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이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이들을 내 손에 받아 들었을 때,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고 벅찬 감동으로 어지러울 만큼 기뻐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살갑고 자상한 아빠가 아니라 엄한 회초리였고 지엄한 훈장 같은 아버지였다. 아이들의 잘못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특히 도둑질이나 거짓말 등엔 분노하며 징계했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한 부성애가 아닌 경쟁과 과시로 일그러진 욕망에서 분출된 공격성일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로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나로 인해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특히 자유분방한 스타일인 큰아이가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때의 내 모습은 아버지가 아니라 비판자, 징벌자였다. 그런 나의 실수를 희석시켜 줄 아이들과의 애착관계는 깊이 형성되지 않았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오직 나의 모든 관심은 회사와 일에만 쏠려있었다. 큰 아이가 반숙한 계란프라이를 밥에 얹고 돼지김치찌개와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고, 옷은 의외로 보수적인 정장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작은 아이가 힙합을 너무나 좋아하고 세심하고 꼼꼼하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뼈대만 앙상히 남아있을 뿐 그 속을 메울 살가운 관계이라는 살점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아이들은 훌쩍 성장해 이십 대의 청년들이 되어버렸다. 아들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편하게 대하는 것이 많이 어색하고 아이들도 그런 시도를 하는 나를 불편해했다.
가족이란 과연 어떤 인연으로 연결된 걸까.
가족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일반적으로 따뜻하고 내편처럼 힘이 되는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현실 속 가족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서로에게 잦은 간섭과 비난으로 지속적인 상처를 주고받는 부담스러운 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 속으로는 서로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현실에서는 서로를 대하는 <관계기술>에 무지해서 모진 악연의 관계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사랑과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강요하고 간섭하는 순간부터 벗어나고픈 족쇄 같은 관계로 전락한다. 장미는 장미답게, 튤립은 튤립답게 피어나야 자연스러운 대자연의 이치는 가족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실 속 가족들은 구성원들이 각자의 본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수용하는 법에 많이 무지하다.
서로 가족은 되었지만 부모자식 간의 건강한 역할과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는 법 등을 그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들 역시 무지한 부모들처럼 아들들을 훈육으로 포장된 강요를 하며 키웠다. 튤립인 아이에게 장미처럼 살라고 요구했다. 세상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선망받는 장미의 정원 속에 들어가 살라고 요구했다. 아들들의 사춘기 시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워야 할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자리는 늘 긴장과 대치의 분위기가 형성되곤 했다. 부모에게 강요받는 자녀는 그것에 맞춰 거짓된 모습과 반항으로 자기 방어에 나선다.
문득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노 같은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사투르노'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다. 죽어가는 아버지에게서 너도 똑같이 네 자식에게서 왕좌를 빼앗길 거라는 저주를 받는다. 사투르노는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 다섯 명의 아들을 잡아먹는다. 나의 욕망을 위해 자식의 희생을 강요하는 삶을 살수 밖에 없다. 자식을 잡아먹는 아버지. 대물림되는 사투르노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당장 버려야 할 욕망은 무엇일까.
깊은 고민 끝에 나는 아이들에게 정답을 가르쳐주고 해결해 주어야 멋진 아버지가 된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는 간섭하고 강요하고 잔소리하는 꼰대에 불과했다. 답을 줄 수 없어도, 해결을 해줄 능력이 없어도 그저 같이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그런 아버지를 아들들은 아마도 더 원했을 것 같다. 내가 나의 아버지에게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
젊은 청년시절 가족 중에 대화가 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가슴이 터질듯한 답답함이 밀려올 때면 나는 한 시간을 마냥 걸어서 바닷가로 향했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푸른 바다를 한없이 바라만 보았다. 한동안 바라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풀어지고 후련해져 옴을 느끼곤 했다. 아무런 말없이 그저 나를 품어준 그때 그 바다처럼 우리 아들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지금이라도 될 수는 없는 걸까. 살가운 부성애를 가진 아버지의 삶을 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늦어버렸다면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노후를 보내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그리고 세상의 험난한 파고에 시달려 지칠 때면 아이들이 찾아와 잠시 말없이 있다가 가도 쉼을 얻는 그런 쉼터 같은 부모가 되어 주는 것이다.
이년 전에 장인, 장모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명절 때면 유독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다. 바쁜 택배가 아니었다면 자기는 우울증에 걸렸을 거라고 아내는 종종 말하곤 했다.
부부가 함께 택배를 하면서 우리는 모든 집안일을 간소화했다. 특히 음식도 작고 간소하게 차리는 방향으로 했다. 힘든 택배일 탓도 있지만 사실 장모님께서 명절과 계절마다 절기음식이며 김장 등을 만들어 살갑게 챙겨주셨던 이유도 컸다.
이번 명절에도 기름냄새는 나야 하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꼬치부침과 동그랑땡 위주로 간단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명절음식 준비를 마치고 잠시 쉬는 동안 아내가 울먹거리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장모님이 더 생각난 모양이다. 손이 많이 가는 명절음식을 홀로 준비하셨을 엄마의 노고와 음식으로 소환되는 그리움에 울컥 미안함과 서러움이 복받쳤나 보다.
작년부터 취업 후 자취하는 큰아들과 막내아이가 차려놓은 설음식들을 맛나게 먹어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만든 음식들을 먹은 아이들이 먼 훗날 자기들 엄마처럼 우리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게 될까. 사람은 늘 자기 입장과 처지를 넘어서 생각하기 힘들다. 흔히들 당장 보고 들을 땐 무덤덤했다가 시간이 지난 뒤 같은 처지와 입장이 되고서야 뒤늦은 공감과 아쉬움을 토하곤 한다.
