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요?" 누군가 물으면 대번에 나이가 들통난다.
하얀 분필가루 날리는 초록 칠판, "줄 똑바로!" 외치시던 담임 선생님의 잔소리까지.
그 시절 우리는 늘 군대처럼 줄을 맞춰 앉아야 했다.
오늘 들어선 첫 번째 교실, 문을 여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책상들이 마치 자와 각도기로 잰 듯 완벽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가로줄도, 세로줄도, 대각선마저도 일직선.
수많은 교실을 다녀봤지만 이렇게까지 칼같이 맞춰진 건 처음이었다.
더 놀라운 건 담임 선생님이었다.
남자 선생님인데 학생들이 형한테 가는 것처럼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선생님~" 하는 목소리에 격식은 없고 친근함만 가득했다.
수업 태도는 또 어떤가.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는 눈빛, 손을 번쩍 드는 아이들.
담임선생님이 준비물을 착각하셔서 다른 걸 준비해 오셨는데도 "괜찮아요!" 하며 웃는 아이들.
'참 보기 좋은 반이다.'
마음속으로 몇 번을 중얼거렸다.
"5조로 편성 부탁드립니다."
사전에 분명히 요청했건만, 교실에 들어서니 5명씩 4조으로 앉아있었다.
어디선가 전화기 놀이처럼 말이 뒤바뀐 모양이다.
"자, 다시 자리를 옮겨볼까요?"
4명씩 5조으로 재배치하다 보니 아까 그 완벽했던 첫 번째 교실과는 정반대.
줄은 들쭉날쭉, 책상은 삐뚤빼뚤.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듯한 교실 풍경.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부터 5분만 먼저 설명할게요!"
설명 듣고 질문해 주세요
적극적이다 못해 앞서 나가는 아이.
말이 많다. 정말 많다. 샘솟는 용암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 말들을 어찌 막으랴.
조별 활동이 시작되자 교실은 작은 사회가 되었다.
1조 - 타고난 리더의 탄생
"얘들아, 우리 이렇게 하자. 너는 이거, 너는 저거!"
똑 부러지게 일을 분배하는 아이. 제 손은 하나도 안 움직이면서 입으로만 지시하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다.
2조 - 민주주의의 표본
"이렇게 하는 거 어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럼 투표할까?"
서로의 의견을 묻고 듣고, 작은 역할이라도 나눠 가지며, 모두가 참여하는 따뜻한 그룹.
3조 - 외로운 천재
혼자서 뚝딱뚝딱. 다른 조원들은 구경만 하고 있는데 그 아이 손끝에서 마법처럼 작품이 완성된다. "우와~" 감탄하는 조원들. 참여는 안 하지만 응원은 열심히.
4조 - 엉뚱함의 집결지
"선생님, 우주는 왜 검은색이에요?"
지금 우리 주제랑 전혀 상관없는 질문만 쏟아내는 아이. 엉뚱한 대답만 골라서 하는 신기한 재능.
5조 - 조용한 관찰자
수줍음 많은 아이. 말은 안 하지만 눈망울은 반짝반짝. 포스트잇에 꼬물꼬물 자기 생각을 적어서 조용히 내민다. 그 한 줄이 때론 가장 빛나는 아이디어가 된다.
알록달록한 포스트잇들이 보드판을 채워간다.
"우리 조 파이팅!"
각자의 생각을 적고, 붙이고, 꾸미면서 협력하는 모습. 이게 바로 작은 사회 아닌가. 누군가는 리드하고, 누군가는 지지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기여하고.
분필가루 날리던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똑같이 줄 맞춰 앉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아이들은 다르다.
들쭉날쭉한 책상 배치 속에서도, 저마다의 색깔로 빛나고 있다.
말 많은 아이도, 조용한 아이도, 엉뚱한 아이도, 똑 부러진 아이도.
모두가 제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아, 이게 교실이구나.'
초록 칠판은 화이트보드로 바뀌었어도,
아이들의 눈빛만큼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