 즐거워하고는 했는데 이젠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친한 이들과 만나 수다 떨거나 주말아침이면 나와 함께 잠시 들러 빵도 먹고 커피도 마시던 '우주인방앗간' 같은 특색 있는 빵집도 없다.


인근 전철역과 연계된 마을버스가 있지만 시간간격이 길어서 근처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려면 승용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아내는 혼자서 운전하길 싫어했다.


나는 자본주의 냄새라며 놀리는 백화점 1층에 진동하는 향수냄새를 참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휴일인 오늘 같은 날 혼자가 되면 우리 아파트는 그만 세상과 단절된 감옥이 되어버린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하며 반복되는 단순한 삶의 패턴이지만 우리 가족이 더욱 강하게 하나로 결속되어 가고 있다고 나름 긍정적으로 여겨왔는 데 지쳐있는 아내의 모습를 보고 있자니 쇼핑하고 즐길거리, 아는 이들이 없는 외딴곳에서 동떨어져 산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슬며시 밀려왔다.


일하지 않고 있을 땐 심적으로 지쳐버리는 곳.

이렇게 아는 이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옳은 걸까.




<월든>의 소로우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명랑하고 건전한 생활의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 얽혀 살고 있어서 서로의 길을 막기도 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렸다. 조금 더 간격을 두고 만나더라도 중요하고 흉금을 터놓는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터인데 말이다.


그는 사람의 가치는 피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통한 설명할 수 없는 우호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혼자만의 사색에 있다고 했다.


외로운 월든호수가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서 너무나도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있음을 느끼게 된 순간부터 어떤 인간이 가장 가까운 인간이 되거나 어떤 장소이든 자신에게는 더 이상 낯선 곳이 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솔잎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장소에서도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사람들은 홀로 내면 속에 진정한 가치 있는 것들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거나 획득할 여유가 없이 바쁘게 산다.


피부에 와닿는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들에 치중하 느라 사람들간의 교제는 너무나 빈번하고 값싸게 전락해 버렸다.


바닷물을 마신 것같이 만남이 잦아질수록 더 갈한 갈증과 후회만 남는다.



간혹 가까이에 살며 함께 택배를 하게 된 처제네에 가서 식사를 하곤 한다. 처제는 장모님의 손맛을 쏙 닮은 만두를 내놓곤 한다.


함께 만두를 나누며 딸들과 사위들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편안한 곳에 계시리라 위안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장모님과 남겨진 우리들간에 더욱 강하 게 연결된 감정의 연결고리를 느끼게 된다.


사람은 관계가 싫어서 아는 이들떠나서 자연인과 같은 삶을 살면서도 곁에 없는 이들을 그리워한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관계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편향성을 지녔다.


관계란 살갑게 자주 만난다고 깊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의 내면 속에 그분이 보여준 희생과 사랑을 되새길수록 서로의 인연은 점점 더 깊어지고 짙어

짐을 느끼게 된다.

지쳐있던 아내와 아파트 정원을 걸었다.


봄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보랏빛 자주목련을 보면 늘 아내가 떠오른다. 속까지 자주색인 '자목련'과 달리 '자주목련'은 속이 새하얗다.


마치 나 같은 사람과 지금까지 맞춰주며 살아온 착하고 여린 아내를 마주 보는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진다.


눈부시게 시리도록 하얀 벚꽃잎들 사이로 젊은 날 우리 부부가 함께 꽃구경을 다니던 이런저런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시간이 흘러가는 순간이 마냥 느껴지는 이곳은 너무나 투명해서인지 내속에 휘몰아치고 떠오르는 감정의 부유물들이 너무나 선명하고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위에 나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참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모난 욕망들을 침전시키고 이곳의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을 온전하게 느끼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월든호수가처럼 생명이 분출되어 나오는 곳,

즉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자연이 가까운 이곳에서 살아갈수록 더 소중해지는 가족을 지켜주고 서로 의지하고픈 열망이 더욱 강렬해진다.



창공은 영원히 푸르고,

대지는 장구히 변치 않으며 봄에 꽃을 피운다.

그러하나 사람아.

그대는 대체 얼마나 살려나?

<이백 시/한스 베트게 역/관현악곡 "대지의 노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