사람은 제 구실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 더딘 존재다. 그래서 장모님은 더딘 딸이 그 마음을 알 때까지 채근하지 않고 기다리신 걸까. 뒤늦게 깨달은 자식은 속깊이 아파하며 닮은 사랑을 가진 부모로 성숙해 간다.
튤립 같은 우리 막내아들은 사춘기시절에 장미처럼 키워지려 장미정원을 향하기 위해 인문계 고등학교로 내던져짐을 당했다. 아들은 그 속에서 삼 년간 이방인처럼 지내야 했다.
막내아들은 영화 <코다>의 주인공 루비처럼 이런 꽉 막힌 현실 속에서 '힙합'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가슴속 응어리진 울분을 랩으로 쏟아내며 힘겨운 순간들을 견뎌냈었다는 사실을 부모인 우리는 까맣게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외면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믿어왔기에 무조건 대학으로 진학시키려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을 강요했다.
세상의 평판과 인정이 우선이지 아들의 적성과 성향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들은 삼 년간의 이방인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다.
늘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반항적이던 아들이 졸업 후 힙합을 전공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힙합은 슬럼가에서 가난한 흑인들이나 갱단들이 내뱉는 생소하고 쓰레기 같은 음악처럼 인식되었다.
하지만 아들이 만든 힙합가사를 통해서 대화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아들의 속내와 고민들을 고스란히 알 수 있었고 그 음악 속에서 아들이 전혀 다른 존재로 되살아나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아들과 함께 택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제대한 후 첫 음원 등록한 음악을 함께 들었다. 차량의 볼륨은 어느 순간인가 저절로 최대한으로 키워지고 아들은 몹시 흥분하며 웨이브를 타면서 노래 부르며 흥겨워했다.
난생처음 행복해하는 아들의 모습을 곁에서 생생하게 지켜봤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아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와 아들은 서로에게 한 걸음씩 간격을 좁혀가며 다가서고 있었다.
대학복학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전문 래퍼의 길로 뛰어든 아들이 택배를 하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존재인지를 인식하게 되면서 최고 명문대학교에 다니는 어느 누구의 아들도 부럽지 않게 되었다.
힘겨운 짐들을 하나라도 더 들고 가려고 엄마의 짐을 뺏어 들고 달려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힙합을 하면서 가족, 특히 부모에 대한 마음이 굉장히 깊어졌다. 늘 소극적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던 아들이 섬세한 음악적 감성과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함께 택배를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젊은 세대답게 능숙하게 택배 앱을 사용하고, 배송 중에 빠진 물건이 있나 없나 재차 확인하고, 물건이 없다는 고객의 화물은 꼼꼼하게 추적해 내고 며칠이 지난 배송된 상품이라도 생생하게 기억해 내는 등 택배현장 속에서 아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부모인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아들의 진면목을 나날이 재인식해야만 했다.
영화 <코다>에서 청각장애자인 아버지 프랭크는 딸 루비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그저 주변의 청중들의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박수를 치며 좋아할 뿐이다. 딸의 목소리가 너무나 궁금한 아버지는 노래를 부르는 딸의 목에 손가락을 대고 목울림을 통해 딸의 행복한 감정과 느낌을 뒤늦게 느끼고는 음악을 향한 딸의 열망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게 된다.
아버지 프랭크가 딸의 노래를 귀가 아닌 손가락으로 공감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아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휠소터가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시끄럽고 소란한 작업환경 속에서 까대기를 하다 보면 지치거나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수많은 음원들 속에 파묻힌 아들의 음원을 찾아 이어폰으로 들으며 일하곤 한다.
루비의 아빠, 프랭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아들의 노래 속에 깊이 빠져든다. 어쿠스틱을 좋아하기에 난 아들의 감성적인 '싱잉랩'이 참 좋다. 아들의 가사 속에서 느껴오는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참 좋고 감동이 된다. 부모님은 자신에게 전부이며 그래서 부모님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앳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들을 우리는 여태까지 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대해 왔을까.
영화 <코다>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작품성 때문이 아니라 꿈을 이루려 가족을 떠나는 루비가 다시 뒤돌아가 가족을 부둥켜 앉는 장면을 보면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루비의 꿈이 가족을 위한 꿈으로, 가족은 루비를 위한 가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막내아들은 스스로가 하고 싶어 선택한 음악이기에 늘 곡작업에 열중한다. 택배일을 도울 때 말곤 언제나 방구석에 박혀 곡작업을 한다. 수십 곡의 음악을 만들며 이곡들이 찬란한 유산이 되는 꿈을 꾸면서 방 안에 스스로를 기꺼이 가둔다.
너는 꼭 뮤지션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는 나를 가만히 껴앉으며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다라며 고마워하는 아들. 글을 쓰게 되면서 음악을 하는 아들의 심정과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어간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위한 유일한 팬이자 응원하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부모님 밖에 없다는 아들, 그래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아들의 랩을 들으며 새로운 소망이 생겨났다.
먹고살기 위해 우리 가족은 택배를 선택했지만 글과 음악만은 우리 가족이 살아가기 위한 일, 생업이었으면 한다. 돈과 무관하게 우리 가족이 숨 쉬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주는 그런 일 말이다.
오늘 우리는 글과 힙합 그리고 사랑으로 세상과 가슴 뛰는 소통을 하는 작고 소박한 꿈을 가지고 택배를 하러 다시 길을 나서는 중이다.
핫네이버후드의 <WOR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