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택배초기 까대기 하던 중 맞은편 동료가 슬며시 던진 말이다. 어쩌다가 밑바닥 '택배인생'이 되었냐는 의미였다.
본인도 회사 다니다 이런저런 일터를 전전하다 택배를 하게 된 처지라며 위로한다. 택배를 한다는 사실이 그의 말처럼 인생의 밑바닥에 처했다는 뜻인 걸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억'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고금리 은행예금의 혜택도 최소 1억 이상은 있어야 기대가능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소유한 돈의 규모에 따라 '혜택의 차별'을 허용하며 비정상적으로 작동 중이다. 억 단위의 세상에 비해 택배월드는 백 원, 천 원 단위로 돌아간다.
취급되는 돈의 단위로 비교하면 백 원짜리 동전과 1억 수표의 차이만큼 택배인생이 한참 밑바닥일 수도 있겠다.
택배박스 한건당 배송수수료가 700원 내지 900원 수준이다. 하지만 몇백 원짜리 한 상자, 한 상자를 배송하다 보면 월말에 수백만 원의 수수료가 되어왔다.
택배를 하기 전에는 백 원짜리 동전은 관심 밖이었다. 푸대접하던 푼돈들이 모이고 모여 월말에 기존 현업 월급만큼 되돌아오는 현실을 경험하고 보니 푼돈에 대한 나의 기존관념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경제적 욕구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일도 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존중받는 일을 동시에 성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둘 다 잡으려 애쓰다가 '시대적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힘들게 고생하다가 택배업으로 뛰어든 이들도 많지만 '힘든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택배구조의 장점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이들도 많다.
남들 보기에 험한 일이지만 미래의 꿈을 가지고 집도 사고 투자도 하는 등 경제적 토대를 내실 있게 다져가는 택배기사들도 많다.
존중받지 못한 일터에 있다고 실패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돈의 인문학>에서 김찬호 교수는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이행하면서 가치의 척도가 돈으로 획일화되어 간다고 진단한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만연하고 돈이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궁극적인 가치요 최종적인 획득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는 거기에서 사람들은 '돈만 있는'삶을 맹렬하게 추구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돈의 소유에 집착하는 삶은 인생의 사소한 부분들을 번잡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고 제거하려고 한다.
직장여성들이 번거로운 양육의 문제를 타인에게 전담시켰을 때 발생하는 자녀들의 애착결핍증세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인생은 사소한 일상 뒷면에 가치의 씨앗을 숨겨놓았다. 돈은 소유하기보다는 관계 맺기를 잘해야 된다는 말이 피부에 와닿는다.
돈의 숫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돈의 가격과 가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소유에만 집착할 때 '돈만 있는' 삶이 된다.
택배를 하기 전에는 억 단위의 돈을 소유하려 삶의 수많은 소소한 것들의 가치를 훼손시키며 살았지만 풍족하지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내와의 오랜 대화와 친밀한 감정교류에서 오는 일체감, 아들들이 훌쩍 성장해 세상을 향한 어설픈 날갯짓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껴오는 감정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감, 육체노동 후 휴일의 달콤함과 소중함 등등.
볼품없는 택배일을 하며 푼돈을 만지며 살지만 삶 속에 숨겨진 '빛나는 가치 있는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며 산다.
이렇게 글로 표현하고 싶은 열망도 되살아났다. 서두르지 않고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인생에 가장 큰 만족감을 준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다.
행복이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진솔하게 삶을 마주 대할 때 느껴지는 상태 아닐까.
코로나가 한창일 때 갑자기 장모님의 급보가 날아왔다. 가벼운 증세로 병원치료를 받으시다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온 가족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장인어른이 많이 불편하신 상태였는데 장모님의 급작스런 비보는 애통함과 깊은 충격에 빠지게 했다.
가족들이 황망히 장례를 치렀다. 코로나시기라 3일장이 아닌 2일장으로 결정되었고 가족들 상의하에 자연장으로 진행되었다.
부모를 잃은 깊은 슬픔에 빠진 자녀들에게 무거운 현실의 짐들은 야속하게 다가왔다. 남겨진 아버님을 보살필 방안들,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들은 온전히 자식들의 몫이 되었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장모님의 통장이 발견되었다. 잔고가 수천만 원이나 되는 큰돈이었다.
큰아들인 처형이 그동안 생활비를 드렸었는데 장모님이 한 푼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으신 것이었다. 자식이 힘들게 보내는 돈을 차마 맘 편히 쓰지 못하신 것인지, 당신의 노후비용으로 마련하신 것인지는 불분명했지만 홀로 남겨진 장인어른의 요양과 치료에 큰 힘이 되었다.
평소에 자식에게 아쉬운 말을 하지 않으셨고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셨다. 돌아가셔서도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시려는 어머니의 품위가 느껴졌다.
처형은 어머니가 입원하셨을 때 걱정도 되었지만 입원비며 혹시 암이면 어떡하나 병원비 걱정하는 마음이 속되게 들었다며 어머니께 죄송하다며 애통해했다.
