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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Frederic Watts의 희망

조지 프레더릭 왓츠〈Hope〉(1886)

끊어진 리라의 마지막 한 줄

오늘도 설거지를 하며 창밖을 바라본다.

소나기로 오락 가락 한 오후의 빗방울이 싱크대 위로 비스듬히 내려앉는다.

서른에 결혼해서 이제 쉰이 넘었으니,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은 기숙사로 독서실로 집을 떠났고, 남편은 여전히 바쁘다.

그리고 나는... 나는 여전히 여기 서 있다.

왓츠의 〈Hope〉를 처음 본 건 오늘 미학 수업에서였다.

스크린으로 마주친 그 그림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눈가리개를 한 여인이 지구 위에 웅크리고 앉아, 거의 끊어진 리라를 붙잡고 있었다.

단 한 줄만 남은 현을 애틋하게 만지는 그 모습이 왜 그리도 내 가슴을 울렸을까.


보이지 않는 앞길

눈가리개를 한 여인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나 역시 앞길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분명했다. 밥 해주고, 학교 보내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매일이 바빴지만 확실했다. 내가 누군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고,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나는 묘하게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야 할 사람도 없고, 밤늦게 들어오는 발소리를 기다릴 일도 줄어들었다.

그제야 거울을 보며 물었다. "이제 나는 누구지?"


끊어진 현들

살아오면서 내 리라의 현들은 하나씩 끊어졌다.

젊은 시절 꿈꾸던 나의 꿈은 첫째 임신과 함께 접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시작해 볼까 했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셋째가 태어나고, 육아와 살림에 치이면서 그 꿈은 점점 멀어져 갔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랬다. 결혼 전 그렇게 친했던 친구들과도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서로 다른 삶의 궤도에서 살다 보니 공통 화젯거리도 줄어들고, 만날 시간도 맞지 않았다.

나만의 취미나 관심사들도 하나둘 뒷전으로 밀렸다.

언제부턴가 나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정의되고 있었다.

중년이 되어 뒤돌아보니, 내가 소중히 여기던 많은 것들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마치 왓츠 그림 속 여인의 리라처럼, 대부분의 현이 끊어져 있었다.


마지막 남은 한 줄

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발견했다.

여인은 절망에 빠져 있지 않았다.

남은 마지막 한 줄의 현을 소중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한 줄로라도 음악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남은 한 줄이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마음, 새로운 시작에 대한 간절함이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희망이 아닐까.

50대가 된 지금,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이 어색했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손도 떨렸다.

하지만 모니터 위에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이것이 내가 찾은 희망의 현이었다.


작은 음악들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한 줄로 연주하는 음악은 교향곡만큼 웅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순수하고, 간절하고, 진실하다.

내가 쓰는 글들도 그렇다.

완벽하지 않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

요즘은 글쓰기 수업도 도전해보고 있다

동네 배움터에서 하는 배달강좌에서 시작해, 지금은 책 만들기 보조강사를 하며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과 내 글을 나누고 싶다.

비슷한 처지의 중년 여성들을 만나 글을 함께 쓰는 동아리 모임도 만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희망의 현을 북돋아준다.


지구 위에 앉은 우리들

왓츠의 그림 속 여인이 지구 위에 앉아 있듯이, 우리는 모두 이 거대한 세상 위에서 각자의 희망을 연주하며 살아간다. 50대 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앞날을 완전히 내다볼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눈가리개를 한 채로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남은 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커피를 내리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색으로 희망을 써볼까?

어떤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해 볼까? 완성작이 아니어도 좋다. 과정 자체가 희망이니까.

끊어진 리라의 마지막 한 줄처럼, 나의 희망도 작고 연약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분명히 들린다.

나에게도,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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