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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가 아닌데 산후우울감이 왔습니다.

이번 생에 아빠는 처음이라

by 윤옆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쯤, 산후 후유증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아내는 복직을 해야 했다. 명분은 육아휴직을 더 하면 부서이동이 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진실은 능력이 부족한 남편보다 벌이가 좋은 본인이 일을 하는 것이 우리 가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희망이 있다고 믿었는지 아집이었는지 모를 사업을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얼른 퇴사하고픈 마음에 복직을 고민하던 아내에게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전담육아를 하겠노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피의 방법으로 육아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내와 바통터치를 하며 6개월의 육아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의기양양했다. 아이는 당분간 누워 있을 테니 다시 내 일을 찾아보며 아이를 돌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육아와 동반에 뭐든 새로 시작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처참히 깨지고 만다.


비록 누워있지만 관심은 받고 싶어

일을 하며 내가 한 육아라고는 퇴근해서 씻기고, 분유를 타 먹이고, 트림을 하고, 한 번씩 바라보며 웃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고서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아이가 잠들 때까지 한시도 아이를 눈에서 뗄 수가 없었다. 다른 일을 하려고 치면 '아빠, 어디가? 나랑 놀아줘야지?'라고 말하는 듯 울어대기 시작했고, 아이를 놓고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자면 방치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또 부모의 목소리를 들려주면 좋다는 말에 평소에 말도 많이 하지 않던 내가 하루 종일 떠들어 대거나, 잠시의 편법을 부리겠다며 라디오를 틀어주며 잠시의 휴식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아이만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래서 산후우울증이 오는군요

어느 날 아이를 바라보다 창 밖을 바라보는데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라는 존재가 이 사회에서 지워지는 것 같았다. 아이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뭔가 사회와 분리된 기분도 느껴졌고, 한 번씩 아이를 보겠다며 찾아오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간 '커리어'라는 것과 별개의 길을 걸어온 나로서는 육아를 끝내고 내가 설 곳이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반골의 기질로 '남들과 다른 특별한 나만의 삶'을 살았다고 믿었던 내가 결국은 어느 정도 인정욕구가 강했던 '모두와 같은 보통의 나'로 받아들여지는 아니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보다 못한 나'로 인정되던 순간이던 것 같다. 그렇게 전담육아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나는 엄마들이 겪는다던 산후우울증까진 아니지만 우울감이 지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육아는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와 같은 마음일까?

아마 일의 성과에 따라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거나 사회적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육아우울증'이 오기 쉽다고 생각한다. 육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봐야 본전만 돌아올 뿐이다. 어떻게 보면 골키퍼와 같은 처지이다. 골을 막으면 당연한 거고 골 먹으면 욕먹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 육아하는 부모들의 모습이다. 주변에 육아를 하는 지인이 있다면 인사치레로라도 격려를 보내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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