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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수업 05화

이슬비 속에서 만난 작은 기적

자전거 타신 분


여름의 변덕스러운 하늘이 또다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화창했던 하늘에서 이제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곧 본격적인 소나기가 올 것 같은 기세였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며 집으로 향하던 나는 이슬비에 젖어가는 어깨를 의식하며 속도를 높였다.

습한 공기가 얼굴에 달라붙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때였다.

"자전거 타신 분!"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페달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내가 뭔가 떨어뜨렸나? 하지만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었다.

"여기요! 여기요!"

이번에는 더 크게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길가 주택 3층 베란다에서 한 여성분이 손을 흔들고 계셨다. 큰 차도 옆이라 자동차 소음에 목소리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뭔가 절박한 상황인 것 같았다.

"베란다 문이 잠겼어요! 도와주세요!"

가로수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분의 상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베란다에 나갔다가 문이 잠겨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 동네가 어디인지도 몰랐고, 그분이 알려주시는 상가 이름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부동산에 연락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부동산은 보이지 않았다.

1층 문은 잠겨있어 내가 직접 올라갈 수도 없는 상황. 바로 옆 카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무시당했다.

점점 진해지는 빗줄기와 함께 나의 초조함도 커져갔다.

그때 1층 상가를 발견했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그 여성분이 보이는 뒤쪽 건물로 안내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그곳 사장님이 상황을 이해해 주시더니, 그 여성분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부동산 전화번호를 알고 계신다며 연결해 주셨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 꼭 들르세요!"

3층에서 들려오는 그분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가득했다.

자전거에 다시 올라타며 문득 생각해 봤다. 뉴스에서 베란다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정작 본인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의 절망감은 어떨까? 특히 이렇게 비 오는 날, 지나가는 사람들만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

빗방울이 더 굵어지기 시작했지만, 내 마음은 따뜻했다.

집으로 가려던 급한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큰 안도감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때로는 우리의 하루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비를 피하려던 일상 속에서 만난 작은 사건이, 결국 누군가와 나를 연결해 주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집에 도착해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여성분은 지금 따뜻한 집 안에서 이 비를 바라보고 계실까?

작은 도움이지만, 오늘 내가 한 일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줬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비 오는 날의 작은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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