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월드, 세상 속 또 하나의 세상

by 코나페소아

브런치글에서 아파트 옆집에 생수를 배달하던 택배기사가 욕설을 내뱉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생수배달을 끊고 정수기를 새로 들여놓으며 생긴 좌충우돌하는 내용의 에피소드를 우연히 읽었다.


당시에 배송한 당사자는 아니지만 택배를 이용하는 고객의 마음에 상처를 드렸다는 사실이 죄송스러웠다.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배송하며 욕설을 한 배송기사를 두둔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 상황의 이면에 많은 사연들이 가려져 있음을 택배기사인, 나는 알 수 있기에 많이 안타까웠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세상이 전부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같은 하늘아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낯설고 생소한 세상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일부로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랜디 버크너 교수는 사람에게 ‘자기 투영(self-projection)’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기 투영'이란 우리의 관점을 지금 이 순간에서 다른 관점(과거나 미래, 남의 입장)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만일 이런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주변에 일어나는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 투영'능력이 떨어지면 사회성이 결여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온전한 '자기 투영'능력을 지닌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택배를 이용하는 고객의 세상이 있다면, 같은 하늘아래 또 다른 택배기사의 세상, '택배월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택배를 하기 전에는 '욕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최대한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 가급적 품위 있고 전문용어로 표현하려 애쓰던 비즈니스 환경과 평온한 일상생활에서는 욕설이란 '금기어' 또는 '비속어'였다.


당연스럽게도 주변에 욕설을 하는 이들을 보기도 참 힘들었다. 하지만 택배를 하면서 레일 곁에 서는 순간 매일같이 욕설을 접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택배기사들이 욕을 하는 대상은 자신을 힘겹게 하는 '상황'과 '사람'들에 대해서였다. 무거운 짐들을 배송하는 힘겨운 상황이거나, 배송 중에 무시를 당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겪는 상황들 말이다. 이런 상황들의 공통점은 그저 무조건 참고 견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욕만 할 뿐 세상의 끄트머리를 쥐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내려 애쓰는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택배초기에는 욕설이 난무하는 주변환경이 싫어서 한동안 아내를 레일 곁에 세울 수가 없어 나 혼자서 '까데기(물건을 받고 상차하는 과정)'를 했다.


그리고 아내를 태우러 집으로 갔다가 배송지를 향하는데 무려 한 시간 가까이나 소모되었다. 그러니 배송시간이 엄청나게 지연되어 늦은 밤 시간에야 배송이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예민했던 나였지만 택배를 하면서 힘겨운 상황들과 무거운 짐들, 부당한 처우에 시달리면서 택배기사들의 '욕설'은 '욕'이 아니라 힘겨운 상황을 견뎌내고자 하는 '신음'이자 '비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택배기사는 돈을 벌려면 입에서 '욕'이 나와야 한다는 우스갯 말이 슬며시 공감될 정도였다.


사람들은 모른다. 택배기사는 배송을 하기 전에 이미 60~70%의 힘을 소모해 버린다. 짐을 받고 쌓고 하느라 말이다.


육체의 한계상황에서 오직 '악'으로 '깡'으로 힘을 짜내어 생수, 쌀, 고양이모래, 세제 등을 날라야 한다. 덤으로 고객의 재촉이나 고객센터로부터 배송한 지 일주일도 지난 상품을 찾아내라는 과제에도 시달리며 배송한다.


'욕'이라도 한번 하고 다시 마음잡고 배송에 나서야 한다. 오배송이라도 나면 밤새 시달려야 하기에 어떻게 해서든 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배송에 나서야 한다.

혹시나 배송 중에 혼자 욕을 해대는 택배기사를 보게 된다면 무서워하지 마시고 십중팔구 힘든 상황에 죽을 힘을 다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구나하고 '자기 투영' 해주셨으면 한다.


택배기사의 '욕'은 힘겨운 상황을 견뎌 내고자 하는 '신음'이자 '비명'이라는 것이 택배월드를 체험 중인 나의 시각이다.



택배를 하면서 이전의 모든 인연들이 무겁고 부담스러웠다.


단순히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자유롭고 싶었다. 택배를 하는 동안 독서도, 글쓰기도 중단했다. 한동안 모든 걸 회피하듯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택배에 집중시켰다.


체중이 10kg이나 빠질 만큼 힘든 현실적응과 생존하기 위해서라는 핑계가 전부는 아니었다. 택배이전의 삶에 대한 강한 부정과 외면하려는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택배월드 속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내 시야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치듯 지나친 인연에 불과했던 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내 인생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 6시에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청소부들, 단체주문이 들어왔는지 노란 불빛의 가게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김밥집 부부, 앞머리 롤을 한 채 허겁지겁 학원승합차를 타는 고3여고생, 늘 쌍지팡이를 의지한 채 장거리 산책을 하시는 허리굽은 할머니 등 이른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고 정겹게 와닿았다.


아내는 새벽에 쌍지팡이를 지고 운동하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힘내세요. 할머니"하며 혼잣말로 마음을 담아 응원했다. 건강을 저리도 지키시려는 힘든 상황은 없으신 걸까 걱정했고 새벽에 가게에 나와 일하는 우리 또래의 김밥집 부부를 보고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파트 배송을 하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인연들도 있다. 아파트에는 오래 살았지만 그동안 인식 못했던 존재들이다.


