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삶이 더 행복해 보이는 착각
시간이라는 강물 위에서
같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된 인연이 이제 20년 가까이 흘렀다.
큰아이들이 같은 반이었던 그때, 우리는 그저 '누구네 엄마'였는데, 이제는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언덕 위 미용실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길이라 자주 방문하지 못한 곳.
평지로만 다니던 내가 오늘은 왜 그 언덕길을 택했을까.
마음이 이끄는 대로 페달을 밟았고, 언니는 창가에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치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빈손으로 들어가도 반갑게 맞이해주는 곳, 참새 방앗간 같은 곳. 1년에 두 번 갈까 말하까 한 곳이지만,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캔 주스와 커피, 점심에 드신 김밥과 고구마까지 내어놓으시는 언니.
"우리 애들 대학교 가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던 약속이 벌써 3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언니 둘째는 의대를 목표로 하고, 우리 둘째도 이제 고3이 되어 입시 걱정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만큼 우리도 나이 들어가고 있다.
등록금 400만 원을 계좌번호와 함께 툭 던지듯 보내오는 딸, 수능 응시료 공지를 톡으로 전달하는 둘째.
다자 꼬자 돈 내라는 용지의 톡만 받고 기분이 상한
남편이 꿍시렁거리는 마음을 이해한다. ATM이 된 기분이랄까.
예전엔 거실 TV 앞에 모여 앉았는데, 이제는 각자 방에서 각자의 화면을 들여다본다.
"어디 갔다 와?" "도서관에서 미학 수업 듣고 오는 중."
언니는 웃으며 말한다. 돈벌이보다 문학, 인문학 수강생으로 사는 내가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AI도 못 따라오는 전문가의 손길을 가진 언니가 나를 부러워하다니!
같은 학부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언니는 언덕 위에서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살고, 나는 평지에서 일상의 문장들을 주워 담으며 산다.
20년 전 초등학교 교실에서 만난 두 엄마는 이제 각자의 이름을 되찾았다. 아이들은 자랐고, 우리는 나이 들었지만, 그 언덕길을 오르는 마음은 여전히 20대처럼 설렌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지만, 어떤 인연은 그 변화 속에서도 단단하게 남는다. 오늘도 언니는 창가에 서서 독서를 하고 있을 것이고, 나는 평지에서 자전거를 타며 일상을 글로 옮겨 적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