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한 남자랑 밥 먹기
문학관에서 영화와 강의로 알찬 오후를 보냈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 아들은 미용실로, 우리 부부는 저녁 메뉴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KFC 갈까?"
"매콤한 게 땡겨" "샤브 갈까?"
"더운데 뭔 샤브..." 남편의 반박.
"그럼 회는?"
"여름에 뭔 회..."
"짜장면이나 먹으러?"
이런 식으로 광장을 한 바퀴 돌 동안 우리는 메뉴 하나 정하지 못했다.
남편은 점점 성큼성큼 앞서 가고, 나는 뒤에서 " 그럼 그냥 김밥천국이나..." 중얼거렸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어느 고기집으로 성큼 들어갔다. 예전에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간판이 바뀐 걸 모르고 말이다.
"어서오세요! 저희는 정육식단 전문점이에요."
메뉴판을 보니 온통 소고기, 돼지고기뿐. 사이드메뉴도 없다. 나는 고기보다 밑반찬이 더 좋은 사람인데...
"여보, 나 고기 별로..."
"아, 그냥 나가자."
결국 우리는 어색하게 일어나 나왔다. 사장님께 죄송했지만, 정말 먹고 싶은 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배달 앱을 켰다.
"짜장? 짬뽕?"
"둘 다?"
결국 짜장짬뽕을 주문했다. 2시간 30분 걸려서 내린 결론이 이거였다.
그때 친구 부부에게서 사진이 왔다. 맥주잔을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 "영화 끝나고 같이 한잔 할까?" 물어볼까 했는데, 차를 가져온 게 생각나서 그만뒀다. 누군가는 운전해야 하니까.
한참 뒤 또 사진이 왔다. 이번엔 노래방에서 마이크 들고 신나게 부르는 모습. 형광등 불빛이 반짝이는 가운데 완전히 몰입해서 노래하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 노래방 가봤지?"
"..."
우리 부부는 둘 다 음치라서 노래방을 기피한다. 놀 줄도 모르고.
즐기는 부부를 보니 부러웠다
"그냥 처음부터 배달 시킬걸."
" 괜히 돌아다녔네."
그런데 이상했다. 결국 우리가 원했던 걸 먹게 됐는데, 왜 이렇게 허탈하지?
아, 그래도 괜찮다. 내일은 또 내일의 메뉴 고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게 바로 우리 부부의 일상이고, 나름대로의 행복이다.
다만 다음엔 좀 더 결단력 있게 행동해보자고 다짐해본다.
...라고 생각했지만, 내일 또 "뭐 먹지?" 하며 같은 고민을 반복할 게 뻔하다.
편한 속옷 차림으로 집에서 햇반돌려 배달로 한끼 때우는 그땐 화가 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고 보니
소소한 일상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