장모님이 남기신 돈은 자식에게서 지키고 싶은 엄마의 품위였고 따스한 사랑이었다.
택배기사들에게 돈은 우스갯소리로 '금융치료'라고 한다. 힘겨운 택배현실을 돈이 잊게 해 주고 견디게 해 준다는 의미이리라.
택배를 하다 보면 아이스박스며 택배박스에게서 묻어난 흔적과 땀으로 몰골이 엉망이 된다.
맨손으로 택배박스를 나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시꺼먼 손자국이 나서 부끄러워 그 이후로 장갑을 꼭 쓴다는 젊은 택배기사의 말에서 숨기고 싶은 택배의 모습이 있다.
땀으로 진동하는 택배현장에 어울리지 않게 진하게 향수를 뿌리고 금사슬목걸이에 신상 아디다스 상하의 운동복과 신발로 멋을 부린 택배소장들의 패션은 나름 이유가 있는 듯싶었다.
땀냄새는 향수로 감추고 남들로 존중받지 못하는 직업을 최고급 외제승용차로 포장시키는 경향이 있다. 힘겨운 택배현실에 대한 보상심리로 고수익의 택배기사나 소장들은 <돈과시>에 집착하는 것 같다.
하지만 포장을 아무리 화려하게 해도 속 안의 '양아치'근성의 악취는 숨길 수 없다.
택배대리점에는 수십 명의 택배기사들이 있고 이들을 잘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소장들에게 있다. 택배초기 양아치 같은 소장들은 '해고'를 무기 삼아 통제하려 하고 '돈'으로 위력을 과시하고자 애쓰지만 다들 '허세'부린다며 멸시당한다.
언젠가 남다른 한 소장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소장과 달리 택배기사들과 같이 출근하고 현장을 지켰다.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지는 날에도 부지런히 눈을 치우며 기사들을 챙기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런 소장과 같은 대리점에서 일하고 싶어졌다.
예상대로 소속대리점 기사들의 평판은 호평 일색이었다. 그는 내가 봤던 소장들과 달리 금목걸이도, 향수도, 고급브랜드 옷도 걸치지 않았지만 소장으로서의 품위가 느껴졌다.
돈은 겉모습을 포장해 줘도 속모습까지 덮어줄 순 없다. 돈을 통한 왜곡된 모습이 아니라 진솔한 우리 본연의 감정과 품위를 드러내는 삶이 영향력 있고, 행복한 삶이다.
삶의 순간마다 다양한 크레바스 같은 절벽들을 아슬하게 지나치거나 마주하게 된다.
실직이나 돈가뭄과 같은 상황에 처할 때면 극심한 두려움과 걱정, 불안에 빠지게 된다. 걱정과 불안이 심해지면 우울증이 온다.
우울증의 큰 문제점은 아무것도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욕망은 다른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고 공감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우울증은 사람의 살아갈 가장 큰 욕망을 포기하게 만들기에 위험하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본성에서 나오는 가장 열렬한 욕구의 충족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불안 / 알랭 드 보통>
돈이 없다는 사실이 불안과 걱정을 끊임없이 불러내는 이유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는 것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돈을 향해 인생은 욕망에서 또 다른 욕망을 투영하고 그 대가로 불안에서 또 다른 불안을 품은 채 그렇게 살아간다.
인생의 벼랑 끝 같은 고비마다 돈에 묻어 나는 감정적 욕망을 걷어내고 이성적으로 대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돈걱정은 '감정'과 관련이 있다. 돈걱정은 경제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심리적인 문제에 가깝고 은행잔고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정신에 관한 문제다. <인생학교/존 암스트롱>
아내는 늘 돈을 사용하기 전에 꼭 필요한 소비인지를 세 번 확인해 본다. 그러면 돈에 대한 욕망 desire인지 필요 need인지가 구분된다고 한다.
돈에 대한 욕망과 필요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선택과 집중을 결정하고 돈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것은 돈과의 관계에서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서열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그런 서열체계가 무너진 무질서한 상태, 즉 돈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상태임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근원적이고 중요한 감정이다. 걱정과 불안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부정적이고 소모적인 감정이다.
신경학자이자 우울증 전문가인 <앨릭스 코브>는 결정을 하면 즐거워지고 걱정과 불안이 줄어든다고 조언한다.
원하지 않는 것을 피하는 결정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결정을 내리면 통제감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통제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통제하고 있다는 인식, 곧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의식을 지키는 것이다.
인생이 고독하고 힘겹고 번잡한 이유는 아마도 돈만을 움켜쥐려 안간힘을 쓰다 정작 주변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며 살아서 아닐까.
우리가 돈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하냐에 따라 돈이 우리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도울 수도 있고 방해할 수도 있다.
돈을 통한 왜곡된 모습이 아니라 진솔한 우리 본연의 감정과 품위를 드러내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다.
돈을 푼돈처럼, 삶의 매 순간을 목돈처럼 여기는 돈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