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알바 이야기
고3 시험이 끝났다. 12년간의 긴 공부 여정이 마침표를 찍은 순간이었다.
딸아이는 마치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그런데 이 자유를 만끽하기도 잠시, 벌써 알바 자리를 찾고 있었다.
"해산물은 절대 안 돼.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
딸은 확실했다. 하지만 고기는 달랐다.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동네 고깃집이었다.
기름 냄새가 옷에 밸 텐데, 술 마신 손님들도 많을 텐데... 부모 마음은 걱정이 앞섰다.
그 고깃집은 정말 작았다. 원형 테이블 다섯 개가 전부인, 가족이 운영하는 소박한 곳이었다.
딸이 처음 알바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나는 슬쩍 가볼까 생각했다.
우리 딸이 일하는 모습도 구경하고, 매출에도 조금 보탬이 되고, 서비스는 어떤지도 확인해 보려고.
"절대 오지 마!"
딸의 단호한 거절에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의 독립적인 공간을 존중해 주자.
고3 때까지 오직 공부만 했던 아이가 이제 저녁 5시면 집을 나선다.
처음엔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다.
아직 앳된 얼굴에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짠했다.
손님이 많을 때는 밤 11시까지, 연말 바쁠 때는 연장 근무까지.
가족 운영이다 보니 스케줄이 자주 바뀌었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일이니, 우리는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한 달이 흘렀다.
그날 딸이 집에 돌아올 때 손에는 예쁜 선물 세트가 들려 있었다.
"사장님이 주셨어!" 명절 선물 세트
한 달 된 아르바이트생에게 선물을 주다니.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구나 싶어 감동했다.
딸의 어깨가 어느새 의젓해 보였다. 사회생활을 통해 한 뼘 더 자란 것 같았다.
3월이 왔다. 딸이 아르바이트비를 모아서 뭔가 준비하는 것 같더니, 어느 날 아빠에게 선물 하나를 내밀었다.
"아빠, 이거."
핸드폰과 연결되는 스마트 워치였다.
빨간 내복 대신 이런 멋진 선물을!
남편은 너무 감동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딸의 첫 월급으로 산 선물이라니.
그런데 내 앞에서 딸은 미안한 듯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뭘 필요로 하는지 몰라서 못 샀어."
그 솔직한 말이 오히려 더 귀여웠다.
그게 벌써 3년 전 이야기다.
그때의 그 작은 고깃집에서 첫 사회생활을 배운 우리 딸. 기름 냄새를 마다하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일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노동으로 번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된 그 시간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대견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딸은 그 고깃집에서 단순히 알바만 한 게 아니라, 책임감과 독립심,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벅차고 감동적인 일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