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고객은 또 다른 나 자신이었다.

by 코나페소아

택배초기에는 배송을 마친 후 받는 감사문자에 많이 감동했다. 이렇게 따스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 응원해 주는 팬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배송을 하면 할수록 그런 든든함은 허망하게 스러져 갔다.

자신이 주소를 잘못 쓰고는 끝까지 당장 다시 배송해 달라며 힘들게 하던 진상고객이 그동안 무수하게 "감사합니다". "안전 운전하세요."라는 살가운 문자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나를 따스하게 도취시킨 문자들의 실체가 아름다운 독버섯처럼 느껴지면서 한동안 씁쓸했다.

주소를 잘 못쓰거나 누락시키고는 미안하다는 한마디 말없이 어디로 가져다 달라고 하거나, 이사 갔으니 다시 배송해 달라고 우기거나, 욕설을 하며 협박하듯 요구하는 고객은 그저 그 상황이 끝나면 모든 것이 종료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진상고객들은 따로 있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상냥하고 세련된 말투를 가졌다. 그러나 약점을 잡으면 집요하고도 공격적으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수많은 평범한 고객들 사이에서 아주 드물게 출현한다. 한차례, 그들을 겪고 나면 며칠간 우울해지고 의욕감퇴로 인해 일하는 것이 많이 힘들어진다. 배송구역에서 만난 다른 택배사 동료기사가 하소연을 했다. 배송된 고가의 상품을 못 받았다고 우기는 고객으로 인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얼굴을 보니 많이 까칠해졌다. CCTV로 확인이 되었고 기억도 분명한데 택배기사에게 무조건 덮어씌우려는 행태가 괘씸하다.


택배초기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려 했다. 실수도 많았기에 사과하고 공손하게 대하려 애썼다. 진상고객들은 상냥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그들의 요구사항은 점점 더 과감해진다. 택배를 하면 할수록 사람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 많이 훼손당하는 느낌이 든다.


중년이고 오랜 직장경험으로 나름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상황들은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했다. 그래서 몸으로 하는 육체노동인 택배일에서 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그나마 순수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예의치레도 없이 원색적으로 요구하는 진상고객들과 실랑이하며 시달리다 보면 자연인처럼 관계지옥에서 벗어나고픈 심정이 된다. 그런 고객과의 만남은 택배를 그만두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들을 잘 감당하는 효과적인 대처방법은 없을까. 그들을 만날 때마다 감정적 기복이 많이 생기고 정신건강에도 안좋 고 불행한 감정의 수렁에 빠져들 것 같아 염려가 되었다.


진상고객에 대응하는 첫 번째 전략은 그들을 평범한 고객들과 구별해 내는 관찰력을 키워 달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상냥함을 가장한 집요한 공격성' 발견되는 즉시 머릿속에 빨간 경고등을 켜고 경계모드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


두 번째는 그들은 집요하고 교활하게 우리의 감정을 흔들어 당황시키려 시도하며 쏟아내는 공격적인 말들에 반응하면 안 된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를 막을 순 없지만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같이 화를 내고 공격하거나 당황하면 절대 안 된다.


냉철하고 당당하게 그런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 그들로 인해 소중한 나의 일터가 나의 가정이, 언제나 행복해야 할 나의 마음이 엉망이 되게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우리에게만 진상고객이 아니었다. 같은 구역을 배송하는 다른 택배기사들도 똑같은 수법의 공격적인 행위에 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나름의 대응매뉴얼과 수칙을 정하고 그들을 대할 때는 각별히 신중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진상고객만큼이나 강렬한 공격성이 내 속에도 있다는 사실말이다. 그것은 타인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욕구를 지닌 인간이기에 그것이 자칫 분노 등의 공격적 방식으로 언제든지 분출될 수 있었다.


택배를 하기 이전에 언젠가 김치를 택배로 주문을 한 적이 있었다. 택배배송 완료문자를 받나 도착된 상품이 없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주문과정에서 주소입력을 하며 오류가 발생되어 이전에 살던 주소로 배송지가 잘못 지정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신선식품인 상품을 엉뚱한 곳에 배송을 하고는 퇴근했다는 택배기사의 말에 몹시 화가 나서 거칠게 항의를 하고는 직접 상품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는 그 택배회사를 이용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역시 진상고객이었다. 그리고 얄궂은 운명처럼, 증오했던 그 택배회사에서 지금은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다. 진상고객은 바로 또 다른 나 자신이었다. 진상고객을 통해서 과거의 나, 또 다른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이 가진 공격성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공격성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상 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귀하게 경험했다.


인간은 장애물을 만나 그것을 극복하고자 할 때 자신에 대하여 가장 잘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장애물을 극복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서로가 '만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들판 저 멀리에서 깜박이고 있는 불빛들과 의사소통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생택쥐페리의 우연한 여행자>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서 치유를 받는다. 고슴도치들이 서로 가시에 찔리지 않는 거리를 두 고 모여서 차가운 겨울삭풍을 견뎌내는 것처럼 상처 주는 사람 때문에 사람을 향한 따스한 마음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진상고객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내가 가진 공격성을 잘 다스려내지 못할 때 드러나는 또 다른 내 모습이기에 그들을 향한 증오로 온통 가슴을 채우기보다는 마음 한편에 측은지심을 조금이라도 남겨 두는 것이 현명다.

주문한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으나 문 앞을 살펴보니 상품이 없었다. 전화하니 배송을 한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오배송을 한 것이었다. 다시 배송해 드리겠다고 했으나 한참 동안 연락이 없었다. 잘못 배송된 상품을 착각하고 오배송된 집에서 들고 들어가 버렸는데 연락 중이라고 했다.


택배기사인 나는 현 상황의 그녀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밤늦게 전화한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칭얼대는 어린 자녀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내일 새벽에 다시 배송해 드리겠다는 그녀에게 내가 찾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되찾아온 상품을 보면서 사람이란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만큼 상대가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배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인식조차 못했던 상대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지금의 내 가슴속에는 오배송당한 유쾌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그 어떠한 공격성도, 짜증도 생겨나지 않았다. 관심과 공감이야 말로 황량한 인생들판에서 서로가 만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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