내가 배송하는 구역은 구도심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단지들이다. 계단의 미끄럼방지턱이 노르스름한 동으로 되어있다.


그것을 청소아주머니들이 반질반질 빛나게 수세미로 청소하며 숨차하시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아침 출근시간이면 수많은 주민들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반짝이며 빛나는 계단을 무심하게 지나칠 것이다.


경비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잘못 배송된 아이스박스를 수거했다며 걱정하시며 건네주신다. 허겁지겁 급히 잡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우편집배원 아저씨가 배송할 상품이 하나면 배송해 줄 테니 건네달라고 한다. 감사하다는 인사말에 싱긋 웃는 집배원아저씨의 미소가 정겹다.


바쁠 텐데 엘리베이터 층별 배송 때 무심한 듯 열림버튼을 눌러주며 지연시켜 주는 배달기사들. 택배 하기 전에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수많은 존재들이다.


우리는 주변에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렇게 무심하게 살아간다.




택배월드를 처음 접했을 때 생소하고도 양면적인 측면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호칭'이다.


형, 형님이라는 단어는 택배 하기 전 나에겐 나이 든 연배나 선배에 대한 존중과 끈끈한 인연의 의미가 담긴 특별한 단어였다.


특히 맏아들이고 외동인 나에겐 참 생소하고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던 호칭이다. 택배월드에서는 형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 형님은 더 나이차가 나는 사람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의미다.


물론 김 씨, 박 씨보단 다소 정감은 가지만 참 생소하다. 아들뻘 동료기사에게서 형, 형님소리를 들을 땐 참 많이 이상하고 당황스럽다.


조직 내 직급과 직책에 대한 호칭 대신에 형, 누나, 이모, 형부 등으로 자연스레 서로를 칭하는 택배월드는 유연함과 평등을 강조하는 유수의 첨단 IT회사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다.


하지만 물량이 많고 적음에 대한 택배기사 간의 공감온도는 싸늘하다 못해 차갑다. 택배초기 배송수량이 너무 적어 생활하기 힘들어서 곁의 형님, 동생들에게 하소연하며 위로를 기대했는데 차가운 핀잔만 되돌아왔다.


형, 동생인 동료가 나가야 내 탑차가 채워진다는 택배월드의 불편한 진실 때문인지 물량과 수량을 말하고 묻는 게 늘 조심스럽다.


이전에 각자 다른 일을 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레일 곁에 나란히 서서 열심히 까대기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평등함이 잘 구현된 곳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택배월드의 실상은 '기울어진 운동장'같은 구조이고 택배기사는 사용자에게만 유리하게 짜인 고용의 틀 안에 갇힌 피고용인일 뿐이다. 특고(특수고용직노동자)라고 불려질 때마다 겉과 속이 다른 택배월드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택배기사는 육체노동자일까?

아니면 감정노동자일까?


요즘 택배기사들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통해 건강을 케어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택배월드 입문 전에는 단순노동직이라 여겼다. 아무 생각 없이 몸만 부지런히 놀리고 걷고 배송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일 년 치 스케줄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 전부를 쥐어짜 내는 현업보단 훨씬 단순할 줄 알았다.


하지만 택배는 체력과 감정적 소모가 동시에 요구된다. 택배기사들이 대부분 조그마한 상황에 울컥하고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마치 감정이 바닥을 드러낸 것처럼 '버럭'하며 감정의 날을 세우는 흔한 모습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택배기사는 감정노동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배송환경 탓하며 단순히 욕하는 것으로 해소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택배기사 개인적으로 감정의 항아리를 채우는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배송을 하며 인상 깊었던 노년의 택배기사분이 생각난다. 서로 배송이 겹쳐지는 짜증 나는 상황임에도 늘 "먼저 올라가십시오. 저는 천천히 배송합니다." 하시며 양보하시곤 했다. 참 느긋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배송하던 아파트소장이 지상출입을 금지하자 가장 강경하고 저돌적으로 대응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택배를 오래 하려면 스스로를 제어하고 감정조절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구나를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은 같은 하늘아래에서 참 다양한 세상을 꾸미고 살아간다.


나에게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을 우리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택배기사는 '진상'이라고도 지칭한다.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은 반사회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으니 욕먹을 수밖에 없다.


희한하게도 똑같이 무겁고 힘든 짐이라도 이전에 선한 베풂을 받은 짐들은 무겁지도 힘들지도 않고, 욕도 안 나온다. 그저 감사함과 정겨움으로 배송하게 된다.


삶의 힘든 시련 속에 택배를 하게 되었지만 내가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세상은 보려고 하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말이다. 택배를 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많은 존재들과 세상을 보며 알게 되었으니 나의 인생이 그만큼 성숙하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간혹 브런치의 분위기나 댓글 속에서 택배기사인 주제에 무슨 이런 글을 쓰지하는 불편한 시선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택배를 하기에 진심으로 글을 다시 쓸 수 있고 즐길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다.


비록 야자대추나무처럼 남들에게 풍성히 나눠주며 살 인생은 못되기에 욕하고 욕 듣는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지만 삼나무처럼 늘 푸르고 자유롭게 살아갈 설렘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암울해 보여도 희망이, 꿈이 생긴다.




이전 12화택배기사가 천만원을 벌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