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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레이션

책과 사람을 잇는 특별한 봉사


우연히 시작된 특별한 만남

"북큐레이션 지원해 볼래요?"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한마디에 시작된 이 여정.

솔직히 처음엔 망설였다.

'내가 책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남에게 책을 추천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니까.

온라인 수업도 몇 번 들어보고, 북큐레이션 자격증을 딸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돈이 드는 일이라 패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첫 모임에 발을 들였다.


북큐레이션, 그게 뭔데?

한 달에 두 번 모여서 하는 일은 간단했다.

책을 선정하고, 책을 전시하는 것.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일 속에는 생각보다 깊은 고민과 창의성이 필요했다.


우리 모임은 마을 활동가, 독서지도사, 책에 관심 있는 분들이 모인 작은 커뮤니티였다.

각 달의 주제에 맞춰 책을 고르고, 서가를 꾸미는 일.

무보수였지만 봉사 점수와 교육이라는 보상이 있었다.

무엇보다 '색다른 봉사'를 한다는 설렘이 있었다.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

예전의 나는 도서관에 가면 그저 책을 빌리는 데만 바빴다.

테이블 위에 전시된 책들은 스쳐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북큐레이션을 시작하고 나니 달라졌다.

이제는 어느 도서관을 가든 자동으로 시선이 북큐레이션 코너로 향한다.

'아, 이번 달 주제는 이거구나.'
'이 책들을 어떻게 배치했을까?'
'손글씨 소개글이 정성스럽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고민과 정성이 담긴 그 작은 공간들이.


10월, 빛과 활자가 만나다

10월 프로젝트는 특별했다. '영화와 책을 연결하는' 큐레이션이었다.

제목도 멋졌다. "빛과 활자가 만나는 자리".

온라인 큐레이션까지 진행되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영화로 봤던 이야기의 원작 소설, 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들.

스크린의 빛과 종이 위의 활자가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각자가 고른 책들을 소개하며 "이 장면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나왔는데, 책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

그리고 어느 날, 그 순간이 왔다.

내가 고른 책이 대출되었다.

카운터에서 누군가가 내가 전시한 책을 집어 들고 대출하는 모습을 봤을 때의 기쁨이란!

그 사람이 집에 가서 책을 펼치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어쩌면 감동받거나 위로받을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벅찼다.

'내가 고른 책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도 있겠구나.'

이것이 바로 북큐레이션의 마법이었다.

책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 내가 그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


무보수의 가치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열심이었다.

아이디어 회의에 열띤 토론을 하고, 책을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하고, 책갈피로 소개 카드를 쓰고,

소품을 하나하나 골라 분위기를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단순했다. 재미있었고, 의미 있었고, 뿌듯했으니까.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수다도 즐거웠고, 내가 만든 작은 공간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으니까.


이제 마지막 모임이 남았다

11월 마감을 앞두고 한 번의 모임이 남았다.

시작할 때는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내가, 이제는 '벌써 끝이라니' 아쉬워하고 있다.

책을 잘 몰라도 괜찮았다. 북큐레이션 자격증이 없어도 괜찮았다.

진심으로 책과 사람을 연결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은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충분했다.


북큐레이션,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북큐레이션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
"이 책 정말 좋던데, 한번 읽어봐" 하는 마음을 예쁘게 포장하는 일.
책과 사람 사이의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주는 일.

무보수여도, 자격증이 없어도, 책을 많이 읽지 않았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누고 싶은 열정이니까.

도서관에 가거든 북큐레이션 코너를 한 번 들여다보시길.

그 작은 공간 속에 누군가의 설렘과 고민,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찾던 바로 그 책이,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은 혼자 읽지만, 그 책과의 만남은 누군가 만들어준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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